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2006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극본상 등을 받은 창작뮤지컬이다. 가톨릭재단 무료병원에 7년째 입원해 있는 환자 최병호가 사라진 사건을 계기로 버림받은 이들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통속적이지만 내치기 어려운 사연을 전해주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한때 분홍치마 입은 고운 모습이었던 치매 노인의 연정과 스스로를 망각에 묻고 만 아버지의 눈물이 오래오래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 뮤지컬을 최익환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시리즈에 속해 있으면서도 실험성이 돋보였던 <여고괴담4: 목소리>로 데뷔했고, 실사에 애니메이션을 덧입힌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한 <그녀는 예뻤다>를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을 시작한 최익환 감독은 어떤 이유로 지극한 신파이자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인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지난해 최익환 감독에게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권했던 사람은 <여고괴담4…>의 프로듀서였고 지금 이 작품도 함께 작업하고 있는 전여경 PD였다. 그때 틈을 내지 못했던 최익환 감독은 전 PD에게서 공연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건네받았고, 기대하지 않은 채 무방비 상태로 보았다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대사에 울고 웃었다. “보고 나서 이불 속에서도 한참을 울었다. 내가 두딸의 아버지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다.” 그 때문인지 최익환 감독은 “형식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도 감동의 깊이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유머를 구사하고, 영화처럼 빠른 리듬감을 지닌 정신없는 템포”가 좋았다고 말하면서도, 무엇보다 최병호와 딸 민희가 재회하는 장면에 감정의 포커스를 맞추었다. 어찌보면 영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그 장면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런 목적지를 앞에 둔 영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이 길 저 길을 더듬으며 방향을 모색하면서도, 뮤지컬에선 후반부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민희, 영화에선 민주를 주인공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에서처럼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집을 나간 다음 홀로 살아온 민주는 무슨 일인가에 쫓기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소재를 알고선 벚꽃마을 라는 공동체에 들어온다. 민주는 십년을 기다려온 아버지가 하반신이 마비된 채 벚꽃마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을 보며 살의에 가까운 증오를 느끼지만, 마을 사람 여럿을 만나며 자기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한다. 최익환 감독은 밑바닥 삶을 그리는 것이 자신없어 원작의 장유정 작가가 그랬듯 배경이 되는 충북 음성 꽃동네에 자원봉사를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들이 주는 조그만 정 하나가 너무 크게 보이는,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고, 원작만 보았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들도 얻어왔다. “꽃동네에 가기 전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만난 마을 사람들은 웃기고 재기발랄한 면이 있었다.” 2박3일 동안 밥도 먹지 않은 채 한없이 화장지를 뜯어내 돌돌 말고 있는 자폐아 연건도 최익환 감독이 꽃동네에서 데려온 새로운 캐릭터다.
일단 구조와 캐릭터를 바꾸고 있는 영화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선 화나고 애타하기에 더욱 웃겼던 베드로 신부의 독무와 독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마도 뮤지컬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뮤지컬을 살리기는 하겠지만, 올해 뮤지컬영화들이 실패한 탓에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배우를 구하기가 어려운데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할 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근심이 되는 탓이다. 최익환 감독은 <여고괴담4…> <그녀는 예뻤다>로 실험을 해보았지만, 신파이되 신파로서 가치가 있는 이 이야기에서 형식이 내용을 뒤덮는 역전이 나타날까 염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순식간에 무대를 바꾸고 최병호의 동료 환자들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보여주는 배려도 방식을 바꾸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익환 감독은 이 이야기가 벚꽃마을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원래 꽃동네의 모토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였다. 그것을 나는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로 바꾸었다.” 사랑을 믿었기에 연인과 함께 죽을 수도 있었던 쇼걸과 연인을 떠나보내고 넋을 잃은 처녀와 책가방을 메고 밝게 웃었던 소녀의 빛나던 옛날, 혹은 불행하나 키득거릴 수 있는 현재는 원작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최익환 감독이 또 하나 원작에서 고집스럽게 가져온 설정은 이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에 마무리된다는 결말이다. 그것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특별한 사연으로 인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모여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벚꽃마을 에는 벚나무가 없지만, 최익환 감독은 개명한 마을 이름 또한 흰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염두에 둔 데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바깥에서 보기에는 무덤과 다를 바가 없으나, 물살이 거센 바깥 바다에서 표류하여 흘러들어온 이들이, 나름대로 웃고 울고 보듬어 살아가는 마을. 가엾다 생각할 수밖에 없을 벚꽃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생글생글 웃고 있던 최익환 감독의 밝은 얼굴이 아직 태동을 하고 있을 뿐인 영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초음파 사진처럼 흐릿하게나마 비춰주었다.
최익환 감독, 꽃동네를 만나다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는 무의탁자와 행려병자들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준비하며 2박3일 동안 꽃동네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최익환 감독은 그곳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고 말한다. 가장 일손이 모자라는 병원에 배치받은 최익환 감독은 관장약을 넣은 환자를 손으로 받쳐주고 있거나 몸을 움직이기 힘든 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을 했고, 알몸으로 돌아다니고 모든 음식을 거부하면서 라면만 먹는 이상한 습관을 가진 노인을 보기도 했다. 그중 한 노인은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어 밥을 먹이고 시중을 들어주면서도 그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익환 감독이 떠나던 날 작별인사를 하자 표정이 없던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변해버렸다. “잠깐 가는 거예요. 나중에 다시 와요”라고 말한 최익환 감독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그럼에도 그 순간은 최익환 감독이 꽃동네를 떠나며 받아온 “마술 같은 일, 커다란 선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제나 손이 부족해 간호사가 할 법한 일에도 불려다니는 자원봉사자지만 그곳에 다녀온 사람은 짧은 시간을 회상하며 울고 웃는다고 한다. 병원 말고도 많은 시설이 있는 꽃동네는 하루만 머무는 자원봉사자도 환영한다고. 최익환 감독은 가족과 스탭과 함께 또다시 하루 동안 그곳에 다녀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