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아름답고도 차가운 물질들의 세계
2007-08-02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감 사이에서 개인의 일상을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초속 5센티미터>

지구의 중력을 뚫기 위해 초속 11km로 하늘을 질주하는 우주선의 가공할 속도도, 풍경을 뚫고 지상을 달리는 시속 100km라는 차가운 전차의 속도도 때로는 초속 5cm로 살랑대며 떨어진다는 벚꽃의 낙하와 같이 천천히 흐르는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 이들을,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에 둔 채 원경(遠景)에서 바라본다면 말이다. 현재나 근미래를 가까이서 바라보지 않고 늘 저 멀리서 바라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각이라면 시간은 아마도 초속 5cm로, 쉽게 바스러지는 벚꽃 잎처럼 섬세하게 흘러갈 것이다. 어쩐지 그가 생각하는 현재는 저 먼 아득한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그곳을 향한 인력이 없다면 존재의 근거가 상실될 것만 같은 실존적 결핍감 속에 놓여 있는 현재다.

전작 <별의 목소리>(2002)에서 SF의 ‘물질적 요소만’을 탈색시킨 이 작품은 여러모로 <별의 목소리>의 후신이라 할 만하다. 감수성 예민한 성장기의 소년 소녀를 둘러싼 폐쇄적인 세계, 학교와 전차와 교차로, 편의점과 계단이 늘어선 좁은 언덕, 지연되어 도착하는 문자메일이나 편지를 통해서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일,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대한 문학적 포착, 교차되는 소년과 소녀의 보이스 오버, 그리고 아득한 시공간을 향한 근원없는 우주적 향수감은 여전하다. 다만 앞선 작품에서 스물다섯이 된 노보루가 저 먼 우주에 있는 열다섯의 미카코의 문자를 받는 식으로 시간을 공간화했다면,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시간을 서정적으로 풍경화했다. 정물 같은 도시와 시골의 풍경 속으로 고독한 사람들의 독백이 이어지고, 풍경과 사물들의 압도적인 인상으로 인간은 더 왜소해 보인다.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감정은 늘 사물의 물질성과 일기(日氣)의 정신성 사이에 놓여 있다. 뒤얽힌 전선과 전신주, 자전거 바구니에서 비를 맞고 있는 빈 음료수병들, 형광등의 차가운 불빛에 노출된 약간 무질서한 텅 빈 교실의 책걸상, 편의점의 냉장고에 차갑게 늘어선 음료수 병들의 질서. 이러한 물질들이 일상적인 삶의 감성과 만나서 만드는 감수성을 포착하는 데 능란한 신카이 마코토는 그런 점에서 일종의 감상적 유물론자라 할 만하다. 그리고 청명한 대기와 하늘을 가로지르며 외롭고 쓸쓸한 마음들이 서로를 그리워한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 날씨와 하늘의 기상(氣象)은 내면의 반영처럼 때로는 반짝이고 투명하면서 광활하여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아름다움의 소멸에서 오는 무상감을 말하며 상실을 주제화하는 일본의 보편적 미학 속에 있으면서도, 그의 애니가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은 그가 지닌 어떠한 시간 감각에서다. 독특한 감수성과 대안적 1인 제작시스템에 대한 찬사의 다른 한편에서, 그의 작품들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한층 더 골몰된 ‘세카이계(せかい系: 준거 집단이 한정된 주인공의 주변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으며, 이들의 내면 심리가 세계의 운명에 심각하게 관련되는 애니의 계열)에 빠진 자폐적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첫 장편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역시 이러한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교차되던 보이스 오버가 겹치는 마지막 순간, 어떠한 가능성이 드러난다. 가령, <별의 목소리>에서 소년 소녀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나는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나, <그와 그녀의 고양이>(1999)에서 나도 그리고 그녀도 분명 “이 세상을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는 마지막 순간, 과거를 넘어서 미래를 향한 어떠한 긍정적 예감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번 <초속 5센티미터>에는 주인공들의 어깨에서 지구의 운명을 걷어냈다. 물론, 현재에 주인공들을 고독하게 방치해두기는 했지만 저 먼 미래와 낯선 타자에 대한 만남의 예감만큼은 남겨두었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 과거라는 아스라이 그리운 시간에 대한 분위기는 저 먼 우주라는 아득한 공간에 대한 느낌과 등가를 이룬다. 아카리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저 먼 고독한 우주의 미지적 존재와의 만남에 대한 심오한 ‘예감’과도 같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과 예감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지점에 갖다놓는 그는 늘 세겹의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기억은 늘 아름다운 벚꽃이 떨어지는 과거지만,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현실은 벚꽃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이다. 그리고 이 차가운 계절을 사는 남자의 시선은 먼 하늘을 보고 있다. 이렇게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감 사이에 놓인 개인의 현재적 일상을 중립적으로 바라보면서, 감독은 인간을 아름답지만 차가운 물질들의 세계에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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