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일본영화의 유행이 된 소녀배우들의 힘
2007-03-15
글 : 정재혁

일본영화의 섬세함은 롤리타 콤플렉스에서 나온다? ‘8590’ 일본 소녀배우들의 스크린 활약이 최근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허니와 클로버> <훌라걸스> <무지개 여신> <무시시> 등 지난 한해에만 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아오이 유우를 비롯해서,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첫사랑> 등의 미야자키 아오이, <크로스파이어>로 영화 데뷔한 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러프> <눈물이 주룩주룩>의 나가사와 마사미, 인기의 발판이 됐던 <스윙걸즈>를 지나 <행복의 스위치> <웃는 대천사> 등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우에노 주리 등. 2006년 일본영화는 소녀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대중문화잡지 <인비테이션>은 최근 발행한 3월호에서 “2006년과 2007년, 일본영화는 남성 중심의 기획에서 여성 중심의 기획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근래 활발해진 여자배우들에 초점을 맞췄다. TV드라마나 CF가 아닌 영화에서, 지금처럼 젊은 여자배우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영화는 지금, 왜 소녀들에 집중하는 걸까. 혹은 질문의 방향을 바꿔, 일본의 소녀들은 어떻게 일본 영화계를 유혹하는 걸까. 일본의 주목받는 소녀배우 7인을 대상으로 일본영화의 롤리타 증후군을 살펴보았다.

뉴제너레이션이 주도하는 여자들의 영화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여배우들은 90년대 중반 ‘개성파’라 불리던 여배우, 히로스에 료코, 시바사키 고우 등과 특색을 달리한다. 일본의 영화기자 가나자와 마코토는 “지금은 90년대에 대한 반동이랄까. 최근엔 개성파 배우들과 대조되는 익명성, 고풍스러운 느낌의 여배우가 많다”고 술회한다. 가령 창녀나 거지 등의 천한 역할을 연기하며 자신의 연기력을 입증하는 식의 여배우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허니와 클로버>의 순정만화 같은 화사함이나 <스윙걸즈>의 밝고 명랑함, <눈물이 주룩주룩>과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의 귀여움이 대중이 원하는 여배우의 이미지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최근 일본영화가 주력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부합한다. 동화, 만화 속 세계를 모델로 한 듯한 일련의 일본 대중영화들은 충돌과 혼란이 부재한 소녀의 얼굴에서 현실과 괴리된 세계의,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매우 섬세한 감정의 결을 따라 길어낸다. 일본의 소녀배우들은 어느새 일본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하나와 앨리스>
<눈물이 주룩주룩>

변화의 시점은 정확히 <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 사이다. 혹은 국내에서도 개봉돼 큰 인기를 얻은 2003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후다. <워터보이즈>의 쓰마부키 사토시 이후 남자 인기배우의 목록이 다마키 히로시, 하야미 모코미치, 야마다 다카유키 등 주로 동년배들로 채워진 것과 달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케와키 지즈루 이후 스크린을 찾아온 여자배우들은 1985년에서 1990년대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다. 85년생인 두명의 아오이와 86년생인 우에노 주리와 사와지리 에리카, 87년생인 나가사와 마사미와 가시이 유우, 88년생인 호리키타 마키, 좀더 아래로 내려가 <루트 225> <밤의 피크닉> 등에 출연한 89년생 다베 미키오와 <워터스> <신동>의 92년생 나루미 리코. 물론 이들 중에는 <워터보이즈> 이전부터 활동했던 아역배우 출신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영화계는 최근 여성 중심의 이야기가 늘어나면서, 새롭고 젊은 여배우들의 데뷔도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우울한 청춘> <로커스> 등의 남성 청춘영화가 <스윙걸즈> <린다 린다 린다> 등의 여성 청춘영화로 변모하고, 소녀적인 색채가 강한 <허니와 클로버> <나나> 등의 영화가 만들어져 성공적인 흥행을 거뒀다. 2007년 개봉영화 리스트를 보아도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소녀배우가 출연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여자 사진작가 출신 니나미와 미카 감독의 데뷔작 <사쿠란>은 여자 스탭들과 여자배우가 모여 만든 영화로 주목받은 작품. <불량공주 모모코>에 출연했던 모델 겸 가수 출신 쓰지야 안나가 출연한다. 호리키타 마키가 출연하는 <아르젠틴바바아>, 히로스에 료코가 2003년 <연애사진> 이후 오랜만에 주연으로 돌아온 영화 <버블에 고! 드럼머신>, 나가사와 마사미의 <그때는 그에게 안녕> 등도 여배우의 활동이 기대되는 작품들이다.

개성을 내세우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스윙걸즈>

일본의 영화전문지 <키네마준보>는 W아오이(아오이 유우와 미야자키 아오이를 더블(W) 아오이라 칭한다)와 나가사와 마사미를 현재 ‘여자배우계 두개의 기둥’이라 설명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선보이고 있는 두명의 아오이가 일본영화의 실험적 가능성에 문을 열어둔 배우라면, 밝고 귀여운 이미지로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대중 아이콘 나가사와 마사미는 일본 상업영화의 튼튼한 버팀목이란 뜻이다. 더불어 일본의 영화평론가 모리 나오토는 “도호 영화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배우들은 많아지고 있지만, 그들의 연기와 역할은 상당 부분 ‘기호성’에 얽매여 있다”고 불평했다. 90년대 개성파 배우 중심에서 2000년대 “무개성 중심의 배우”들이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만화가이자 뮤지션인 미우라 준도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타니 미키처럼 좀더 개성적인 배우랄까. 페로몬이 과다한 여배우가 최근엔 없는 것 같다”며, “다양한 타입의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여배우들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나가사와 마사미를 선두로 ‘숙녀보다 소녀의 느낌이 강한’ 여배우 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아쉬운 반응이다. 하지만 ‘도호의 여배우’들은 W아오이와 함께 일본영화에 산뜻함을 불어넣어주는 가장 큰 동력이다. 그리고 그 가공의 산뜻함은 일본의 ‘소녀영화’만이 선사해줄 수 있는 기쁨이다. 가령, 미우라 준의 말처럼 “좋아하지 않음에도 뒤를 돌아보게 하는 여배우”. 현재 일본영화 소녀시대의 핑크빛 미래는 매우 섬세하게 진동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어디에 있나

일본에서 여배우가 될 수 있는 등용문들

‘소녀의 왕관’을 거머쥔 스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일본에서 여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 몇 가지 등용문을 바탕으로, 여배우의 지형도를 그려보았다. 아슬아슬한 수영복 모델로 시작하는 그라비아 아이돌 유형, <세븐틴> <논노> 등의 잡지 모델로 시작하는 유형, 도호의 ‘신데렐라’ 등 유명 오디션을 통해 배우로 데뷔하는 유형 등. 90년대 초반부터 2007년 오늘까지, 일본 소녀배우가 걸어온 길.

아찔하게 시작하는 그라비아 아이돌
수영복 모델의 뜻으로 널리 알려진 그라비아(gravure)는 인쇄 방식을 의미하는 용어다. 대부분의 화보 사진이 그라비아 인쇄를 채택하는 데서 그라비아 모델이란 말이 유래했다. 특히 일본에서 남성을 타깃으로 한 만화책 중 한두 페이지를 수영복 모델의 사진으로 장식하면서 ‘그라비아 모델=수영복 모델’이란 인식이 강해졌다. 주로 10대 중반의 소녀들이 많이 선발되는 그라비아 모델은 이후 배우, 가수 등 연예인으로 성공하거나, AV 배우로 데뷔하는 등 진로가 확연하게 나뉜다. 배우로 성공한 케이스로는 사와지리 에리카, 이토 미사키, 아야세 하루카 정도가 있다.

<세븐틴> <논노> 등 잡지 모델로 스타트
길거리 캐스팅과 잡지 모델, 이후 이어지는 TV와 스크린 진출. 어느 나라나 비슷해 보이는 스타 등용문 중 하나인 잡지 모델은 일본 영화계에서도 매우 전통있는 인재풀이다. 가수로 활동 중인 기무라 가에라, <마미야 형제>에서 사와지리 에리카의 동생으로 출연했던 기타카와 료코 등이 <세븐틴> 모델 출신의 대표주자.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고유키, 최근 <러브★콘>에서 고이케 뎃페이와 주연한 후지사와 에카는 <논노> 모델 출신 배우의 대표주자다.

배우를 향한 로또에 도전! 영화사 오디션
도호의 ‘신데렐라’ 오디션은 영화사의 전통있는 배우 선발 프로그램. 1984년, 도호 창립 50주년 이벤트로 1회가 개최되어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단 행사는 3~4년에 한회씩 열리며, 지금까지 6회가 진행됐다. 나가사와 마사미, 사와구치 야스코 등의 인기스타를 배출했다. 지난해 개최된 오디션은 그랑프리 수상자에게 영화 <러프>의 출연 자격이 주어진다는 조건에 3만7443명이 응모했다. 이 밖에도 쇼치쿠 110주년 건립기념 이벤트인 ‘스타 게이트’, 가도카와 영화사와 소니뮤직이 함께 주최하는 ‘미스 피닉스’, 가도카와 춘수사무소와 음반사 에이벡스가 함께 진행하는 ‘여우 오디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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