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리 아이작 정]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는 한국에서 찍고 싶다
2008-04-15
글 : 김도훈
사진 : 이혜정
르완다 내전의 고통을 다룬 <문유랑가보>의 리 아이작 정 감독

데니스 리, 이지호 감독의 작품들이 할리우드 스타의 진용으로 화제를 모으고는 있지만, 지금 미국 비평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라면 역시 르완다 내전의 고통을 다룬 <문유랑가보>의 리 아이작 정이다. 특히 지난 3월 <문유랑가보>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한 ‘새로운 작가들/새로운 영화들’을 통해 개봉하면서 리 아이작 정은 <뉴욕타임스>와 <헤럴드 트리뷴> 등 뉴욕의 주요 언론들에 큰 비중으로 소개됐다. 현재 차기작 <러키 라이프>(Lucky Life)를 준비하고 있는 리 아이작과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에 대해 서면으로 서신을 교환했다. 아직도 한국이 그립다는 그는 “한국 잡지에 실릴 예정이라 지나치게 치우친 발언처럼 들릴 게 걱정된다”면서도 “부산영화제에서의 경험이 가장 흥분되는 경험이었다”고 툭 털어놓았다. “정말 정직하게 말하자면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았다. 특히 내가 선택한 영화적 언어에 대해 그토록 많은 질문을 받은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칸영화제 이후 국제적인 성공이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나.
=칸과 다른 국제영화제가 없었더라면 차기작 <러키 라이프>의 이야기를 찾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성공은 어떤 면에서는 해악이 될 수도 있다. 자만과 이기적인 야심은 자연스러운 유혹이니까. 어떤 성공이나 실패가 이어지건 간에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겸손하려고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 감독이 만든 2편의 할리우드영화와 1편의 다큐멘터리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동시다발적으로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들이 미국에서 데뷔하는 데 어떠한 세대적 이유가 있다고 느끼나.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최근에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덜 받는 것 같다. 할리우드 역시 점점 더 다양화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백인/남자’라는 통념에 도전하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 감독들이 아시안 아메리칸 세계와 관련없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거기에 결합된 듯하다. 그런데 좀더 가벼운 이유를 하나 언급하자면, 나 역시 한국인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에게 하는 말을 믿고 싶다. 한국인들은 아주 창의적이고 결의가 강하다는 통념 말이다.

-뉴욕에는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인들의 정기적인 모임이 있나.
=인터넷과 지인들을 통한 아주 제한적인 단계에서는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몇몇 잘 알려진 감독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방황의 날들>의 김소영 감독과도 좋은 친구다.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 소사이어티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많은 코리안 아메리칸들과 그리 잘 지내지 못하는 편이다.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기보다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느낀다.

-그렇게 자라면서 정체성 혼돈을 겪은 적은 없나. 혹은 그런 경험이 타문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
=10대 시절에 정체성 혼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요즘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마음에 잘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즘은 두 문화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기분을 오히려 즐기기 때문이다. 약간 아웃사이더로 존재하는 것이 이득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고백하자면, 나는 월드컵 한·미 경기에서 한국을 응원하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마치 부모와 이어진 것처럼 한국과는 좀더 본능적으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나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언젠가는 전 인류적 공동체 의식에 의해 극복될 것을 희망한다. 내가 만약 (오로지 애국주의만 환영받는) 미국에서 코카시안으로 자랐거나 한국에서만 자랐다면 이런 생각을 가졌을지는 의문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아이디어를 좀더 확장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세편의 차기작은 원래 ‘아메리카’라는 개념에 대한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함에 따라 그것들은 죽음, 시간 그리고 사랑에 대한 영화로 발전했다. 동시에 언젠가 꼭 만들고 싶은 또 다른 미국에 관한 영화가 하나 있다. 서부개척사를 다룬 폭력적인 서사이며 제목은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다. 발터 베냐민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다.

-차기작인 <러키 라이프>는 언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나.
=캐스팅을 마쳤고 현재 로케이션을 찾고 있다. 올 9월에는 촬영에 들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의 아틀리에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된 건 아주 두근거리는 소식이다! 한국과의 합작으로 제작될 예정이기도 한데 이건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까 말한 세편의 차기작 중 ‘사랑’을 주제로 한 마지막 영화는 한국에서 찍고 싶기 때문이다. 그 연작은 미국으로부터 시작해 유럽을 거쳐 한국에서 막을 내린다. 꼭 뛰어들고 싶은 흥미진진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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