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작자가 살아야 영화가 산다, 차승재 싸이더스FNH 공동대표
2007-02-07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차승재 싸이더스FNH 공동대표의 이미지는 아웃사이더의 그것이다. 학생 시절, 침을 찍찍 뱉으면서 짝다리도 꽤 짚어봤을 법한 인상의 그는 영화계에 들어와서도 주류의 안정적인 길보다는 자신만의 주변부 노선을 밀어붙여왔다. 같은 말이라도 단상에 올라 정돈된 태도로 하기보다 청중 뒷줄에서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이야기할 것만 같은 그는 이를테면 비주류형 인간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무슨 ‘장’자 붙은 자리를 맡아본 적”도 없었을 그가 한국제작가협회(이하 제협)의 신임 회장이 됐다는 소식은 다소 의외였다. 그것도 한국 영화계가 혹한의 시련을 앞두고 있으며, 제작자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진 이 위기의 순간에 말이다. 하긴, 난세에는 무과를 나온 엘리트 장군보다 민병들을 이끄는 평민 출신 우두머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으니 그가 이 시점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60여개 회사의 수장이 된 것은 괴이한 일만이 아닐 수도 있다. 제협 회장 당선 직후 그가 밝힌 “격랑을 헤쳐가야 하는 선장의 심정”이라는 소감으로부터 200분 동안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제협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다소 의미심장한 소감을 밝혔는데.
=프로듀서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 환경이 좋지 않다. 프로듀서 고유의 영역이 점점 위축돼가고 있다. 이를테면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도 그렇다. 과거에는 투자사와 제작사가 5 대 5로 배분하던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도 돈을 번 회사가 없었다. 영화를 통해서 자산을 축적한 회사가 단 한곳도 없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감독들도 절반쯤 가져가야겠다고 나서고 대기업도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과연 제작자가 남아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이 있다. 그게 내적인 어려움이라면, 외적 환경으로는 현재 평균제작비가 30억원 정도인데, 5년 전만 해도 15억원에서 20억원 정도 아니었나. 엄청나게 오른 거다. 그래도 그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일본이라는 수익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마저도 죽어버렸다. 그렇다고 제작비가 내려간 것도 아니지 않나. 한마디로 머리가 아픈 상황인 것이다.

-제협의 현안은 어떤 것들이 있나.
=가장 큰 현안은 제작자들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제작자들이 거의 필요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까지 있다. 나는 한국의 영화산업을 그래도 이만큼 키워온 원동력이 제작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제협은 제작 프로듀서들의 연합체니까 그 자리를 재정립하겠다는 게 첫 번째 현안이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협 차원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제협 회원사들이라도 각성해서 제작비를 내리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 그렇다고 인건비를 줄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영화의 규모를 좀 작게 할 수 있는 기획을 자꾸 만들어야 한다. 규모보다는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든가, 참신한 기획을 만든다든가 해서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국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프로듀서들이 영화를 좀더 통제할 수 있고,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통제, 관여’라고 하면 감독들이 싫어할 텐데. (웃음) 하여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제협 차원의 방안은 무엇인가.
=일단 제협을 단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작권 신탁사업 같은 일을 통해서 제협의 재정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목소리내는 것밖에 없다.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고. 제작자가 없으면 영화를 누가 만드냐. 영화라는 큰 배의 방향은 감독이 정하지만, 그 동력은 프로듀서가 제공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문제는 그 동력의 힘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거다. 배는 점점 커지는데 말이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배분에 대한 문제라면 극장과의 부율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하고 싶다. 그런데 영화를 투자, 배급하는 대기업이 극장들을 갖고 있으니까 안 되고 있다.

-복안은 있나.
=아직은 없다. 관람료 인상도 하나의 계기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관람료가 오른다고 부율을 바꿔준다는 법은 없잖나. 만약 인상된다면 그때가 문제를 제기할 적절한 타이밍이긴 한데, 아직 관람료에 관해서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얘기를 듣다보면 제작자들의 피해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영화를 만들어 빚지는 사람은 제작자밖에 없다. 실제로 제작자 중엔 빚더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잖나. 우회상장처럼 금융논리로 돈을 번 사람은 있는데 영화로 번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맞아서 연기자들의 개런티가 올랐고, 감독은 개런티가 상승했을 뿐 아니라 수익지분도 가져간다. 스탭들의 개런티도 현실화됐다. 게다가 필름회사, 장비 대여업체, 극장 모두 돈을 벌었는데, 가장 한심한 게 제작자다. 지금은 제작비 30억원에 마케팅 비용 20억원을 쓰면 전국 관객 147만명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제작자는 그런 손익분기점을 갖고 제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서 계속 제작을 해야 하냐. 나는 그것을 끌어내리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는 거다.

-어디 잘 나서는 성격은 아닌 듯 보이는데, 제협 회장에 출마하게 된 배경은.
=강권에 못 이겨서다. (웃음) 다들 하라고 하니까. 그리고 이건 봉사직이라 무슨 돈 생기는 일도 아니고, 이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김형준 전 회장이 4년 동안 했는데, 2년을 더 하라고 하기엔 미안한 점도 있었다. 그리고 영화산업노조가 출범하는데, 그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교섭단장을 했던 내가 지금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조와의 협상에서 제협쪽 교섭단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그것도 다들 안 한다고 그래서. (웃음) 교섭단에 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교섭의 무게도 의미가 달라진다고 봤다. 다른 몇 사람에게 교섭단장을 맡으라는 말을 했더니 껄끄러워하더라. 욕 얻어먹는 자리라는 생각도 있었고. 나 또한 봉변을 당할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노조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변화인데 껄끄럽다고 해서 비교적 산업적 영향력이 작은 사람이 교섭에 나선다면 그 의미 또한 그리 중요하게 반영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욕을 좀 먹더라도 내가 나서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노조를 껄끄럽게 생각지 않았다는 건가.
=나는 우리 영화산업 안에 건강한 노조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업계의 그 누구도 공익적인 발언을 할 수 없는 입장 아닌가. 뭐라고 하면 다 밥그릇 싸움한다고 말하고. 노조가 공공단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공성을 띨 수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노조와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16차 교섭까지 했는데, 단체협상은 지난해 끝냈고 이제는 임금협상의 막바지다. 시급문제만 해결되면 된다. 현재 실무 소위를 구성해서 막후 협상 중인데 설이 지나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협상이 타결돼 시행에 들어가면 제작비가 얼마나 오를 것으로 보는가.
=전체 제작비의 5% 정도가 인상되지 않을까 싶다. 30억원 기준으로 보면 1억5천만원 정도인데 사실 엄청 큰 거다. 특히 인건비 대비로 따지면 3분의 1가량이 오르는 거다.

-노조와의 협약이 현장에서 잘 소화될 것이라고 보는가.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우리 회사는 1달쯤 전부터 매주 월요일, 수요일에 제작쪽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각 분야 스탭들이 와서 전문적인 내용을 가르친다. 이를테면 18kW 조명이 어느 정도 범위를 비추는지 알아야 예산서를 제대로 짤 것 아니냐. 이제는 모든 것을 정교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곧바로 돈이 불어나게 된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전문화된 듯하면서도 또 아무나 하기도 한다. 이제는 변별력있는 프로듀서가 나와야 하고 변별력있는 제작사가 나와야 한다. 그 변별력이 곧 제작비 구조와 연결된다고 본다.

-제협 차원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나.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지금 제협의 재정은 2900만원인가 3900만원인가에서 적자 상태다. 그래서 당장은 교육 계획이 없지만 영진위의 영화인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용할 생각이다.

-싸이더스FNH는 한국의 ‘영화공장’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 신작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어깨 너머의 연인>과 <이장과 군수>가 후반작업 중이고, 그외엔 새로 들어간 영화가 없다. 사실, 쉴 때도 있는 것 아닌가. 우리 회사는 이번이 처음 쉬는 거다. 지난해에 우리가 워낙 많은 작품을 미리 당겨서 하기도 했고, 캐스팅이 잘 안 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지 의도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캐스팅만 되면 들어갈 수 있는 영화도 꽤 된다. 그리고 우리가 300억원짜리 펀드를 결성했잖나. 기존의 90억원과 합치면 390억원이 있는 셈인데, 앞서 펀드를 만든 곳들을 보면 자금을 믿고 너무 자신감있게 영화를 만들다가 퍽퍽퍽 깨지더라. 그런 것을 본 내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잖나. 오히려 자체 펀드로 제작할 때는 좀더 엄격하게 해보자, 이런 생각이 있다.

-지난해 흥행성적이 워낙 안 좋다보니 최대주주인 KT가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는 이야기도 하던데.
=전혀 아니다. KT는 회사의 자금 집행과 관련되는 부분은 거의 다 관여하지만 어떤 영화를 찍냐에 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KT는 그 비슷한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

-하여간 싸이더스FNH의 지난해 성적은 안 좋았다.
=첫째로, 환경이 너무 안 좋았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가 108편이었다. 그중 손익분기점 근처에라도 간 영화는 20편이 안 되잖나. 우리는 지난해 12편을 개봉했는데, <타짜>와 <달콤, 살벌한 연인>이 돈을 벌었고, <비열한 거리>와 <각설탕>은 손익분기점 가까이 벌었다. 그렇게 보면 평균 이상의 타율 아닌가. 그리고 둘째로, 워낙 많은 작품을 만들다보니 역량이 분산됐던 것 같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차승재다운 영화도 부족했던 것 아닌가.
=아니다. <비열한 거리>나 <열혈남아>는 누가 봐도 내 영화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플란다스의 개>나 <지구를 지켜라!>와 유사하지 않냐. 그리고 <타짜>나 <달콤, 살벌한 연인>까지, 각각 보면 차승재스럽지 않은 영화가 없다. 다만 <각설탕>이 조금 소프트한 영화고, <사랑따윈 필요없어>가 기대에 비해 실패를 했지만, 그런 작품도 자꾸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KT의 자본도 유입되고 좋은영화와 합병도 하면서 영화의 색깔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가.
=과거 우노필름이나 싸이더스의 이름으로 1년에 3∼5편을 만들 때는 회사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3∼5편은 싸이더스스러운 영화를 만들 거다. 물론 FNH스러운 영화도 그만큼 나올 거다. 그리고 또 싸이더스FNH라는 브랜드로 더욱 다양한 영화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말 김미희 대표와의 관계를 새로 정립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와 김미희 대표의 영화에 대한 색깔이 다르니까 각자 기획을 하자는 쪽으로 정리했다. 사실, 나는 <Mr. 로빈 꼬시기>나 <이장과 군수> 같은 영화는 시나리오만 놓고 판단할 수가 없다. 김미희 대표 또한 <열혈남아>나 <비열한 거리>에 대해서는 완성작을 보고는 얘기할 수 있지만,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감을 못 잡는다. 그래서 각자 준비하는 것을 각자 꾸리자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과거에는 서로 동의하는 작품만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김미희 대표건 나건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되면 들어간다는 거다.

-하나의 회사에서 그렇게 일을 한다는 게 이상하지는 않나.
=기획 단계만 그렇게 한다는 거다. 그 이후의 일은 회사 차원에서 같이 한다. 이를테면 공장은 하나지만 상품기획을 두 군데서 하는 것인데 뭐가 이상한가.

-싸이더스FNH가 올해 제작할 영화로는 어떤 게 있나.
=황석영 선생의 원작으로 만드는 필감성 감독의 <무기의 그늘>이 있고, 이승무 감독의 시대극 <자객>, 김용균 감독의 액션멜로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정영아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식탐남녀>, 양종현 감독의 킬러 이야기 <킬 미>, 백운학 감독의 공포영화 <귀신>, 여균동 감독의 코믹액션사극 <기방난동사건>, 하기호 감독의 <라디오데이즈>(가제) 등이 있고 그외에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

-대략 몇편이나 들어가게 될 것 같나.
=여러 변수가 있지만 8편 정도일 것 같다. 내가 기획하는 영화 절반, 김미희 대표가 기획하는 작품 절반이 될 거다.

-그중에 대작도 있나.
=<무기의 그늘> <자객>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이 큰 영화다. <무기의 그늘>은 대략 60억∼70억원, <자객>은 80억원 정도로 생각 중이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김미희 대표가 기획하는 영화라 정확한 규모는 잘 모른다.

-최동훈 감독은 <화산고2>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던데.
=최동훈 감독이 연출하는 것은 아니고 최화진 감독이 만들게 되는데 두 사람이 열심히 쓰고 있다.

-<타짜2>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기획은 하고 있다. 잘 알려진 감독을 기용해 1편보다 규모를 키울 생각도 하고 있다.

-시장이 안 좋다면서도 여전히 대작을 기획하고 있다.
=대작임에도 제작비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또 순제작비 50억원이 넘어가는 프로젝트라면 외국에서 투자가 들어올 경우만 만들 계획을 세웠다.

-외국이라 하면 결국 일본일 텐데 거기서 지명도 있는 배우를 기용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큰 프로젝트에는 그런 배우를 쓰려고 한다. <무기의 그늘>은 배우 A를 생각하고 있고. <자객>은 B를 생각 중이다. <사막전사>는 C와 할 계획이다.

-해외 합작에서는 선구자 격인데, 해외와 관련된 프로젝트는 없나.
=우선 홍콩의 프로듀서 테렌스 창과 함께 LA를 배경으로 <첩혈쌍웅> 리메이크를 추진 중이다. 보람영화사와 공동제작하는 이승무 감독의 <사막전사>도 해외 합작영화다. 여기엔 <반지의 제왕> 등의 프로듀서 배리 오스본이 참여한다. 둘 다 미국에서 촬영되고 미국 배우들이 주가 되는 영화다. 미국시장을 보자는 거다. 그리고 <독비도>, 그러니까 ‘외팔이’ 리메이크는 홍콩쪽과 준비 중이다. 올해 말까지 준비해서 내년 초에는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홍콩 감독을 써서 한국에서 촬영하려고 한다. <자객> 또한 일본과 합작을 추진하고 있다.

-싸이더스FNH의 장기적 방향은 무엇인가.
=영화에 대한 의존도를 많이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올해 드라마를 한편 만들 계획이고, 자금이 된다고 하면 케이블TV의 PP(프로그램 공급자)도 해보고 싶다. 영화 채널에 참여한다든지, 싸이더스 브랜드를 단 채널을 만든다든지. 김미희 대표나 나나 뮤지컬에도 관심이 있고, 연극도 할 생각이 있다. 결국 수익원이 다각화됐으면 좋겠다.

-꾸준히 논의돼왔던 배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단독으로 배급하는 것보다는 다른 곳과 협업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현재 한 업체와 합작 회사를 구상중이다. 현재로선 거기까지만 이야기할 수 있다. 협상 중인 내용을 모두 비밀로 한다는 서류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3월 정도면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이기도 한데, 회사 일보다는 교수직에 더 관심을 쏟는 것 같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다.
=그럴 리가 없잖은가. 강의가 토요일 오전 3시간, 수요일 오전 3시간 정도라 일에 부담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

-그럼 교수직은 노후대책인가.
=이런 거다. 업계에서 노추가 되긴 싫고, 그렇다고 영화와 무관하게 살 자신은 없고. 만약 내가 실력이 없어서 영화산업에서 은퇴를 해야 한다면 부산영화제에 가서 얼쩡거릴 수가 없잖나. 그런데 영화과 교수는 부산영화제도 갈 수 있고, 그런 거다. (웃음) 사실, 책도 많이 낸다. 영화 제작 매뉴얼도 학교와 공동으로 만들고 있다.

-허문영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씨네21> 기자 시절이던 1999년, 차승재의 힘은 ‘사람 본위’의 노선에서 나온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주변에 득시글거리던 사람들이 하나씩 다 떠나는 것 같다.
=감독들도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내가 그들이 원하는 만큼 많이 못 해주니까 떠나는 거다. 많이 달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충족시켜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이를테면 어떤 감독들은 제작 지분의 50%를 달라고 하는데, 나는 못한다. 어떤 선배가 그러더라. 그러지 말고 50%를 주고 붙잡아두라고. 그런데 문제는 그래도 업계에서 영향력이 좀 있다는 내가 50%를 주기 시작하면 다른 데 가서는 60~70%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그건 프로듀서를 다 죽이는 일 아닌가.

-프로듀서의 자존심 문제라는 얘기인가.
=누군가 크게 돼서 나가면 또 새로운 사람을 키우면 된다. 신인이나 전작이 부진했던 감독을. 그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다. 그리고 그게 프로듀서의 능력이자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란 감독한테 빌붙어서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 요즘엔 영화 만드는 맛도 예전과 다를 것 같다.
=그렇다. 손맛이 아주 다르다.

-그럼 무슨 재미로 일하나.
=식구들 먹여살리는 재미다. 회사를 끌고 가는 것 말이다.

-그건 재미라기보단 책임감 아닌가. 책임감이 개인적 욕망에 앞서는 삶이라니.
=그래서 빨리 내가 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올라가다가 갈 데가 없으면 집에 가야지 별 다른 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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