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폼 재지 말고 오래오래
2007-08-10
글 : 최하나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민재 역의 박용우

-작품이 달라져서 그런가. <뷰티풀 선데이> 때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그때는 역할이 피폐했지 않나. 혼자 홍보하러 다니느라 많이 지치고, 여기저기 다크서클 생기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화나셨어요, 그랬었다. (웃음) 지금은 확실히 좋아지긴 했는데, 사실 어제는 잠을 거의 못 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 계약을 했는데, 감정이 묘한 게 잠이 안 오더라. 뿌듯하기도 하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색했다고 할까. 뭐, 그래도 기분은 좋더라. (웃음)

-많이 듣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 (웃음)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거다. 감정이라는 건 거래를 해서 되는 게 아니잖나. 벌써 늦었는데, 천천히 하지 뭐. 부모님은 올해를 데드라인으로 하셨다는데 그렇다고 뭐, 날 죽일 거야? (웃음) 좀 염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반자를 만나는 거다.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평생토록.

-그러고 보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처음 볼 때도 그랬지만, 나는 이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는다.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실 이루기 힘든 사랑이 눈에 더 띄지 않나. 그래서 양념을 가미한 것이 이른바 ‘크로스 스캔들’이라고 생각한다.

-민재는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면서도 의외로 쉽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렇다고 냉큼 달려가지도 못하는 인물이다. 이도저도 못하고 중간에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단선적인 인물이 아니다. 바람둥이면 바람둥이, 터프가이면 터프가이, 이런 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확실한 사연이 있어서, 이래서 내가 너를 떠난다, 하면 쉽지 않나. 확실한 결론이 나고. 근데 그런 게 아니어서 관객이 보기에 헷갈릴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난 민재가 넷 중에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틀만 놓고 보면, 스와핑, 불륜 등의 단어와 함께 뻔한 것들을 상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인데,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아침 드라마풍이 아니라 좋더라.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더 쿨하게 나왔다. 질질 짜는 장면도 없고, 너 죽고 나 살자 그런 것도 아니고. (웃음)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열린 구조라고 할까. 이런 것도 사랑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냐 없느냐, 결론을 짓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이들에게 박수를 칠 필요까지는 없어도, 돌을 던질 사람도 없다고 본다. 그저 영화를 보고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름이 더 알려질수록, 작품 선택 등에서 외부적인 조건들이 더 많이 개입하게 돼 괴롭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은 것 같나.
=기본적으로는 영원한 숙제라고 본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건, 몇달 전보다 내가 편해졌다는 거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 내가 ‘난 무조건 귀걸이만 해야 해’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자신을 속박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쨌든 같은 ‘걸이’잖나. (웃음) 또 내가 코걸이를 해서 안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때는 빼면 되는 거다. 그럼 살이라는 게 아물고, 다시 메워지거든. 앞으로도 분명히 그런 부분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겠지만, 모든 걸 다 떠나서 나는 분명히 편안해졌다는 거다.

-지난해부터 쉴새없이 달려왔는데, 좀 쉬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항상 이거 끝나면 쉬어야겠다 생각은 한다. 근데 한 3주 지나면 좀이 쑤시는 거다. (웃음) 뭐 취미가 있나, 그렇다고 애인이 있나. 시체처럼 지낼 수 없으니까 이제 또 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거다.

-차기작이 정해진 게 있나.
=생각하는 건 있다. 근데 확실해져야 말할 수 있는 거니까. 일단 다음 작품에서 사랑 이야기는 안 하고 싶다. 이번 작품 하면서 감정적으로 하도 혼란스러워서. 죄의식도 느끼고.

-아니 무슨 죄의식을.
=아무래도 캐릭터하고 일원화해야 하는데, 나 같으면 이러지 않을 것 같고. (웃음) 아, 이거 왜 이러고 있어,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거기에 대한 자기 번뇌도 생기고, 애증도 생기고. 아무튼 복잡했다. 다음 작품은 좀 쉽게쉽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웃음)

-민재의 대사 중에 아내를 보며 아직도 심장이 뛰면 심장병이지,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 대사를 연기에 적용해본다면 어떤가. 아직, 심장이 뛰나.
=너무너무 뛴다. 아주 그냥, 벌렁벌렁 뛴다. (웃음) 항상 어떤 작품이건 초반 들어갈 때 그 떨림을 감추느라 고생한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은 많이 모자라고,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 때문에 늘 괴롭긴 하지만 어쨌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유일한 분야가 아닌가 싶다. 계속 그랬으면 좋겠고. 더 욕심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설렘을 좀 받고 싶다. (웃음)

-오래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오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폼 재지 말자, 인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작품들을 할 텐데, 분명히 성에 안 차는 것도 있겠고 편집에서 잘리는 것도 있을 테고 역할 비중이 작을 때도 있을 거고, 많은 경우가 있겠지만 폼을 재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 사실 멋지게 보이는 걸 누가 싫어하겠나.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걸 최대한 버려야 진실된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폼 재고 싶은 욕망과의 끝없는 싸움을 나도 지금 하고 있고, 최대한 내 폼을 없애려고 한다. 다행히 성공한다면 너무 좋고. 그러면 좀 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의상협찬 도미닉스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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