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멜로부터 공포까지, 동글동글 해도 다 할 수 있어요!
2007-05-17
글 : 강병진
사진 : 이혜정
<전설의 고향>의 박신혜

‘얼굴에 갑자기 섬뜩한 미소가 번지며….’ 영화 <전설의 고향>의 시나리오에 등장한 지문 하나가 낯설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춤추고, CF에서는 웃고, 드라마에서는 울던 박신혜에게 섬뜩한 표정이 어울리기나 할지. 아니, 어쩌면 그런 그녀가 공포영화에 출연한다는 것부터가 낯설었는지 모르겠다. 역시나 영화 촬영 내내 그녀가 주로 들었던 말은 “네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 그냥 귀엽고 웃겨”였단다.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무서운 느낌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얼굴에 심보만 가득해서 큰일이에요. (웃음)”

올해로 데뷔 6년째를 맞은 박신혜는 그동안 그 동글동글한 외모로 실제 나이보다 성숙한 언니의 면모를 보여왔다.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는 의붓오빠를 애절히 사랑했고,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는 16살 연상의 이혼남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쳤다. 그런가 하면 최근 <궁S>에서 연기했던 신세령은 가슴에 품은 상처를 도도한 표정으로 감춰야만 숨쉴 수 있는 여자였다. <전설의 고향>에서 맡은 소연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선상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을 한자리에 누워 꿈만 꾸며 살았던 소연은 긴 잠에서 깨어난 뒤 기억은 물론이고 자신의 원래 성격마저 잊어버린다. 자신이 동생을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에 괴로워하고 동생의 정혼자에게 품은 연정을 어쩌지 못해 방황하는 소연을 통해 박신혜는 이번에도 소녀보다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나이 많은 역할을 했던 게 도움이 되었는지 소연의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사실 그동안에도 함께 연기하는 분들과 나이 차도 별로 못 느낄 만큼 편하게 받아들였거든요. 어렵게 받아들여서 힘들게 촬영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해서 배울 것은 배우는 게 좋잖아요.”

현실보다 초침의 속도가 빠른 브라운관 속에서 성장해왔지만 현실의 박신혜는 친구들과 한달에 5천개의 문자를 주고받고, 미니홈피로 대화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이것저것 먹기 좋아하기에 일명 ‘박돼지’로 불리는 그녀는 자신의 통통한 얼굴에 대해 “복슬복슬하게 생겨서 아줌마들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씩씩함도 가지고 있다. 또 이제는 데뷔작인 <천국의 계단>을 보며 “그때는 정말 시키는 대로 다 했었다”고 말할 만큼의 여유까지 생겨났다.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춤을 배우며 매일같이 눈물을 머금고 살아야 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와 비교하면 더없이 튼튼해진 심장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발랄함은 험난한 연예계 생활에서 비롯된 남다른 성장통 덕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어할 거면 뭐하러 시작했냐”는 엄마의 진심과 다른 한마디와 “더러워서라도 해내서 이겨내는 게 낫다”는 매니저의 조언과 “내가 찍은 사람 중에 잘 안 된 사람은 없다”는 소속사 드림팩토리의 공장장 이승환의 문자들은 지친 그녀에게 고스란히 힘이 되곤 했다.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항상 울고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수많은 상처와 비판과 욕설을 인정하고 좌절하면 패배하는 거잖아요. 그때마다 한번씩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웃음)” 혹시나 갖은 구박을 견디며 뺨까지 맞아야 했던 <천국의 계단>의 정서와 <천국의 나무>의 하나가 모두 그 시간을 견뎌온 박신혜의 모습은 아닐까. “<궁S>의 신세령이 그래서 좋았어요. 이전 작품에서는 만날 맞고 울기만 했는데, 신세령은 남을 괴롭히는 구석이 있다보니 이게 또 재미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웃음)”

여인과 소녀의 경계를 넘나들던 박신혜는 올해로 18살이 되면서 실제 10대와 20대의 경계에 서게 됐다. 10대의 대부분을 관심의 장막 안에서 살았던 만큼 이제는 “온실 속의 화초에서 벗어나는 것”이 20대를 맞이하는 그녀의 남은 숙제다. “누군가한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행복을 얻은 만큼, 거기서 벗어나긴 힘들어졌잖아요. 온실 밖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 만큼 튼튼해져야죠.” 언제나 배우의 성장속도보다 앞서가는 관객의 바람은 우선 그녀의 10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뒤에 드러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저의 10대는 순수했던 아이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색깔도 다 받아들였던 투명한 유리잔 같은 아이요.” 아마 동글동글, 복슬복슬했던 볼살까지도 기어이 함께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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