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 진중한 울림의 A급 감동
2007-07-03
글 : 정재혁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법

가슴에 쿵하고 무겁게 떨어지는 대사, 눈시울을 천천히 적셔오는 음악, 소리 내진 않아도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게 해주는 이야기. <철큰 근크리트> <신동>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은 보고나면 가슴이 훈훈해지는 영화들이다. 말초적인 재미보단 진중한 울림을 주는 영화 3편을 모았다.

철콘 근크리트 鐵コン筋クリ-ト

감독 마이클 앨리어스 | 목소리 출연 니노미야 가즈나리, 아오이 유우, 이세야 우스케, 구도 간쿠로, 다나카 민 | 2006년 | 110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도시, 삶은 무엇이 지탱하는가. 노숙자와 야쿠자들이 모여 사는 거리 ‘다카라쵸’에는 쿠로(黑)와 시로(白)란 이름을 가진 두명의 고아소년이 있다. 고양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다카라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고 다니는 아이들. 하지만 다카라쵸에는 ‘어린이 성’ 프로젝트로 떼돈을 벌어보려는 외부인과 야쿠자의 음모가 다가온다. 다카라쵸를 자신의 근거지마냥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쿠로와 시로는 이들에게 눈엣가시. 이후 영화는 다카라쵸를 지키려는 쿠로, 시로와 그 거리를 자신의 마을로 만들려는 조직의 대결을 그린다.

<우울한 청춘> <핑퐁> 등으로 유명한 마쓰모토 다이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철콘 근크리트>는 콘크리트의 냄새를 전하기라도 하듯 도시 묘사에 충실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다르고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묘한 기운을 내뱉는다는 콘크리트의 향내는 다채로운 색감의 그림을 통해 표현된다. 도시의 뒷골목과 피폐한 구석의 어둠은 쿠로의 내면을 적절하게 드러낸다. 영화적인 연출도 눈에 띤다.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서 디지털 이펙트 작업을 했던 마이클 앨리어스 감독은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을 통해 역동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하늘에서 땅으로 급하게 떨어지는 이동이나 도시 전체를 빠르게 돌아보는 회전이 두드러진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도시의 드라마로 풀어가는 화법도 뛰어나다. “부모의 죄는 자식이 진다”는 대사나 트로이와 카산드라의 에피소드를 인용하는 부분은 쿠로와 시로가 왜 그렇게 다카라쵸에 연연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인생의 진실이 무겁게 가슴을 누룬다. 영화의 마지막, 시로가 지구별 일본국에서의 교신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는 함께 박수를 쳐주고 싶어질 정도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미국의 예술잡지 <아트포럼>이 선정하는 2006년 베스트필름에 뽑혔다.

초호화 보이스 액팅

목소리에 값을 매긴다면 <철콘 근크리트>의 캐스팅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쿠로와 시로를 각각 연기한 인기 댄스그룹 아라시의 니노미야 가즈나리와 <훌라걸스> <허니와 클로버>의 아오이 유우는 물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허니와 클로버>의 이세야 유스케, <메종 드 히미코>의 히미코를 연기한 다나카 민도 참여했다. <이치 더 킬러> <돌스>의 오모리 나오와 개그 트리오 모리 산추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스타들의 색다른 목소리를 듣는 재미로 영화를 봐도 나쁘진 않을 듯. 참고로 아이오 유우가 연기한 캐릭터는 남자아이다.

신동 神童

감독 하기우다 고지 | 출연 나루미 리코, 마쓰야마 겐이치 | 2007년 | 120분

13살 소녀 우타(나루미 리코)는 피아노 신동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제는 피아노를 싫어한다. 학교도, 피아노 레슨도 지루할 뿐이다. 반면 대학 입시를 앞둔 와오(마쓰야마 겐이치)에게 피아노는 애정의 대상이다.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며 계속 따라가야 할 과제다. 와오는 우타의 실력을 부러워하지만 우타는 와오의 재능에 호기심을 느낀다. 귀가 좋은 와오는 바다, 물, 바람처럼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리에 별다른 느낌을 가져보지 못했던 우타는 어느 순간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아챈다. 아버지의 죽음과 과거의 상처를 연상시키는 소리. 우타는 이제 병과 싸워야 한다.

사소우 아키라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이 영화는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다른 성장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을 하는 두 인물 우타와 와우의 캐릭터 설정도 진부하다. 하지만 하기우다 감독은 음악을 통해 표현되는 인물들의 아픔과 극복만큼은 아름답게 그려낸다. 음악이 끝난 뒤 전해지는 여운에서 사람의 슬픔이 느껴지는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ALWAYS 三丁目の夕日

감독 야마자키 다카시 | 출연 호리키타 마키, 쓰쓰미 신이치, 고유키, 요시오카 히데토시 | 2005년 | 133분

2006년 일본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 12개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 무츠코는 집단 취업으로 도쿄에 올라온 십대 소녀다. 작은 정비소에 일터를 잡고 정비소 사장인 스즈키(쓰쓰미 신이치)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 같은 마을에서 과자점을 운영하는 류노스케(요시오카 히데토시)는 삼류 소설가로, 고백도 못하고 혼자 좋아하는 여자 히로미(고유키)의 부탁으로 남자아이를 떠맡고 있다. 소설을 좋아하는 그 아이는 류노스케의 팬. 류노스케도 점점 그 아이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1950년대 도쿄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삶을 그린 만화 <3번가의 석양>을 영화화한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즐겁게 살았던 쇼와 시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다. 마을에 하나뿐인 텔레비전을 함께 모여 보고, 살림이 어려워 고향에도 가지 못하는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에피소드가 따뜻한 정취로 그려진다. 소박한 이야기지만 배우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라스트 사무라이>, 드라마 <닥터고토의 진료소 2006>의 요시오카 히데토시는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의 미지근한 열정을 정확히 짚어내고, <히노키오>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호리키타 마키는 사투리를 구사하며 시골 소녀의 풋풋함을 잘 살려낸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고유키,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쓰쓰미 신이치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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