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와일드카드> 이후 4년 만의 영화다. 그동안 많은 제의가 있었을 텐데.
=꼭 이거다, 저거다 가리는 건 없지만 <쾌걸춘향> 이후로는 아무래도 드라마쪽 캐릭터가 나에게 맞는 옷 같더라. 영화쪽에서는 내가 못되게 생겼는지 ‘센’ 역할이 자주 들어왔다. (웃음) 사람들은 내 실제 성격까지 그런 줄 아는 것 같더라.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말이지. (웃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하하. 다들 그렇지 않다고 그러던데.
-<지금 사랑하는…>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봤나.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얘들은 왜 이러지? 이 영화는 일단 ‘어른’ 영화지 않나.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조금은 알 것 같더라. 아, 사랑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그런 거.
-어른 영화? 20대 후반이고 결혼까지 했는데, 충분히 어른이지 않나.
=하하. 물론 어른이지. 그런데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그런지 보통 사람들이 느끼고 사는 걸 나는 경험하지 못한 게 많다. 항상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그들의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정말 아직도 나 혼자 못하는 게 많다. 그럴 때 보면 난 아직 애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바보 같을 때도 있고.
-조금은 극중 소여랑 비슷한 부분이 있네.
=음, 나도 나 스스로 짜놓은 틀 안에서 살려고 한다. 너무 개방적이지 않고 쿨하지도 않다. 시간약속도 잘 지키는 편이고, 애초에 좀 벗어나고픈 생각이 있으면 아예 약속을 안 잡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차피 내가 정해놓은 틀이니까. 하지만 나는 소여처럼 사랑을 안 해보거나 그런 건 아니다. (웃음)
-오락 프로그램이나 다른 인터뷰에서 보면 연애에 큰 자신감을 보여줄 때가 있다. 심지어 연애할 때 차여본 적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가 누구나 선망하는 외모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글쎄, 연애를 하다보면 동의하에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느낀 싫증을 상대방이 인정해서 헤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내가 잘나서 차여본 적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기자들은 꼭 그렇게 쓰더라. (웃음)
-<쾌걸춘향> 이전까지는 몇몇 CF나 포털 사이트 게시판 외에는 거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신비주의 전략이었나.
=나는 정말 신비주의 하고 싶은데, 워낙 말을 많이 해서…. (웃음)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또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서 내 이야기를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한국말도 서툴 때였으니까, 소속사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겠지.
-그런 게 답답하기도 했을 텐데.
=답답했지. 왜 신나라나 춘향이는 대사가 굉장히 많지 않았나. 그래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도 속시원했다. 이전에는 주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눈으로 하는 캐릭터였지 않나. (웃음) 이번에도 소여에게 주어진 대사가 별로 없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나오는 장면을 3일 정도 찍은 게 있는데, 내 대사는 ‘네’ 한마디가 전부였다. 3일 동안 정말 입에 곰팡이 생기는 줄 알았다니까.
-피겨스케이팅을 7년이나 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키가 자라서 그만두었다던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했다. 처음부터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다.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때는 미국 애들이 스케이트장에서 생일파티를 하곤 했다. 엄마가 보기에 이런 걸 못 타면 안 되겠다 싶어서 시킨 거였다. 그런데 하다보니 재밌더라. 조금씩 배워가면서 나중에는 점프해서 두번 돌고 이런 것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완성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 정말 컸다. 그만둘 당시에는 상처가 컸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가끔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정도지.
-한국에 와서 우연히 만난 전유성씨가 “얼굴에 뭔가가 있다”는 말을 해준 게 데뷔 계기였다고 하더라. 연기를 처음 했을 때는 지금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데뷔하고 나서도 후회를 많이 했다. 왜 그때 매니저는 나한테 연기를 가르치지도 않고 내보냈을까, 그런 아쉬움이 많았다. 연기는 지금도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가을동화>를 가끔 케이블에서 보지는 않나.
=악, 정말 보고 싶지 않다. 나도 가끔씩 깜짝깜짝 놀란다. 다행히 그때부터 카메라에 비치는 내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화장을 진하게 했는지…. (웃음)
-결혼을 너무 빨리 한 건 아닌가? 예전에 비해서는 최근 2, 3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더 많은 욕심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결혼한 뒤에도 지금처럼 똑같이 일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생활이 안정됐으면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연애도 재밌게 하고 싶었지만 남편을 만나면서 이 사람과 평생 살아도 행복할 것 같더라. 특별히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원래 누군가에게 빨리 질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함께 다니는 스탭들도 다 오래된 사람들이고, 소속사도 7년 전에 만난 곳이다. 원래 내 곁에 있어서 편안한 것들이 좋다. 결혼해서도 어떤 변화를 맞기보다는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고 있다. (웃음)
-<해적, 디스코왕 되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연기는요 재밌을 줄 알았는데, 재미없어요.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뭐가 그리 힘들었기에 기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건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나? (웃음) 그런데 사실 힘든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은 내가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옛날에는 무조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내 인생처럼 느끼고 있다. 이제는 악플도 괴롭지 않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