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약속> <와일드카드> 김유진 감독의 신작 <신기전>
2007-01-09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조선시대 로켓 화포를 쏘아올리다

<신기전>은 김유진 감독이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기까지 2년 넘게 공을 들인 사극이다. 2003년 <와일드카드>를 마친 김유진 감독은 잊혀진 한민족의 검과 검술을 발굴하여 중국의 무협영화와는 다른 스타일을 가진 검술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어느 문헌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과 중국의 검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우리 고유의 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김유진 감독은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기사를 떠올리고는 어쩌면 비슷한 주제를 다른 소재로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기사는 조선시대 설계도면에 따라 제작한 중신기전이 발사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최초의 미사일인 신기전은 수학과 물리와 화학이 모두 고도로 발달하기 전에는 나오기 힘든 무기였는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있다. 할리우드에는 자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영화가 많은데, 우리 영화는 너무 우울하지 않나. 민족적 자긍심이 뿌듯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약속> <와일드카드>를 함께했던 이만희 작가도 그 취지에 흔쾌히 동의하여 김유진 감독의 신작은 전쟁장면이 포함된 대형 사극으로 선회했다.

신기전을 만든 이들에 관한 사록이 없기에 영화 <신기전>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터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그 벌판에는 찬란했던 문명의 결과 하나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으나, 김유진 감독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평범한 방식으로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신기전을 만드는 이와 신기전을 지키는 이, 그리고 그들을 막는 이. <신기전>은 이 세 가지 세력을 축으로 하여 진행되는 이야기다. 부보상을 이끄는 상단의 우두머리 설주는 놀기 좋아하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비범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 사내다.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내금위장 창강의 부탁으로 오갈 데 없는 젊은 여인 홍리를 보살피게 된 설주는 강단있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그러나 홍리는 세종의 명으로 비밀리에 신무기 신기전을 제작하던 도감 해산의 딸이었고 그 자신 또한 화포 제작의 비밀을 아는 기술자이기도 하다. 초야에 묻혀 지내고자 했던 설주는 조선을 속국으로 삼고자 하는 명나라에 저항하고 홍리를 지키기 위해 국운이 걸린 전쟁에 뛰어든다.

김유진 감독은 첩보전과 국경지대의 전쟁이 뒤섞인 <신기전>에 애초 기획했던 검술영화도 섞어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설주와 부하들이 신기전의 설계도인 총통등록을 되찾기 위해 명 무사들의 수비를 뚫고 침입하는 장면이나 하얀 천이 휘날리는 광목 공장에서 조선과 명의 무사들이 다투는 격투 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홍콩의 무협영화는 와이어에 몸을 매달고 공중에서 검술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옛 검술은 땅에 발을 붙이고 구사하는 것이었을 거다.” 실제로 <신기전> 시나리오가 묘사하고 있는 무술은 중력의 법칙을 초월하지 않는다. 담을 넘어 새처럼 날아가더라도 화살에 붙은 줄에 몸을 의지한다. 자유로이 공중을 나는 것은 다만 폭발하는 화약의 도움을 얻은 신기전 화살뿐이다. 스탭들의 재능을 소중하게 활용하는 김유진 감독은 <청풍명월> 등에 시도했지만 좋은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한국적인 스타일의 무술을 정두홍 무술감독(<무사> <짝패>)에게 맡길 예정이다. “정두홍 감독은 ‘쇼’라는 점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볼거리를 보여준다. 그것이 내가 요구하는 리얼함과 어떻게 접목될지 궁금하다.”

그러나 <신기전>은 무엇보다 중·대신기전이 대열을 이루어 명군을 공격하는 전쟁장면이 그 절정을 이룰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신기전은 본디 수성(守城)을 위한 무기였다. 아마도 그것은 침략전이 많지 않았던 당시 정세와 운반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기전>의 대미에서 신기전은 잠복과 습격의 무기로 사용된다. 100발의 화살을 장착한 중신기전이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5.5m에 달하는 대신기전이 폭발하는 장면은 근세에 접어들던 500년 전 전쟁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관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지금 김유진 감독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제작비다. 화면 톤을 일정하게 맞추기 위해, 눈속임이 쉬운 야간전 대신 한낮의 전투를 촬영하고자 하는 그는,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김유진 감독은 <신기전>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이 영화가 한때 동아시아 제일의 문명을 이루었던 한민족의 역사를 알리고자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럼에도 2년 동안 퇴고를 거듭한 <신기전> 시나리오에는 당대를 살았을 법한 숱한 인물들이 숨을 쉬고 있다. 역성혁명을 이루었던 조선왕조는 4대째인 세종에 이르러서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도전 같은 개국공신마저 목숨을 내놓아야 했는데, 비정한 권력이 쓸어간 민초의 생명은 헤아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설주와 그의 무리들은 그런 상처를 안고선 세상을 희롱하거나 현실을 외면하거나 다만 살아남고자 애쓴다. 그처럼 정쟁을 피해왔던 설주가 험한 세상을 더불어 살아온 이들마저 잃으면서 신기전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은 조선왕조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땅에 살고 있는 백성을 지키고자, 그 자신과 상단을 지키고자 함이다. 그렇게 설주의 검 끝에는 눈물이 맺히고, 사내의 눈물에는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이 얽혀든다. 어쩌면 <신기전>은 그저 한민족의 우월을 설파하려는 요즈음 사극의 경향과 멀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유진 감독은 흔한 조폭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약속>에서 남자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 먹이려는 여인의 애틋한 심정을 찾아냈고, 형사영화라고 간단하게 말해버릴 수 있었던 <와일드카드>에서도 아버지가 바깥을 나도는 사이 혼자 커버린 아이의 키를 재는 부정(父情)을 돌봐주었다. 그러므로 <신기전>에서 웅대한 자존심에 앞서 모진 운명을 견디었던 이들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만은 아닐 것이다.

신기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세종 30년(1448년) 12월 의정부에서 올린 문서에 처음 등장하는 신기전(神機箭)은 고려 말 최무선이 개발한 주화(走火)를 발전시킨 무기다. 규모와 목적에 따라 소·중·대·산화신기전으로 나뉘는 이 로켓 무기는 발화통에 도화선을 연결하여 불을 붙인 다음 발사하면 목표지점 바로 부근에서 폭발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정거리가 1.5∼2㎞에 이르는 것으로 짐작되는 대신기전은 북쪽 국경지대인 압록강변 의주성에서 주로 사용됐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왜구가 출몰하는 남부 해안지대에도 많은 수가 배치되었던 듯하다. 화포와 화약제조에 관심이 많았던 문종은 신기전을 개량하여 화차 위에서 발사하도록 만들었다. 어른 네명이 밀고 끄는 화차는 중신기전 100발을 올려놓을 수 있었고, 발사각도와 지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며, 전쟁이 없을 때에는 운반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직접 화차에 불을 붙이기까지 했던 문종 사후, 세조대에 이르면 신기전은 그 위력을 잃어 지방관청에 비치돼 있는 신기전이 낡고 고장나 무용해졌다는 상소가 조정에 올라오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신기전의 마지막 흔적은 영조 4년(1728년) 도순무사 오명항이 안성에서 반군을 진압하는 데 사용하였다는 기록. 1993년 채연석 박사는 대전 엑스포를 기념하여 중신기전을 재현, 발사하는 실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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