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8 애니 열전]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난 로봇
2008-05-27
글 : 박혜명

<월·E> WALL-E

7월31일 개봉예정

지구에 남겨진 최후의 로봇. 인간들이 스스로 오염시킨 지구를 버리고 떠나던 날, 단 한대의 로봇 전원만 끄는 걸 잊었으니 그게 바로 월E였다. 그렇게 무려 700년간 묵묵히 주어진 청소 일을 하고 살던 월E에게 문득 인격이 생겨버렸다. 호기심과 고독을 알게 된 월E는 인간들이 탑승한 거대 우주선 엑시엄의 파견 탐사로봇 이브를 만난 뒤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얻는다. 그러나 월E의 감정표현을 이해 못하는 이브는 지구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열쇠가 월E에게 있단 사실을 알고 우주선으로 급히 돌아가고, 그 뒤를 월E가 쫓아 나서면서 은하계를 누비는 로봇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자아도취에 빠진 몽상가 로봇 장난감, 집 나간 열대어, 아이 울음소리를 무서워하는 괴물 등 언제나 마음 깊이 끌리는 캐릭터들을 창조해내는 픽사스튜디오의 아이디어는 9번째 장편 신작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는 청소만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은 월E, 이제껏 본 것 중 제일 더러운 로봇 월E를 보고 미친 듯이 쫓아다니기 시작하는 미생물 박멸로봇 M-O, 반복되는 지루한 삶 속에서 인류를 위한 봉사의 목표를 얻게 된 엑시엄호 선장 로봇, 우주선의 승객에게는 버려졌지만 월E와 따뜻한 우정을 나누는 불량 로봇 등 다양한 인격들이 재미있게 투영된 캐릭터들이 <월E>의 가치 절반을 차지한다.

따뜻한 교감을 기대하게 만드는 <월E>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로봇들은 말을 하지만 그들만의 언어라 우리에게도 소통되지 않을 종류다. 그래서 야기될 수 있는 지루함 때문에 사실 <월E>는 픽사 내부에서도 부담을 느꼈던 프로젝트. 로봇들의 삐약 소리로 가득할 <월E>의 사운드 디자인은 <스타워즈>의 로봇 R2D2의 목소리를 창조한 벤 버트가 담당했다. 벤 버트는 “완벽한 로봇 음성이되 인간적인 사랑스러움도 느껴져야 하는 사운드” 월E의 목소리를 직접 맡아 녹음하기도 했다. 또 <월E>는 ‘포토리얼리즘’에 가까운 실사 느낌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도 픽사의 또 한편의 야심작이 될 듯하다. 60, 70년대 SF영화를 기준 삼아 촬영 및 조명을 디자인하고 실제 촬영의 느낌을 강조하고자 애썼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 특히 70년대 스타일을 의식해 와이드스크린 비율과 얕은 심도, 의도적인 포커스 아웃 등을 연출하고 핸드헬드 느낌도 부각시켰다고 한다.

무성영화의 감성과 70년대 SF영화의 질감을 살린 영화적인 애니메이션. 이 고도의 테크닉 속에서 탄생하는 주인공 로봇 월E는 앤드루 스탠튼 감독이 5년 전 야구장에 갔을 때 친구에게 빌려 쓴 망원경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디자인됐다. 쉽게 쓰고 버려지는 다른 가전도구들처럼, 인간이란 창조자가 부여한 단순한 책임을 700년간 지켜오다 인간들만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 로봇. 그는,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니모를 찾아서>의 각본 및 연출로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기도 한 스탠튼 감독은 “똑같은 일을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걸 모르는 불쌍한 로봇 캐릭터가 이 우주에 남겨진 가장 인간적인 존재라는 점에 빠져” 이 프로젝트를 4년간 멈추지 않고 진행해왔다고 한다.

“로봇은 벙어리가 아니다”

전설의 사운드 디자이너 벤 버트

벤 버트가 없었으면 <스타워즈>의 R2D2는 벙어리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타워즈>(1978) 때의 특별공로상 수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오스카상 4회 수상, 총 7회 노미네이트 경력을 지닌 할리우드 음향 스탭 벤 버트는 <스타워즈> 6편 전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4편 전 시리즈의 사운드를 책임진 뛰어난 재능의 사운드 디자이너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무수한 외계인들과 드루이드들의 목소리도 그가 디자인했고, 전세계 어린이들을 울렸던 <E.T.>의 주인공 ET의 목소리 역시 벤 버트의 디자인 작품이다. 오스카에 ‘음향디자인상’이라는 분야가 따로 없는 탓에 벤 버트는 이 작품으로 음향편집상을 수상했다.

벤 버트가 <스타워즈>의 사운드를 디자인해내기 전까지 할리우드에서는 ‘미래적인 소리’=‘전자사운드 가공’이란 공식이 일반적이었다. 벤 버트는 좀더 자연적인 사운드를 찾아 그것을 다른 음향효과와 섞는 방식을 택했다. 일례로 광선검의 사운드는 필름 프로젝터가 작동 멈춤 상태일 때의 낮고 미세한 울림 사운드와 고장난 TV에서 나는 잡음을 섞은 것. 그는 또 자신의 아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침대 속에서 끙끙대는 소리를 녹음해 ET의 목소리 소스로 사용했다.

1948년 뉴욕 태생인 벤 버트는 화학을 전공한 뒤 대학생영화제에서 전쟁영화 단편으로 상을 받고 영화 특수효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록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협업에 사운드 디자이너 33년 인생을 거의 다 쓰긴 했지만 다스 베이더의 거친 숨소리, 제다이의 스피더바이크 소리들을 포함해 그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창조한 사운드들만으로도 그 업적은 두고두고 기억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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