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김기덕 감독 신작 <숨> 현장 공개 및 기자 간담회
2007-01-19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기덕 감독에게서 날아온 반가운 현장 초대다. 1월 17일 서대문 형무소 건물 안. 세 주인공 하정우, 장첸, 박지아가 함께 나오는, 어쩌면 <숨>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지아가 감방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장첸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둘은 끌어안는다. 미니 크레인에 달려 천천히 후진하며 떠오르는 카메라. 하정우가 프레임으로 들어와 박지아의 손을 잡아 반대방향으로 끌고 가면, 박지아는 자꾸만 장첸 쪽을 뒤돌아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과 반대쪽으로 조용히 프레임 아웃 하는 장첸. 서대문 형무소 좁은 복도에서 피어나는 상상적이면서도 애틋한 이 장면. 과연 <숨>은 어떤 이야기인가? 연(박지아)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장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본다. 연은 자기도 모르게 끌리듯이 사형수가 있는 형무소를 찾아가 면회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에게 1년간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춰 한 번씩 그를 방문하여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 편으론 계절에 맞는 노래를 불러주고, 또 계절에 맞게 면회실을 꾸며준다.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형수는 언제나 그녀의 방문을 기꺼이 받는다. 한편, 외도에 빠져 연을 외롭게 만들었던 남편 정(하정우)은 아내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 채고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숨>은 연과 사형수와의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이 영화의 제목 <숨>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다. 김기덕 감독의 열 네 번째 영화 <숨>에서는 순환의 시간에 놓인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기이한 공존과 구원의 이야기가 그려질 듯 하다. 올 여름 국내 개봉 예정이다.

(현장 공개가 끝난 직후에는 서대문 형무소 야외 풀밭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이하 김기덕 감독 및 배우들 문답)

-이 번 영화에 대해 각자 소개한다면
=(김기덕)우선 이렇게 추운 날 찾아와주어 고맙다. 지난 번 <시간>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은 국내 판매 형식으로 8개관에서 개봉한 뒤 3만 명 정도 관객이 들었다. 애초 내가 말한 20만명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영화사 스폰지에 이 번 작품을 수출하여 국내 개봉하기로 했다. 또, <시간>때의 발언 이후로 몇몇 매체들이 내 생각을 지지해 주었고, 그 지지자들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될 듯 싶었다. 나한테는 997만명의 관객보다 3만명의 관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영화를 위해 발품을 팔고 봐준 관객들에게 이 번 영화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게 내가 했던 말을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라 생각했다.

=(장첸)처음으로 한국 감독과 영화를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즐거웠다. 대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만의 캐릭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특이한 경험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관객이 아닌 배우로서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박지아)연이라는 이름의,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사형수에게 얻는 여자 역할이다.

=(하정우) <시간>은 보람 있었다.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과 다시 할 수 있게 된 건 큰 영광이다. 이 번 촬영 역시 즐거웠다. 내가 맡은 남편 역은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다가 어떤 사건을 통해서 그걸 깨닫게 되는 역할이다.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숨>의 시나리오는 <빈집>과 <나쁜남자>때 감옥 장면을 찍으면서 떠올랐다. 서대문 교도소를 배경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숨>은 80퍼센트가 교도소 장면이다. 제목이 <숨>인데, 숨을 내쉬는 것과 들이쉬는 것이 음양의 이치와 같아 보였고, 그 숨쉬기가 인생의 어떤 한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여주인공 연이에게 남편인 정이 해주지 못하는 걸 사형수가 대신하는 것이다. 내쉬고 들이쉬는 숨의 이미지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장첸에게) 김기덕 감독과 일해 보니 어떤가
=한국 오기 전에 시나리오를 열심히 보고 연구했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시나리오 이외의 요소가 영화를 이루는 게 많기 때문에 그것만 보고 짐작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김기덕 감독은 예상을 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처음에 예상한 것을 뒤엎는다.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웃음). 감독에 대한 의존성이 강한 새로운 캐릭터여서 더 흥미로웠다. 극장에서 보면 다시 또 느낌이 달라질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을 보면서) 맞나요 감독님?

-(하정우에게) 김기덕 감독과 두 번째인데 다른 감독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축소하고, 콘티도 없고, 설명적이지도 않다. 헤드라인만 갖고 만나는 거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흥분감이 있다.

-지금까지 촬영한 건 어느 정도 마음에 드나
=이번에는 외국에서 투자를 받지 않았다. 최소로 봤을 때 2억 5천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그동안의 해외수익금을 모아 제작하는 작품이고, 그걸 스폰지에 수출한 것이다. 촬영횟수가 10회차 밖에 안 되고, 그걸로 90분 런닝 타임을 맞춰야 하니 전쟁처럼 찍은 영화다. 마음에 드는지는 편집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개봉인데 왜 수출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나
=내 영화는 만들면 적어도 20개국 이상 판매되고 있다. 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만 따지면 2-3만이지만, 전 세계 가까이 따지면 천만 정도가 된다. 그 중에 한국은 2-3프로 되기 때문에 넓게 봐서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숨>의 국내배급을 맡은 스폰지 조성규 대표) 부가설명을 하자면, <시간>도 그렇지만 이 번 영화 <숨> 역시 외국영화를 수입할 때와 동일한 조건과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수출이라는 말은 그런 뜻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저예산영화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는가
=내가 제일 중요하게 문제 삼는 건 제작비 상승이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용이 55억이라는 게 문제다. 25억 미만, 더 나아가서는 10억 미만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 다음은 국가 지원책에 관한 거다. 나는 꾸준히 10억 이하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국가지원책이 있어서 가능했다. 만약 그런 맥이 끊겼다면 못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것에도 국가 지원책이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을 하는 것이 거대 영화들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화를 하는 후배들에게 바란다면,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와 능력을 오락영화에 함몰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변덕을 자주 부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고민 많이 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3만 명의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한거다. 약속을 어긴 거라고 보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이랬다 저랬다 한 것도 여러 번이 아니라 이 번 한 번 아닌가(좌중 웃음). 그건 인간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한 세 번 정도 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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