[추천영화]
활력이 있는 ‘생활의 지혜’, <열 척의 카누>
2006-10-1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열 척의 카누 Ten Canoes
롤프 드 헤르/호주/2006/92분/월드시네마

두가지 민담이 겹치는 <열 척의 카누>는 매우 긴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이다. 카누를 타고 첫번째 거위사냥에 나선 청년 다인디는 자신의 형이자 부족의 지도자인 미니굴룰루의 젊은 아내를 탐내고 있다. 미니굴룰루는 늪지대를 가로지르는 여행 도중 동생에게 경고하기 위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의 강인한 전사 리지미랄리는 세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다. 그의 동생 예랄파릴은 젊고 예쁜 막내 형수 무난자라를 좋아하지만 현명한 큰형수 바날란주의 견제로 이렇다할 사고를 치지는 못한다. 어느날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이 리지미랄리의 두번째 아내를 납치하자 마을 남자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예랄파릴은 자기가 죽으면 아내들을 돌보아달라는 리지미랄리의 당부로 홀로 마을에 남게된다.

<열 척의 카누>는 호주 어보리진 언어로 만들어진 첫번째 극영화이고 주석을 달아야만하는 그들의 전통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물건을 가리고 다니는 남자는 믿을 게 못돼”라고 떠드는 이 벌거벗은 사람들은 머나먼 시간과 공간 너머의 이방인이라기보다 동네 아저씨들처럼 친근하게 보인다. 정분과 질투, 허세부리는 남자들과 영악한 여인들, 바가지긁는 마누라. <열 척의 카누>는 낯선 신화를 향해 떠나는 듯하다가 이처럼 결혼식 전날밤에 들려줄 법한 ‘생활의 지혜’에 안착하기 때문이다. 그 지혜 속엔 웃음이 있고 체념이 있으며 생생한 활력이 있다. 카누와 원주민을 찍은 1930년대 흑백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은 감독 롤프 드 헤르는 그런 지혜를 소중히 여겨 다소 산만하지만 풍요로운 구전문화를 영화로 담는 신기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어보리진 문화에 매혹되어 <열 한척의 카누> <열 두척의 카누>로 이어지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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