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시리즈 1편 <레이더스> 돌려보기
2008-05-15
글 : 주성철

<레이더스> Raiders of the Lost Ark(1981)

시작과 경로: 1936년 남아메리카 → 뉴욕 → 네팔 → 이집트 카이로
보물: 신상, 타니스의 성궤(메인)
여자 파트너: 카렌 앨런
바닥에 깔린 건:
쫓아오는 건: 거대한 바위 공

인디아나는 루카스가 키우던 개 이름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뒤로 미뤄뒀던 고고학자 이야기를 드디어 꺼냈다. 스필버그가 참여하게 됐지만 영화사마다 찾아가는 족족 거절당했고, 두 사람은 왕년의 TV물처럼 진부한 기교로 후다닥 단시간에 찍어보자고 했고 마침내 파라마운트에서 연락이 왔다. 맨 처음 인디아나 존스와 마리온 역으로 떠올린 인물은 톰 셀릭과 숀 영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오디션도 봤고 톰 셀릭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는 <탐정 매그넘>이라는 TV시리즈와 계약한 상태였다. 그러다 <스타워즈>의 ‘한 솔로’ 해리슨 포드를 떠올렸다. 세트 촬영 역시 <스타워즈>를 찍었던 영국의 엘스트리 스튜디오에서 했으니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사이의 돈독한 관계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미술감독 노먼 레이놀스 역시 <스타워즈>의 스탭이었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남아메리카로 설정된 첫 촬영은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이뤄졌다. 스필버그가 이후 <쥬라기 공원>을 촬영하고 TV시리즈 <로스트>가 찾았던 바로 그곳이다. 재미있는 건 인디아나 존스라는 꽤 독특한 이름의 유래다. ‘인디아나’는 루카스가 키우던 거대한 개의 이름으로 <스타워즈>에서 츄바카 이미지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이후 <최후의 성전>에서 숀 코너리가 그의 이름을 두고 ‘개 이름’이라고 했던 게 사실이었던 셈이다.

첫 번째 보물: 신상

인디아나 존스는 험난한 밀림 지대를 헤치고 독거미와 온갖 부비트랩을 뚫고 동굴에 보관된 신상을 손에 넣지만, 마지막 순간 악덕 고고학자 벨로크(폴 프리먼)에게 빼앗기고 만다.


두 번째 보물: 언약의 궤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2조각을 넣어 보관한 일명 ‘언약의 궤’라고 하는 성궤는, 유대인이 가나안에 정착한 뒤 예루살렘의 솔로몬 신전에 보관했으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전설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침략한 이집트 왕이 그것을 타니스로 옮겨 ‘영혼의 우물’이라 불리는 비밀의 방 속에 감췄다는 것. 구약성서에 의하면 진정한 메시아가 이 땅에 내려올 때 성궤를 찾게 될 것이라고 한 구절 때문에 탐욕적으로 전세계 문화유산을 찾는 독일 고고학자들이 타니스의 위치를 알아낸 것인데, 성궤를 얻기 위해서는 이 방면을 먼저 연구했던 레이븐우드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태양신 지팡이 장식 메달의 내용을 해독할 필요가 있었다. 벨로크의 말에 따르면 성궤는 바로 ‘하나님과 통신할 수 있는 무전기’다.

인디아나 걸: 내 주먹 맛 좀 봐

인디아나 존스의 스승인 레이븐우드의 딸이자, 태양신 지팡이 장식의 메달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마리온(캐런 앨런)이다. 네팔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왈가닥 마리온은 시리즈를 통틀어 인디아나 존스에게 강펀치를 날린 유일한 여자이다. 존 랜디스의 <애니멀 하우스>(1978)에서 그녀를 관심있게 지켜봤던 스필버그는 루카스의 집에서 그녀를 인터뷰하고 출연을 결정지었다. “횃불처럼 강렬한 느낌을 주는 배우로 30년대를 풍미했던 아이린 던이나 캐럴 롬바드를 연상시킨다”는 게 스필버그의 얘기다. 마리온이라는 이름은 시나리오를 쓴 로렌스 캐스단의 처할머님의 이름이라고. 캐런 앨런은 이후 존 카펜터의 <스타맨>(1984)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레이더스>의 인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드디어 4편에서 다시 등장할 예정.

동물: CG가 아니라 진짜 뱀떼

주인공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맞이하는 건 언제나 징그러운 짐승떼다. <레이더스>에서 뱀떼를 등장시키며 시작했던 이러한 신은 이후 3편까지 계속되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특유의 익살이 된다. 성궤를 찾으러 ‘영혼의 우물’로 내려간 인디아나 존스는 바닥을 가득 메운 뱀떼와 마주하게 된다. 지금이야 가볍게 CG로 그려넣겠지만 실제로 3천 마리 이상의 뱀을 풀었다. 하지만 세트를 가득 메우기에는 부족했고 스필버그는 제작자 프랭크 마셜에게 적어도 7천 마리는 더 필요하다고 추가 주문을 했다. “세트 바닥을 뱀으로 뒤덮기 위해 유럽 전역을 다 뒤져 뱀을 공수했다”는 게 프랭크 마셜의 얘기다. “마치 수많은 메두사의 머리가 엉겨붙어 기어다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는 게 스필버그의 욕심이다. 조감독은 뱀에 물리기도 하고 스필버그 역시 뱀들과 악전고투하는 사이 또 다른 제작자 루카스는 방음 스튜디오에 느긋하게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그러다 실제 코브라가 등장한 날 모든 스탭들은 긴장했다. 뱀이 배우에게 못 덤비도록 지키는 조련사도 있고, 해독제도 항시 대기였다. 인디아나 존스와 코브라가 마주 보는 장면은 사실 그 사이에 유리판이 있다. 또한 영화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유독 뱀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결국 뱀떼에 불을 질러 위기를 모면한다.

로케이션: 사실은 이집트가 아니라 튀니지

어차피 영화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등장하지 않을 바에야 굳이 이집트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찍었던 튀니지였다. 인디아나 존스가 저 멀리 내려다보는 협곡은 바로 <스타워즈>에서 R2D2가 자와스에게 잡히는 곳이다. 카이로 도시 장면을 위해서는 ‘작은 카이로’라는 의미를 지닌 튀니지의 카이루완으로 갔다. 마리온이 도시 전경을 바라보는 파노라마 장면을 위해 화면에 걸리는 주택가의 안테나 300개를 일일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의 이동에 따라 빨간 실선으로 지도를 보여주는 영상도 <인디아나 존스>의 전매특허 이미지가 됐다.

체이스: 거대한 바위는 특수재질로 만든 공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체이스 무비라 할 정도로 거대한 물체나 적들에 쫓기는 장면이 꼭 포함된다. 그것은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좋아했던 과거 TV시리즈물들의 기본 공식이기도 했다. <레이더스>에는 두번의 체이스 장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신상을 가져 나오던 인디아나 존스가 거대한 바위에 쫓기는 장면이다. 실제로는 부딪혀도 별탈없는 특수재질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이다. 이 장면은 이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전체의 박진감과 서스펜스를 암시하는 기념비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스필버그가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서 따온 아이디어이기도 하며, 키튼은 물론 스필버그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던 성룡이 <용형호제>(1986)에서 다시 패러디하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체이스 또한 <인디아나 존스>가 웨스턴 장르의 변형임과 동시에 할리우드의 인기 장르이기도 한 ‘2차대전영화’의 연장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독일군의 추적을 따돌리며 채찍을 든 채 말을 타고 질주하는 인디아나 존스의 모습은 ‘독일군과 싸우는 카우보이’라는 키치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인디아나 존스>는 저 멀리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할리우드 활극의 집대성이다. 달리는 차에 매달리고 차에서 또 떨어지면서 차의 밑으로 기어들어가거나, 채찍 하나에 의지해 바닥을 쓸면서 질주하는 장면들은 고전적 할리우드 스턴트 기법의 최전선이었다.

깜짝 인물: <반지의 제왕> 김리의 젊은 시절

남아메리카에서 신상을 두고 인디아나 존스를 배신하는 인물은 바로 앨프리드 몰리나다. 지금이야 <스파이더 맨>의 ‘닥터 옥토퍼스’로 더 유명하지만, 당시는 이제 막 영화계를 기웃거리던 연극 무대 출신 배우였다. 카이로에서 인디아나 존스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살라’ 역시 이제는 <반지의 제왕>의 ‘김리’로 더 유명한 존 라이스 데이비스다. 원래 스필버그는 대니 드비토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TV시리즈 출연이 계약돼 있었고, 새로운 인물을 찾던 차에 우연히 TV시리즈 <쇼군>(1980)을 보다가 뮤지컬 <팔스타프>의 팔스타프를 연상시키는 멋진 저음을 가진 그를 보고 낙점했다. 애초에 깡마른 이집트 광부로 설정됐던 살라였지만 그가 들어오면서 더 믿음직한 캐릭터로 변신했다. “<쇼군>과 <팔스타프>를 섞어보라”는 게 스필버그의 주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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