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 작가의 유쾌한 관찰
2009-05-12
글 : 김용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차이와 반복의 삶의 결을 희극으로 풀어낸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물과 가까이 있는 두 도시 이야기. 구경하는 남자는 제천과 제주도를 차례로 방문한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벌어지는 작은 미스터리들, 그리고 연이은 사소한 실패 앞에서 당황하고 만다. 홍상수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역시 물과 가까이 있는 도시, 칸영화제의 감독주간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자신이 품고 있는 내용처럼 우연이고 동시에 필연인 삶의 일부분이 된 걸까? 홍상수 감독과의 인터뷰, 그리고 여기 참여했던 일곱 배우들의 육성, 여기에 배우 엄지원이 기록한 생생한 제작기와 본지 창간 14돌 기념으로 열린 ‘배우, 열정을 말하다’의 첫 토크쇼 주자 고현정과의 유쾌한 대화를 전한다.

“한여름, 제천과 제주도에서 구경남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긴 하는데, 그 안을 쳐다보면 다른 면도 많이 있습니다.” 제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 프로그래머 공현희(엄지원)를 비롯한 영화인들과의 술자리를 핑계 삼아 심사는 뒷전이다가, 우연히 오래전 친구 부상용(공형진)을 만난다. 상용의 집에서 벌어진 술자리는 상용의 아내 유신(정유미)으로 인해 묘한 분위기로 마무리되고, 다음날 구경남은 뜬금없이 파렴치한으로 몰린 채 도망치듯 제천을 떠난다. 학교 선배이자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일하는 고 국장(유준상)의 초청으로 제주도에 특강을 가게 된 구경남. 학생들과의 뒤풀이 자리에 화백 양천수(문창길)를 만나 다음날 그의 집에 동행한다. 양천수의 재혼한 아내는 경남이 예전에 연모했던 후배 고순(고현정)이다. 경남과 고순이 불장난처럼 은밀한 만남을 가지던 중, 동네 주민 조창우(하정우)에게 현장을 들키고 만다.

또 다른 삶을 꿈꾸지만 그건 반복일 뿐

홍상수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언제나처럼 차이와 반복의 놀이를 제안한다. 여기선 ‘내 짝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라고 공언하는 두 커플을 연달아 만나게 되는 구경꾼, 경남이 주인공이다. 여자들에게 곧잘 인기가 많고 또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을 사귀어온 경남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집 저 기집 신경 쓰지 않고 한 사람만 신경 쓰면서 사랑의 금자탑을 쌓는 거, 자기경멸하지 않고 사람이었다 동물이었다 하지 않고 쭉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에 대한 은밀한 열망이 있다. 아니, 사실 그런 열망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제천과 제주도의 커플들, 즉 옛 친구 상용과 존경하던 선배 천수의 입을 통해 새 삶에 대한 찬가를 듣고 나자 그는 곧 열망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니, 두 커플뿐만 아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회고전을 열 정도로 인기가 많은 김 감독과 그에게서 호감을 얻어내려 애쓰는 배우 오정희와 공현희 프로그래머, 제주도 수영장에서 공놀이하던 이름 모를 커플, 양 화백에게 숭배의 시선을 보내는 성마른 학생 영심, 양 화백과 구경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질투를 느끼는 고 국장 모두에게서 비롯된다.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대부분의 타인들에게서, 구경남은 불현듯 지금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혹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상력은 이성보다 강해진다.

“모든 사랑에는 각기 나름의 차이점이 있지만 이 차이는 그 이전의 다른 사랑에서 우리가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반복은 관념의 직접적인 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반복은 의식과 관념 사이의 어떤 간격, 어떤 부적합성을 나타낸다. 경험은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반복한다는 것을 부인하며 항상 새로운 어떤 것과 맞닥뜨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특강 도중 경남은 말한다. “정말 몰라서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이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렴하는 겁니다. 체계적으로 미리 가지 않고, 매번 발견하는 겁니다.” 바닷가에서 고순이 충고한다.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두 가지의 상반된 의견이 영화에 등장한다. 하지만 차이를 갈망하던 삶이 결국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근원적인 무언가를 향한 끝없는 반복임을 어렴풋이 깨닫는 순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새 삶을 산다’라기보다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산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남은 수영장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생각한다. ‘정말 물에 들어가고 싶다.’

곳곳에 숨어 있는 수많은 삶의 기호들

홍상수 감독은 제천영화제 파티 촬영을 준비하던 당일 아침 청개구리가 눈에 띄면 “오랜만에 보는 청개구리가 예뻐 보여서” 그것을 영화에 등장시킬 수 있는 대사들을 새로 썼다. 부상용의 집 촬영을 준비하다가 움찔거리는 애벌레를 우연히 발견하자 “그것도 귀여워보여서” 장면에 삽입했다. 부상용을 연기하는 공형진이 리허설 도중 실수로 벌레를 밟자, 그 비슷한 벌레를 다시 구해 와서 기어이 영화에 삽입했다. 그 애벌레는 새 삶 앞에서 부러워하며 꾸물거리는 구경남일 수도 있고, 혹은 새 삶을 시작했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반복된 패턴을 의식하지 못하는 커플들의 지나친 진지함이 안겨주는 희극적 느낌의 현현일 수도 있다.

경남이 만나는 세명의 여인, 현희와 유신과 고순은 차례로 처음 등장할 때 왼쪽, 가운데, 오른쪽 방향에서 경남을 향해 걸어온다. 제천에서 제주도로 이어지는 동안, 영화가 시작되어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동안 물의 비중은 조금씩 커지면서, 수영장 한구석만 보여주다가 호수로, 횟집 창문 너머로 가려져서 보이는 바다로, 수로 덕분에 육지로 이어지는 바다의 한 부분으로, 급기야 바다의 풀숏으로 마무리짓는다.

홍상수는 제천과 제주도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촬영하는 그 집중된 한달여의 시간 동안, 우연히 맞닥뜨리는 어떤 ‘기호’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나 보면 척, ‘이 의미는 그런 것이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무언가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우연히 맞닥뜨린, 우연하지만 필연적으로 주어진 그 모호한 의미들을 모호하게 내버려두며 우리 역시 그 모호한 삶의 장 안으로 초대한다. 이 기호들은 그런 의미에서 선택하였지만 선택된 게 아니다. 여기서 패턴을 발견한다면 이 영화를 만든 이들, 혹은 관람자들, 결국은 이 모든 ‘기호학자들’이 의존하는 해석의 틀에 기댄 수없이 다른 결과물일 것이다.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목수가 된다. 혹은 병의 기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의사가 된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모든 것은 기호를 방출하며, 모든 배우는 행위는 기호나 상형문자의 해석이다.”(<프루스트와 기호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기꺼이 그 기호들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차이와 반복이 모두 속해 있는 어떤 커다란 삶의 계열을 슬쩍 보여준다. 그리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에서 우리는 자꾸 미끄러져 달아나는 우리의 삶을 힐끗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되찾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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