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남자친구> 이후 2년 만의 영화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제외한다면 한동안 활동이 뜸했다. 뭐하고 지냈나.
=글쎄. 특별히 뭐했나 물어보니까 생각이 안 나는데. (웃음) 그냥 혼자 지냈다. 운 좋게도 시나리오는 참 많이 받았다. 열심히 읽어본 것만 20~30편은 되는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고르나.
=우선 장르에서 반은 버린다. <B형 남자친구> 이후에 코미디는 안 하겠다고 생각해서 모든 코미디를 다 버렸다. 그 다음에는 재벌 2세를 다 버렸고. (웃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마침 내가 혼자 가는 영화보다 좋은 배우들하고 같이 가는 게 필요하겠다 생각하던 차에 들어와서 쉽게 선택했다.
-캐릭터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원래는 영준이 민재보다 나이도 많고, 사회적으로도 훨씬 안정된 역할이었는데 내가 맡게 되면서 젊어졌다. 본래 전형적인 CEO 이미지였던 것을 보수적이지 않고, 오히려 보통 직장인들보다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다.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이기적이고 까칠한 모습이, 기존의 이동건 이미지에서도 쉽게 연상됐다.
=재밌었다. 워낙 내가 못되고 까칠한 역할을 좋아한다. 내가 원래 갖고 있는 이미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준과 나를 비교하자면 닮은 부분은 30% 정도? 나는 뭐, 거만하거나 건방질 이유까지는 없는 것 같고,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도 주도적이지 못하고 혼자 노는 타입이다.
-박용우는 연기하면서 죄책감도 느꼈다고 하던데, 그런 고민은 없었나.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웃음) 물론 유부남이고, 바람 피우는 설정이니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있었다. 육체적으로 잔다, 안 잔다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리액션이나 표현에서 어떤 것 이상을 주게 되면 영준이 참 나빠 보일 수 있다. 그런 미묘함이 가장 힘들었다. 그런 느낌을 용우 형은 죄책감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나는 이렇게 하고 싶지만 저렇게 참는 모습을 보여줘야 이 사람이 못돼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그런 느낌이었다.
-캐릭터에 몰입해 들어가는 과정이 궁금해진다.
=정말 내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대본 밖의 것들이다. 그냥 걸어가는 모습, 밖을 쳐다보는 모습, 자는 모습, 그런 건 누가 만들어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영준을 맡았을 때는 평상시에 영준처럼 하려고 했다. 큐 사인이 나왔을 때, 그런 몸에 밴 모습들이 나와야 관객이 아, 저건 캐릭터다,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작품 뒤에도 한동안 잔향이 있을 것 같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역할 자체에 내가 정말 매료되었거나, 혹은 작품이 너무 많이 사랑받아서 대중이 내가 그런 인간이 되길 바라는 경우이거나. 그러면 좀 헤매는 경우가 있다.
-<파리의 연인>이 그랬겠다.
=그렇다. 외모적으로나 취미적으로나 굉장히 오랫동안 내가 거기서 나오기 싫더라. 그래서 아예 머리를 빡빡 밀고, 추리닝 입고 다녔다. 그렇게 확 바꿔버리면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스스로 고집이 굉장히 센 성격이라고 종종 말하는데, 일할 때 마이너스가 되진 않나.
=연기자에게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연기자가 연기자라고 할 수 있는 건 인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이건 누구건 시켜서 그렇게 한다면 그건 꼭두각시지. 아무리 신인배우고 아무것도 몰라도 자기 역할에 대한 고집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고집 때문에 크게 싸운 적은 없나.
=내가 호전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같이 호전적이면 100% 싸운다. 한 작품에 한두번 정도는 내가 엎고 가거나, 감독이 못 찍겠다고 빼거나, 한번 정도는 치고받는 편인 것 같다. (웃음)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 건달로 나왔다. <파리의 연인> 이후 이동건, 하면 기대하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한 마음이 읽히더라.
=나에게는 굉장히 큰 시도였다. 만날 앞에 귀공자, 왕자님 붙던 애가 건달을 했으니까. 원래 내가 갖고 있던 느낌이 그 드라마 안에서는 하나도 안 보인다는 거, 그게 너무나 뿌듯했다. 그런데 SBS 방영본을 봤다면 드라마의 반을 본 거다. 본래 300분 분량으로 나왔는데 SBS에서 편성이네 지랄이네 하면서 200분으로 줄였으니까 무려 100분이 날아갔다. TV 앞에 앉아서 다음 프로 나올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참, 장사구나, 하는 걸 느꼈다.
-늘 듣는 이야기일 텐데, 가수로 데뷔하지 않았나. 연기자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 계기가 있었나.
=<광끼>를 1집 앨범 홍보하려고 했었고, <세친구>를 2집 홍보하려고 했었다. 근데 앨범은 다 망하고, 작품은 잘됐다. 본래 1, 2집 말아먹고 3집 나오는 가수가 있을 수 없는데, 나는 3집의 기회가 있었다.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3집을 준비하면서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부 엎어버리고 한 2년 놀았다. 방황하다가, 어디 연기 한번 해보자, 어디까지 되나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베스트극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지금까지 쭉 오고 있다.
-평생 연기할 생각 없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진가.
=연기를 생활로 하고 싶진 않다. 나중에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하기 싫다는 거다. 내가 봐서 내가 멋있을 때까지만 하고 싶다.
-연기를 안 한다면 뭘 하고 싶나.
=사업하고 싶다. 지금도 뭐 내놓고 있진 않은데, 준비는 하고 있고. 나는 내 자식들한테 아침에 넥타이매고 출근하는 아빠이고 싶다. 한두달 안 보이다가 또 두달 집에서 널브러져 있는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어떤 사업인가.
=다 비밀이다. 연예계쪽과는 전혀 관계없다. 나중에 연매출이 한 100억원 되면 자랑하려고 한다. (웃음)
-지금까지는 주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영화에 대한 갈증은 없나.
=앞으로는 영화 위주로 활동할 거다. 일단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차은택 감독님과 다음 작품을 함께하기로 했는데, 우주인 소재의 이야기로, 100%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질 거다. 영화판이 빨리 좀 다시 좋아졌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