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고를 빼고는 일본 만화를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일본 만화의 선구자로는 물론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요코야마 미쓰테루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가이 고의 만화는 폭력, 반영웅, 섹스, 분노, 파괴 등 화사한 빛의 세계 반대편에 존재하는 어둠의 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해냈다. 나가이 고는 이 세상에서 신성시하는 모든 것을 더럽히고 전복시킨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창조했다. 성인이 된 일본 만화는 안티 테제인 나가이 고의 존재로 인해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나가이 고는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게타 로보>의 작가로서, 로봇 만화의 혁신을 가져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독자적으로 움직이거나 조종기를 통해 움직이던 로봇은 <마징가 Z>에서 조종사가 직접 로봇에 탑승하여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뀐다. 최초의 변신합체 로봇 만화인 <게타 로보>는 3대의 머신이 합체를 하여 하나의 로봇을 만들고, 합체하는 방식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의 로봇이 만들어지게 된다. 로봇과 조종사가 직접 감응하고, 합체를 이용하여 거대 로봇이 만들어지는 등 이후 나온 모든 로봇 만화의 출발점은 바로 나가이 고였다.
일본 만화계에서 나가이 고가 추앙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극단적인 ‘무정부주의’ 사상 때문이다. 나가이 고의 대표작이라 할 <파렴치 학원> <바이올런스 잭> 등은 국내에서 출간되기 힘든 파격적인 만화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해만화 논란을 일으킨 <파렴치 학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생과 학생, 교육의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박살내버린다. 기괴한 복장의 교사가 여학생의 치마를 들추고, 학생은 선생에게 폭력으로 대항한다. 부도덕과 폭력이라는 <파렴치 학원>의 파격적인 주제는, 나가이 고 만화를 관통하는 일관된 모토였다. <바이올런스 잭>은 폭력과 섹스를 극단적으로 그려낸 가장 암울한 미래의 묵시록이고, <게코 가면>은 마스크와 장갑, 부츠 이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여성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여 여학생들을 고문하는 변태 선생들과 대결한다. 나가이 고의 만화는 온통 폭력과 ‘성적 묘사’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나가이 고는 성과 폭력에 함몰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과 폭력을 선택한 것이다. 나가이 고는 희망이 사라진 세상에서 위선을 떨고 있는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테러리스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징가 Z> 역시 원작 만화는 꽤 과격하다. 카부토 박사는 마징가 Z가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헬 박사의 로봇이 등장할 때마다 도시는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헬 박사의 기지와 로봇들은 그리스 신화를 연상시키고, 오히려 마징가 Z는 악마의 형상이다. <게타 로보>는 더욱더 죽음과 파멸의 세계로 나아간다. 게타 로보가 백귀제국과 싸우는 동안에 국가에서는 세균무기를 만들며 전쟁을 준비하고, 부활한 아틀란티스는 자신들만이 살아남고 인간은 모두 죽이려 한다. 게타 로보는 집단이나 국가가 아니라, 단지 인간만을 위해 싸운다.
하지만 나가이 고의 반영웅들이 정확하게 인간의 편도 아니다. 나가이 고는 인간이란 존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데빌맨>은 악마와 싸우기 위해 데빌맨이 된 소년의 이야기다. 고고학자였던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아키라는 숨겨진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된다. 인간 이전 지구를 지배한 자들은 바로 악마였고 이제 그들이 부활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막아내고,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의식을 가진 누군가가 악마와 합체하여 데빌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빌맨이라는 존재는 모호하다. 그는 인간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선과 악을 함께 가진 존재는 바로 인간인데, 거기에 악마가 더해진 데빌맨의 정체는?
<데빌맨>에서는 때로 악마보다도 인간이 더욱 잔혹하고 무자비한 존재로 등장한다. 나가이 고가 보기에 인간과 악마의 차이는, 없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고, 위선과 광기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나가이 고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란 존재가 사악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나가이 고의 세계는 결코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찬 곳이 아니다. 오히려 불신과 분노, 불안으로 가득한 세계다. 나가이 고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폭력으로 모든 것을 뒤엎은 뒤에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아니 말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철저한 묵시록의 세계 그 자체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