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지호] 한국에서 영화 만드는 게 꿈이다
2008-04-15
글 : 김도훈
사진 : 이혜정
스타 캐스팅 데뷔작 <내가 숨쉬는 공기>의 이지호 감독

이지호 감독에 따르면 <내가 숨쉬는 공기>는 “<오즈의 마법사>라는 서양적인 이야기와 ‘희로애락’이라는 동양적인 개념의 합일”이다. 확실히 이지호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에는 할리우드 이야기 구조와 동양적인(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적인’) 감수성이 한데 얽혀 있다.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재미있는 방식으로 충돌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확실히 ‘코리안 아메리칸 시네마’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스타 캐스팅에 눈멀지 않으려 노력한들 포레스트 휘태커, 브렌단 프레이저, 사라 미셸 겔러, 케빈 베이컨, 앤디 가르시아와 에밀 허시가 희로애락의 운명적 고리 속에서 허둥거리는 걸 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저예산 할리우드 데뷔작에 화려한 이름들을 데리고 격전을 치러낸 이지호 감독은 뉴욕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지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뮤직비디오 및 음반 제작, 광고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영화배우 김민의 남편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쏟아지는 인터뷰와 ‘할리우드 도전기’ 같은 강연까지 소화해내며 “롯데호텔에만 있어서 낮인지 밤인지 모르겠다”는 이지호 감독을 만났다.

-한국에서 첫 장편영화를 개봉하는 기분이 어떤가.
=항상 좀 떨리고 언제나 조금 긴장된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내 첫 영화를 개봉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96년 한국에서 일하던 경험을 녹여서 <내가 숨쉬는 공기>의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안다. 정확히는 어떤 방식의 영감을 받았던 건가.
=너무 많아서 한두개 예를 들기가 어렵다. 거의 모든 것. 내가 만난 사람들, 샐러리맨으로서의 경험, 한국 음악계에서 일했던 경험, 젊은 스타들과 일하는 사람들…. 당시 나는 ‘캐릭터 기록장’(Character Journal)을 쓰면서 여러 이야기와 인간 군상을 기록했다. 심지어 당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뉴스를 보던 중 어느 주부가 23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아래의 자동차만 박살나고 주부는 뼈 하나만 부러진 채 무사히 살았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삶은 픽션보다 더 희한하다고 여겼다(<내가 숨쉬는 공기>에서 사라 미셸 겔러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한다.-편집자). 그런 작은 모든 것들이 영화의 영감이 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으면 창조력이 샘솟는 것 같다.

-한국에서 창조력이 샘솟는 건 혹시 문화적인 차이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기 때문인가.
=물론 그것도 한 부분일 거다. 일단 한국에 오면 마음이 좀더 편하다. 물론 미국에서 살 때도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코리안 아메리칸 동포라는 사실이 항상 머리를 맴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는 그냥 이지호다. 정체성 혼란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한명의 인간으로서 중요한 이슈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숨쉬는 공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하나 있다. 이건 데니스 리 감독의 <정원의 반딧불들>을 보면서도 공히 느꼈던 것인데, 할리우드영화임에도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 가족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한국적이다. 혹시 제작자나 배우들이 궁금해하진 않던가.
=제작자와 배우들은 일단 대본을 아주 좋아했다. 매년 할리우드 에이전시에서는 블랙 리스트를 만든다. 올해 제작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대본의 리스트다. 이 영화 대본도 거기에 들어가 있었다. 영화의 약간 초현실적인… 아니, 초현실적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인 저류(底流)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진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저예산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한 게 정말 놀랍다.
=<내가 숨쉬는 공기>가 장르영화가 아니어서 투자받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은 캐스팅부터 해보자 싶었다. 근데 프로듀서가 전략을 하나 세웠다. 우리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었던 할리우드 제작자 10명을 골라서 대본을 보내보자는 것이었다. 실행에 옮겼더니 10명 모두가 좋아했는데, 그중 5명만 내가 직접 감독하는 걸 허락한다고 했다. 그래서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제작했던 로렌스 벤더나 오우삼, 그리고 폴 시프(<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모나리자 스마일> 등의 제작자) 등 다섯명의 제작자와 컨택을 했고, 폴 시프와 일하게 됐다.

-배우들도 그로부터 자연히 뛰어들게 된 것인가.
=유명 할리우드 제작자인 폴 시프가 뛰어들자 나머지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는 한번에 10편 이상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굴리는 사람이라 내가 직접 나머지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원하는 배우들의 작품을 모조리 다 챙겨보고 배우로서의 에센스를 완전히 파악한 뒤 그들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그렇게 만난 배우들은 내 대본을 대부분 좋아했다. 하지만 저예산영화에다 멀티 캐스팅이어서 배우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처음 캐스팅했던 케이트 보스워스, 제임스 프랭코, 와타나베 겐 같은 사람들이 중간에 빠져나가고 대신 다른 배우들이 새롭게 합류했다. 포레스트 휘태커는 당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기 전이었는데 투자사에서 강하게 만류했었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투자사와 PD들은 언제나 감독과 싸워댄다. 마케팅에 내세울 만한 이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레스트 휘태커가 오스카를 받자 투자사들이 갑자기 너무 캐스팅을 잘했다고 좋아하더라. (웃음)

-배우들의 수도 워낙 많은데다 다들 확고한 개성이 있는 배우들이다. 어떤 식으로 각각의 배우들을 지도했나.
=배우들 스타일이 모두 달라서 각각의 배우를 열심히 공부했다. 브렌단 프레이저는 보통 이런 역할을 잘 하지 않는다. 코미디 타이밍은 아주 좋은 배우지만 이런 진지한 역할에서는 자연스럽지가 않다. 근데 전작을 다 챙겨보다 보니 두 가지가 눈에 띄더라. 연기할 때 눈을 아주 많이 깜빡이고, 또 말할 때 문장의 끝이 확 올라간다. 그래서 종종 눈을 좀 릴랙스하게 하라고 요구하곤 했다. 물론 연기 중에 내가 컷을 자주 외치면 그 역시도 짜증이 좀 났을 거다. 하지만 모니터로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해주면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 앤디 가르시아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배우지만 어떨 땐 정말 “크레이지”하고 성격이 강하다. 절대로 그에게 “그런 건 안 돼!”라고 말할 수 없다. (웃음) 그래서 그가 한톤으로 연기를 하고나면 다른 방식으로 한번만 더 가는 건 어떠냐고 회유하는 방식을 썼다. 그는 영화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해당 장면의 촬영이 끝나면 “이번엔 소리 한번만 질러볼래”라고 여쭙는 식이다. 진짜 중요한 건 이처럼 서로간의 신뢰를 천천히 쌓아가는 것이다.

-희로애락이라는 컨셉을 그대로 영화로 발전시켰는데, 주인공들에게 각각의 감정을 부여하는 방식 같은 게 가끔 너무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숨쉬는 공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네 사람의 여정에 대한 영화다. 그래서 나에게 이 영화는 동양적인 것과 서구적인 컨셉의 총합이다. 서구적인 컨셉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를 인용했다. 네 캐릭터는 자신을 찾아헤매려 여행 중이다. 브렌단 프레이저는 양철남자, 포레스트 휘태커는 겁장이 사자, 사라 미셸 겔러는 도로시, 그리고 케빈 베이컨은 허수아비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 동양적인 의미에서의 희로애락이 자리잡고 있다. 희로애락의 의미는 우리 모두가 감정과 인간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각의 개인이지만 더 거대한 개념을 지닌 집합적인 인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인들의 정신적인 근간을 이루는 고전이고 ‘희로애락’은 더없이 동양적인 개념이며 당신은 또 그걸 통해 정체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혹시 자라면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이 당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던 건가.
=그럼. 당연하다.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 문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한국의 한국인들에게서 가장 부러운 건, 거울을 보면서 “내가 누구지?”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미국에서 나는 언제나 아웃사이더 취급을 당한다. 나의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은 지나친 자의식을 창출한다. 재미동포들의 몇몇 나쁜 점은 나도 잘 안다. 어떤 사람은 자의식이 너무 강하고, 어떤 사람은 자의식이 너무 적어서 스스로에 대한 존경이 없다. 그래서 <내가 숨쉬는 공기>는 분명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혹시 아주 전통적인 한국식 가정에서 성장했나.
=우리 가족은 마구 섞여 있다. (웃음) 보수적인 동시에 개방적이다. 우리 아버지는 보수적이었다. 무서운 아버지여서 공부와 피아노 등 시키는 모든 걸 열심히 해야 했다. 항상 “넌 한국인이야! 한국인! 한국인!”이라고 교육하셨고. 어릴 때는 말대꾸는 상상도 못했고. (웃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른 동포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자관계도 좋고 서로 대화도 많이 한다. 우리 외증조할아버지는 미국으로 유학간 첫 번째 한국인이었다. 1888년에 프린스턴에서 공부하신 걸로 아는데…. 그래서 할머니도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잘하신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한국적인 것과 미국적인 것이 아주 많이 섞여 있고, 그 때문에 나는 미국에 대해서 더 잘 알면서도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들과 종종 교류를 하는 편인가. 서로를 돕는 커뮤니티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할리우드 세계는 너무 좁다.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들은 서로를 아주 잘 안다. 그러나 아직은 어떤 사람도 서로를 도와주기에 충분히 힘이 크지 못하다. 게다가 인종차별 등등 다 같은 문제를 겪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영화를 만들 땐 코리안 아메리칸 작가를 먼저 찾는다. 한국인들 역시 할리우드 진출을 원한다면 돕고 싶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는가.
=물론이다. 내 꿈이다. 현재 코프로덕션을 준비 중이지만 100% 확정된 건 아니다. 나에게 딱 맞는 프로젝트 제안이 온다면 (손가락을 튕기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겠다. 아 참. 한국 살 때 단편영화 찍고나서 <씨네21>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촬영하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는데…. 한국에서 영화 만드는 거. 정말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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