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조시 하트넷] 건조한 스타, 뜨거운 배우
2008-01-10
글 : 정재혁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조시 하트넷

매끈한 외모와 달리 조시 하트넷은 참 재미가 없다. 그의 인터뷰에 자주 나오는 단어는 겸손한(polite), 편안한(relaxed), 중용(moderation) 정도다. <호미사이드>를 비롯해 <블랙 달리아>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까지 형사 역을 자주 연기했던 점도 그렇다. “수개월 정도면 예쁜 여자를 데리고 올 것”이라는 벤 애플렉의 말처럼 탄탄하고 멋진 몸을 가졌지만, 그는 정작 LA에서의 화려한 삶보단 미니애폴리스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 2006년 하트넷은 “광기 속에 파묻히고 싶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LA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미니애폴리스로 집을 옮겼다. 셀러브리티의 시끄럽고 복잡한 세계에서 애써 들뜨지 않으려는 일종의 집념 같아 보였다. 10대 스타로 함께 떠올라 수많은 스캔들을 쏟아냈던 애시튼 커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에 비하면 그의 사생활은 심심하다 못해 따분할 정도다. 유일하게 그가 시끄러웠던 건 2006년 오랫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 엘렌 펜스터와 헤어지고 스칼렛 요한슨과 연애를 시작하던 무렵이었을까. 당시에도 하트넷은 귀를 막고 시골 집으로 향했다. 그는 뜨거운 스타의 조명보단 미지근하지만 편안한 일상을 선호한다. 참, 안정감있긴 하지만 스타로선 재미없다.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조시 하트넷도 여전히 뜨겁고 흥미진진하기보단 건조하고 안정적이다. 30일간 해가 뜨지 않는 알래스카의 배로를 배경으로 뱀파이어족이 출몰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가족과 마을을 지키는 보완관으로 출연하는데 그 모습이 <호미사이드>의 10년 뒤를 보는 듯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고 이리저리 찾아 헤매던 <호미사이드>의 형사 케이시는 이제 책임과 의무로 스스로를 단단히 방어하는 성숙한 남자가 되었다. 하트넷이 데뷔 초기부터 자주 말해오던 ‘책임감’, 그 단어 하나로 뭉쳐진 인물이랄까. 풋볼로 다져진 탄탄한 몸(본인은 자신의 허벅지가 너무 두꺼워 청바지를 입기 힘들다고 불평하지만)과 얇은 입술과 눈매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테스토스테론은 이상하게도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줄곧 모범생 같은 답안에 밀려 있었다. <블랙 달리아>의 딱딱한 캐릭터 버키, <진주만>과 <블랙 호크 다운>의 무겁고 힘들어 보이는 대니 워커와 맷 애버스만 등. 초기에 출연한 <할로윈 7-H20> <패컬티> <히어 온 얼스> 같은 10대 영화를 제외하곤 그는 무성적 존재처럼 그려졌다. 마치 학교에서 학생이 받아온 숙제처럼 그의 영화는 배우로서 그가 부여받은 과제 같았다. 소피아 코폴라의 <처녀자살소동>과 다소 괴짜 같은 영화 <모짜르트와 고래> 등 고민의 흔적도 보였다. 그는 “영화가 크든 작든 내가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했고, <호미사이드>를 마치고는 케이시 역이 자신의 당시 상황과 똑 닮았다며 “지금은 내가 어디로 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30대가 되면 더 쉬워질까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섹스 심벌로 화려하게 빛나주길 바랐던 대다수 팬들에겐 다소 뜨뜻미지근한 답변이다. 채식주의자라는 그의 식성까지 더불어. 하지만 역으로 <진주만>과 <블랙 호크 다운> 이후 갑작스레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해보면 그 아래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 하트넷의 모습은 스타로서 아니 배우로서 흥미진진하다. 그는 “10년 이상 슈퍼히어로에 갇혀 있을 것 같다”며 <수퍼맨 리턴즈>의 주인공을 거절했고, <진주만> <블랙 호크 다운> <40 데이즈 40 나이트> 등 숨가쁜 한해를 보낸 뒤에는 꼭 시골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내 친구들, 가족들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해주는 사람들이니까.”역시 그다운 이유다.

조시 하트넷은 풋볼 선수 출신이다. 고등학생 때 다리에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두고 연기학교에 들어갔다. 연극 <톰소여의 모험> 오디션에 응하며 “톰 역을 따면 연기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한다”고 농담 반으로 내뱉은 말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자기중심적”(self-involved)이라고 답하는데 이 태도는 그를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할리우드 세계에서 보호해준 가치다. <블랙 호크 다운> 이후 250만달러 이상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급 배우가 되었어도 그는 “나에 대해 쓰여진 글, 말들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스타로서의 재미보단 배우로서의 재미를 택한 남자. 그의 차기작은 기무라 타쿠야,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I come with the rain>이다. 신나고 아찔한 맛은 없지만 그래서 그의 미래는 밝아보인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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