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에서 만난 아시아감독 [4] - 민병훈
2001-11-23
글 : 이상수
<괜찮아, 울지마>의 민병훈 감독

쓰러진 삶, 그러나 위로는 있다

지난 98년 <벌이 날다>로 데뷔한 민병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괜찮아, 울지마>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일반에 첫 공개됐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고원지방에 자리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작고 따뜻한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소박한 삶의 진실을 찾으려 한 첫 번째 작품의 주제의식은 이번 작품에도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벌이 날다>가 작은 권력을 휘두르는 무례한 이웃을 굴복시킨 보통 사람의 집념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은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어떻게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스크바에서 도박으로 소일하는 청년 무하마드(무하마드 라히모)는 돈을 다 탕진한 뒤 바이올린 케이스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겐 “유럽 공연이 취소돼 휴가를 얻어 악상을 구상하러 잠시 들렀다”고 둘러대지만, 그게 그의 허장성세임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모스크바 음악원을 나와 모스크바 필하모닉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말도 즉흥적으로 둘러댄 거짓말이다.

무하마드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가 인생의 어느 굽이에서 쓰러졌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지금 쓰러진 상태임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데 있을지 모른다. 어느 인생이든 쓰러질 때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서기란 좀체 어렵기 때문이다. 무하마드는 고향에서 허세와 거짓말을 더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아는 엄마는 “도시생활이 힘들어보이니 고향에서 함께 살자”고 말을 건네지만, 무하마드는 모질게 엄마를 윽박지른다. 동생에겐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해선 안 돼. 난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번도 안 했어”라고 허세를 부리고, 친구들에겐 “곧 저녁에 초대하겠다”고 호기를 부린다. 그러나 그가 거짓말로 위신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첫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도 민 감독은 현지에서 들은 우화를 끼워넣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란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돌산을 깨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낙타산에 담긴 민화는 중국의 옛 이야기 ‘우공이산’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등 네 사람만 현지 오디션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배우를 기용했고, 나머지 등장인물은 영화를 촬영한 우즈베키스탄 낙타산 아래 마을의 현지인을 썼다. 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이란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제작방식을 많이 빌린 셈이다. 맑고 우람한 중앙아시아 산맥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력과 결 고운 마음씨는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고산지대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오솔길 등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자꾸만 이어지는 일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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