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세계의 의상감독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트리샤 필드
2007-04-0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스타일을 디자인하다
<섹스 & 시티>

패트리샤 필드는 인터뷰 도중 디자이너인지 스타일리스트인지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한결같이 스타일리스트라고, 하지만 스타일리스트 그 이상이기도 하다고 대답한다. <섹스 & 시티> 의상을 맡으면서 패션을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필드는 그런 점에서 당당하다. “<섹스 & 시티>는 패션을 통해 여성에게 힘을 부여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커다란 코르사주와 스틸레토와 클러치백을 일상적인 소품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전세계 대도시의 스타일이 변했으니, 비록 런웨이에 서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나는 굳이 새로 디자인을 할 필요가 없다. 멋진 디자이너들은 이미 많기 때문이다.” 필드는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을 알아보고 매치하는 안목만으로 또 하나의 문화를 이루어냈고 그렇게 참여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2007년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선택한 이유는 “패션에 관한 영화가 아닌, 패션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패션계에 뛰어든 지 40년이 넘은 필드는 뉴욕에서 태어나 센트럴파크에서 뛰어놀며 자랐다. 전공은 언어와 정치학이었지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옷을 너무 좋아했다. 열세살 때 엄마가 실수로 트렌치코트 단추의 염색이 빠지게 만드는 바람에 난리가 났던 에피소드를 즐겨 말하는 필드는 파리에서 옷을 사다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자기 가게에서 팔기 시작했고,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독특한 옷을 찾는 스타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그렇게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그녀는 영화 <마이애미 랩소디> 의상을 맡으면서 중요한 사람 두명을 만났다. 한명은 <섹스 & 시티>로 재회하게 되는 사라 제시카 파커이고, 다른 한명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이었다.

1999년 방영을 시작한 <섹스 & 시티>로 필드는 “하이힐을 신고도 날 듯이 거리를 뛰어갈 수 있는 사라 제시카 파커와 함께 패션 여행을 시작했다”. 이 시리즈에서 스타일의 중심은 파커가 연기한 칼럼니스트 캐리였다. 그녀는 지미 추와 마놀로 블라닉과 프라다와 펜디숍을 탐색하듯 돌아다니면서 슬프거나 우울한 마음을 쇼핑으로 달래고 기쁜 마음을 쇼핑으로 북돋웠다. 그러나 필드는 캐리의 친구 세명에게도 독창적인 스타일을 부여했다. “패션은 이야기를 한다. 내게 패션은 그림이나 글쓰기의 사촌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술이다.” 그 믿음 그대로 사만다는 강인하고 위압적인 관능미를, 미란다는 이성적인 성품을, 샬롯은 로맨틱한 공상을 패션으로 드러낸다. <섹스 & 시티>를 보며 여성들은 자신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패션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해갈 수 있었다. <윌 & 그레이스>에서 스틸레토를 신은 그레이스가 넘어지면서 “전부 <섹스 & 시티> 때문이야!”라고 외쳤듯이 다소 부작용을 낳기는 했지만 말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소재뿐만 아니라 의상으로도 개봉 전부터 호기심을 끌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필드가 전부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디자이너 제품을 사용하며 파티하듯 일했던 영화다. 그녀는 “메릴 스트립을 지금껏 찍었던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진짜 주연인 앤 해서웨이는 “패션에 입문한 젊은 여인이라면 당연히 샤넬”이기 때문에 모자에서부터 코트와 핸드백까지 샤넬로 치장한 인상적인 모습을 비롯해 대부분 샤넬을 사용하고 캘빈 클라인 등 몇몇을 덧붙였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스트립이 맡은 미란다 프리슬리는 패션계의 여왕이었고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였다. 필드는 그녀를 위해 프라다와 오스카 드 라 렌타, 로베르토 카발리, 도나 카란, 카롤리나 헤레라 등을 동원했지만 이 제품들도 미란다 의상의 50%에 불과한 것이다. 필드가 제작진과 충돌해가면서 확보한 의상비는 사상 최고였고, 제품을 렌털하는 데만 100만달러가 들었다.

그렇다고 필드가 비싼 제품에만 눈이 벌게진 명품광은 아니다. 필드는 “미란다는 패션잡지 편집장이고 부유하고 나이도 있다. 그런 여성이 자라를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자신의 숍을 통해 젊은 무명 디자이너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가 간직한 궁극의 패션영화는 <제5원소>다. “<제5원소>는 멋진 예술과 패션과 세트 디자인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패션영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면 만족하겠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지폐 한장을 들고 점심을 사먹을까 <보그>를 살까 고민했던 캐리는 어쩌면 필드 자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패트리샤 필드가 말하는 패션

내 자신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스타일!

패트리샤 필드는 누구나 예산을 궁금해할 만큼 고가의 제품을 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나름대로 실용적이라고 믿는다. <섹스 & 시티> 마지막 시즌에서 캐리에게 엄청나게 비싼 드레스를 입히기는 했지만, 필드는 쿠튀르 제품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옷을 원하는 가격에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 예전에는 돈이 있으면 재봉사를 고용했다. 그것이 쿠튀르였다. 돈이 없는 사람은 직접 옷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기성복이 나타나면서 매장과 가판대에서 멋진 옷을 살 수 있게 됐다. 나는 그것을 패션이 속된 영역으로 떨어졌다기보다 민주화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건전한 일이라고도.” 그러므로 문제는 돈보다 안목이다. “돈이 있든 없든 당신은 옷장에서 무언가 선택을 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연두색이 어울리는지 보라색이 어울리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스타일이다. 색을 고르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때로는 가진 것 이상으로 멋지게 보일 수도 있는 법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생각해본다면 빚을 내지 않고도 쿨하게 보일 수 있다.” 필드는 그처럼 자신을 알아야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에는 피부톤이나 눈동자 색깔뿐만 아니라 내면도 포함되어 있다. “패션은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문화를 반영한다. 만일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보아야 한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겉으로도 그 마음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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