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데쓰 프루프>와 B급영화의 전설 [2]
2007-09-06
글 : 김도훈

동시개봉 B급영화의 귀환을 위한 장치들

그렇게 타란티노의 거실에서 로드리게즈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를 하나로 묶은 <그라인드 하우스>다(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두 영화가 독립적으로 따로 개봉한다). 그라인드 하우스는 70년대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들을 상영하던 극장을 일컫는 말이며,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상영되던 영화들을 모조리 취합해서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라고 불렀다. 그것은 특별한 장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2본 동시상영관에서 상영되던 모든 장르의 B급영화들을 일컫는 단어였다. 물론 대부분의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들은 대중의 호색한적 감성을 자극하는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들이었다. 타란티노는 R등급 영화를 볼 나이가 되자마자 그라인드 하우스로 달려가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들을 탐닉했노라 고백한다. “나는 76년부터 상영된 모든 쿵후영화를 다 봤고, 이탈리안 호러영화와 폼-폼-소녀(치어리더) 영화까지 모조리 봤다. 같은 영화를 세번 연속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할리우드영화에서 얻지 못하는 즐거움을 <스타십 비너스에서 온 소녀> 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들에서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타란티노는 <데쓰 프루프>에서 온갖 잔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그는 화면에 스크래치를 내고 화면을 태워버리는 효과를 첨부하고 일부러 포커스를 흔들어댄다. 가장 재미있는 건 ‘잃어버린 릴’(Missing Reel)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주인공 여자 중 한명이 벌이는 끈적한 랩댄스 장면이 갑자기 뚝 끊기며 ‘잃어버린 릴’이라는 문구가 삽입되는 건 거의 악랄한 농담처럼 보일 지경이다. “관객과 장난을 치자는 거다. 장담하건대 미싱릴이라는 문구가 튀어나오는 순간 극장의 모든 남자들이 비명을 지르게 될 거다. 내 이름을 부르짖겠지. 타란티노 이 새끼. 너 너무 싫어!” 하지만 그라인드 하우스 효과를 위한 잔기술이 ‘영화를 일부러 쓰레기 영화처럼 보이기 위한 의도’인 것은 아니다. 타란티노는 인터뷰에서도 결코 ‘쓰레기 영화’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이 없다. 그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동등한 영화적 경험으로 이해하는 겸손한 인간이다. “쓰레기 영화라니. 나는 그런 단어를 사용해본 적도 없으며, 그런 영화들을 정말로 좋아한다. 내 의도는 그저 <그라인드 하우스>가 관객을 위한 라이드(Ride)가 되길 원했다.”

물리적이고 육체적으로 가능한 카체이스

과연 <데쓰 프루프>는 60년대 후반 <불리트>로부터 시작된 카체이스 영화 장르와 슬래셔 장르의 관습을 기반으로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의 이글거리는 에너지를 되살리려는 타란티노의 시도이자 진정으로 순수한 라이드(Ride)다. 카체이스 영화라는 장르 속에서 <데쓰 프루프>처럼 아찔한 라이드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영화는 정말이지 희귀하다. 그는 <배니싱 포인트>와 <매리와 래리>, 오리지널 <식스티 세컨즈> 같은 카체이스 익스플로이테이션의 걸작들을 끊임없이 거론하거나 혹은 <불리트>에서 스티브 매퀸이 몰았던 자동차의 번호를 도용하는 등 무수한 카체이스 영화들을 인용하고 도입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펼쳐지는 액션장면은 조이 벨이라는 훌륭한 스턴트우먼의 힘을 빌려서 완벽하게 날것의 자동차 경주를 압도적으로 관객에게 던져준다.

지금의 관객은 최고의 카체이스 장면을 창조할 줄 아는 감독으로 마이클 베이의 이름을 외치겠지만 타란티노는 이를 부득부득 간다.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베이의 카체이스 장면들은 CG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며 타란티노에게 그건 순전히 CG의 미학에 불과하다. “나는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추격장면에서조차도 여전히 CG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마지막 구식 카체이스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이었다. 카체이스에서 CG를 사용하는 것만큼 최악의 것은 없다. 16대의 카메라를 모든 앵글로 배치한 뒤 CG의 도움으로 만드는 카체이스란, 디렉팅이 아니라 셀렉팅에 불과하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하나의 숏으로만 찍었다. 그 시절의 카체이스는 진짜 멋진 운전솜씨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지나치게 잘 짜여져 있어서 어떤 인간이 어떤 엿같은 자동차를 운전하든 아무 재미가 없다. 체이스의 한가운데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은 남김없이 사라졌다.”

그의 한탄처럼 달리는 자동차를 인간이 불가능한 눈으로 따라간 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스턴트를 불가능한 앵글로 찍어내는 CG 카체이스에는 어떤 ‘라이드’로서의 열광적인 흥분이 없다. 타란티노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구식 카체이스의 기운,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카체이스 영화 <프렌치 커넥션>이 던져주었던 흥분을 그대로 되살려냈다. <데쓰 프루프>의 자동차들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속도로 달리고 육체적으로 가능한 스턴트를 펼친다. 가끔은 속도를 좀더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괴상한 21세기적 불평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체이스가 종료된 뒤 관객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CG로 만들어진 압도적인 속도의 카체이스보다 훨씬 막강하다. “역사상 가장 대단한 카체이스가 아니라도 최소한 톱 3위에는 들 수 있는 카체이스 영화”라는 타란티노의 호언장담은 허풍이 아니다.

<데쓰 프루프>, 완벽한 타란티노식 예술품

북미판 <그라인드 하우스>의 가장 독특한 매력은 이것이 매우 독창적인 영화 관람의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는 담배를 피워대며 시끌벅적 영화를 보던 60~70년대 미국의 그라인드 하우스를 21세기에 되살려놓았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늙어빠진 꼰대가 되어가는 것을 경계하지만 극장이라는 장소가 더이상 영화광적인 흥분의 도가니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10년이나 20년 전이 좋았다고 말하는 노친네로 취급받는 건 정말 싫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영화를 본다는 건 점점 값싼 행위가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라인드 하우스>는 거대한 로비에 온갖 포스터가 도배되어 있던 옛날 영화관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다.”

문제는 웨인스타인 형제가 <그라인드 하우스>를 두편의 독립적인 영화로 찢어서 배급하기로 하면서 생겨난다. 한국 관객은 3시간 동안 두개의 장편과 네개의 가짜 트레일러(박스 참조)를 감상하며 ‘그 옛날 한국의 동시개봉관과도 비슷했으리라 짐작하며 즐길 수 있을 법한’ 그라인드 하우스를 대리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꽤나 아쉬운 일이지만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라인드 하우스>로부터 가짜 예고편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식적인 이음새를 제거하는 순간 <데쓰 프루프>는 분명히 인터랙티브한 영화적 경험을 조금 상실한다. 하지만 그 덕택에 <데쓰 프루프>는 예술가로서의 타란티노의 야심이 좀더 확연하게 보이는 영화가 됐다.

솔직한 말로 <데쓰 프루프>가 아주 날것 그대로의 B급영화인 것은 결코 아니다. 타란티노는 사실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의 관습만을 빌려와서 완벽한 타란티노식 예술품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그는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두 번째 챕터에서는 첫 번째 챕터와는 달리 화면에 스크래치를 내는 식의 기술적인 장난조차 아낀다. 끈적한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의 분위기를 모든 컷에다 각인해놓은 첫 번째 챕터와는 달리 화끈한 카체이스가 등장하는 두 번째 챕터는 기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대단히 매끈한 21세기 영화다. “나는 카체이스 장면을 6주 동안 찍었다. 옛날 카체이스 영화들처럼 6일 만에 찍지 않고 말이다.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장르는 다만 나를 평소보다 좀더 ‘펑크록적’으로 만들어줬다”는 타란티노의 말은 잘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그는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래서 <그라인드 하우스>로 이 영화를 대한 북미 관객보다는 <데쓰 프루프>를 독립적으로 관람할 한국의 관객이 타란티노의 진심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타란티노의 말에 따르자면 “B급 영화감독이 되어서 만든 것이 <그라인드 하우스>, 그리고 <데쓰 프루프>는 좀더 예술적인, 그러니까 ‘이게 바로 타란티노 영화!’ 버전”이다. “로드리게즈가 익스플로이테이션 장르에서 흥청망청대는 동안 타란티노는 장르 자체에 경의를 표한 뒤 철저하게 파괴한다”고 지적한 <롤링스톤>의 평은 타란티노의 의도를 가장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재키 브라운>이 개봉했을 당시 사람들은 타란티노가 마침내 성장했다고들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와 찬바라 익스플로이테이션에 바치는 재기 넘치는 오마주 <킬 빌>을 만들었다. <킬 빌2>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또다시 타란티노가 하나의 시리즈를 통과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왜 세상의 많은 비평가들은 타란티노가 악동짓을 그만두고 진중한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를 그토록 애원하는 것일까. 그들이 언제나 던지는 질문. 타란티노는 도대체 언제쯤에나 철이 들까. “내가 만약 <데쓰 프루프> 이후 뭔가 심각한 전기영화를 하나 하겠소라고 말한다면, 그건 내 생애 최악의 짓거리가 될 거다. 나를 완전히 팔아치우는 일이 될 거다. 그건 나를 무기력한 늙은 꼰대로 만들 거다. 이것들 보시라. 나는 그저 재미 좀 보려고 <데쓰 프루프>를 만든 게 아니야. 나는 예술가다. 나는 프레스톤 스터지스와 마크 트웨인에 비견될 대사를 쓴다. 나는 여전히 쓰고 또 쓰며 내 할 일을 한다. 그것들이 그저 장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아이러니다. 타란티노는 성장하지 않는 척 성장하고 있거나, 혹은 <펄프 픽션>을 만들었을 때 이미 성장을 끝냈다. 아이처럼 구는 어른의 예술품은 어른처럼 구는 아이의 예술품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믿는 이 남자의 이름은,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다.

진짜인 줄 알았지?

<그라인드 하우스>의 가짜 예고편들

<그라인드 하우스>에는 네개의 가짜 예고편(Faux Trailer)이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 가짜 예고편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뜨거운 녀석들>의 에드거 라이트, <호스텔>의 일라이 로스, <데블스 리젝트>의 롭 좀비 등 현재 장르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악동들. <그라인드 하우스>의 본편이 시작되기 전에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예고편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감독한 <마셰티>(Machete)다. <스파이 키드>의 멕시코 배우 대니 트레호가 주연을 맡은 이 예고편은 일종의 멕시칸 익스플로이테이션 액션영화로, 킬러 마셰티의 잔혹한 복수극을 이글거리는 멕시코의 에너지로 그려낸다. 이어서 로드리게즈의 본편 <플래닛 테러>가 끝나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가 시작되기 직전에 3편의 가짜 예고편이 이어진다. 롭 좀비의 <나치의 늑대여인>(Werewolf Women of the S.S)은 80년대 한국 비디오 시장에서도 일정한 팬층을 만들었을 만큼 수많은 속편을 양산한 74년작 <일사, 나치 친위대의 색녀>(Ilsa, She Wolf of the SS)의 오마주에 가까운 작품으로, 니콜라스 케이지와 전설적인 B급영화 아이콘 우도 키에르가 출연해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는 괴력을 내뿜는다. 에드거 라이트가 감독한 <하지마!>(Don’t!)는 영국 해머 공포영화와 귀신들린 집 장르를 오마주한 예고편. 라이트는 고어의 향연으로 가득한 화면에다 “Don’t!”라는 내레이션을 경망스럽게 반복해서 집어넣음으로써 결국 그가 가장 잘하는 패러디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팬들에게 가장 커다란 인기를 모은 가짜 예고편은 일라이 로스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70년대와 80년대 초 슬래셔영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담대한 호러팬이라도 비명을 꽥 내지를 만큼 쇼킹한 장면이 줄줄이 이어진다.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가 따로 상영되는 탓에 한국에서는 가짜 예고편들을 볼 기회가 전혀 없다. 출시 예정인 북미판 DVD를 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장담컨대 비싼 국제운송료를 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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