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다섯살 때였다. 아침에 일어난 애의 목이 이상했다. 목이 돌아가 있었고, 너무 아파했다. 급히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10장쯤 엑스레이를 찍더니 입원수속부터 밟으란다. 경추에 이상이 생겨서 장애가 될지 모르니, 한달쯤 입원을 시켜놓고 보조기를 착용시킨 다음 경과를 보잔다. 의사가 건조하게 내뱉은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애를 입원시키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었고, 도대체 얼마가 될지 모를 병원비도 걱정이었다.
그때 무슨 까닭에서인지, 아이의 상태를 확실하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렇지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른 병원에 갈 생각을 하냐는 처의 원망을 들으며 동네의 작은 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엑스레이 한장만으로 진단을 끝내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오란다. 엥? 의사가 아이스크림을 아이의 입 앞에 놓고는 천천히 움직였다. 이게 웬일인가. 아프다고 꿈쩍도 안 하던 아이의 목이 아이스크림을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닌가. 자다가 목이 결린 것인데,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과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목을 과도하게 돌리게 된다는 게 의사의 설명이었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로 고칠 수 있는 ‘병’을 보조기 달고 한달쯤 입원해 있으라고 했던 의사의 멱살이라고 잡고 싶었다.
이런 식의 불신은 끝이 없다. 또한 이런 체험은 주변에 널려 있다. 의사가 환자를 만나 좋은 진료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푼이라도 더 뜯어낼까를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의료실태다. 국민건강보험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도 이렇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공언하듯 의료보험이 미국식으로 민영화되면 지금도 부실한 건강보험의 근간이 단박에 허물어질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저 멱살만 잡고 싶은 마음은 아닐 거다.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의료산업에 뛰어들고, 돈 많은 사람만을 위한 특화된 병원부터 시작된 의료보험 민영화는 결국 국민건강보험체계를 무력화할 것이다. 다수의 시민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런 어두운 전망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마이클 무어의 <식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식코>는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미국식 의료체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 보험가입자들조차 제대로 된 의료보장을 받을 수 없는 게 미국의 실태다. 미국의 의료체계는 곪을 대로 곪아 있다. 보험회사의 거부로 기본적 진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미국의 잔인한 의료실태는 미국인에게 낯익은 상식이지만 영국, 프랑스, 캐나다뿐만 아니라 가난한 적성국가 쿠바에는 다른 상식이 있었다. 이들 나라에서 의료는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이지만, 미국에선 그저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미국과 영국은 왜 이렇게 다를까? <식코>는 영국의 전직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돈 때문에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탓이라고 말한다. 보통선거로 인해 권력이 ‘금고에서 투표함으로’ 이동했지만,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투표하지 않으면 미국 꼴이 된단다. 이러고도 공화당을 계속 찍을 거니? 작정하고 묻는 것 같다.
<식코>는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고, 멍청하게도 그 길을 포기해버리는, 그러고는 자기가 무엇을 포기했는지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우리 자신을 위한 영화다.
“이 영화로 작은 불씨를 피워서, 실제로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이클 무어의 계몽이 원하는 영화 제작의 목표다. 마이클 무어 덕분에 우리는 나와 가족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저항하고, 요구하고, 나의 이익을 지켜줄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주거를 약속한다면, 그곳이 바로 당신이 선택해야 할 정당이다. 집, 교육, 의료가 능력에 따라 다르게 공급되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갈 때, 꿈은 현실이 된다.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면, 당장 집을 나서라. 그리고 잘 만들어진 계몽주의 영화 한편을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