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3] - 아시아영화
2001-02-22
정리 : 박은영

아시아영화, 세계영화사 새로 쓴다

80년대 후반부터 서구 영화인들을 찬탄케 한 아시아영화들은 세기 전환기에 이르러 더욱 빛나고 있다. 산업은 할리우드 손을 떠나지 않더라도 미학적으로는 이미 아시아영화의 시대가 온 게 아닌가. 21세기의 영화사의 본론은 아시아영화가 쓰게 되는 건 아닌가. 그곳에 과연 한국영화도 발견될 것인가.

김 | <와호장룡>을 최근에 봤는데, 캐릭터 속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웅담이라 느껴지지 않고 한국영화의 알레고리, 한국영화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질까, 궁금했다. 직관이니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아시아영화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는 걸 몰랐어도, 홍콩의 무협영화 전통에 학술적으로(정서적으로가 아니라) 정통한 서구감독이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정 | 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번 봤다. 그런데 두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붕 위를 뛰어 추적하는 장면과 대나무(대나무잎) 위에서 싸우는 장면. 사람들은 왜 이 장면들을 그렇게 좋아했을까, 생각해 봤다. 지붕 장면은 이제까지 홍콩 무협영화가 못 찍은 각도로 새로운 시선을 잡아냈기 때문에 매혹적이었다. 나뭇잎 위에서의 격투는 <호금전>에서 이미 본 데다가 오마주라기보다는 키치적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화양연화>(내가 왕가위 팬클럽이기도 하지만) <유레카> <플랫폼>이 좋았다. 최근 한심하게 읽은 글이 데이비드 보드웰의 <플래닛 홍콩>인데, 보드웰은 홍콩영화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그가 <화양연화>를 두고, 이렇게 실험적인 영화, 실험적인 장면으로 가득한 영화가 어떻게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나, 아방가르드에서 가르드를 뺀 아방파의 영화가 아닌가, 했더라. 왕가위는 <화양연화>에서 팝한 것을 아방하게 만들었다. 에드워드 양은 멜로드라마로 인생의 깨우침을 줬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숭고함이다. <유레카>의 상영시간은 3시간40분이다. 이 긴 시간은 주인공들의 상처를, 그리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그 잉여의 고통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을 이끈 것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유레카’(찾았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숏의 길이와 속도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시아영화가 서방세계에 설득력을 갖는 것은, 서방세계의 문법을 끌어안고 팝한 것을 아방하게 표현하는 예술적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작은 이유 중 하나지만.

김 | 보드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매번 홍콩영화제에 자비로 찾아오는 백인 할아버지가 그였다. 그의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학교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 갔더니, 홍콩영화가 최고 인기프로였다고 한다. 학생들은 강의실에선 마지못해 고다르와 그리너웨이를 배우면서, 주말에는 홍콩영화 파티를 하는 거였다. 성룡이나 주윤발 영화는 물론, 주성치 영화, 강시영화까지 인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홍콩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때 쉬쉬 하면서 홍콩영화를 보던 이들이 지금 언론인이 되고 영화평론가가 되고 교수가 됐다. 대중영화에 지나치게 매혹됐던 그들이, 할리우드에 온 오우삼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건 당연하다. <와호장룡>은 그와는 다른 산업적인 의미가 있다. 북미 관객이 자막을 읽기 시작했다기보다는 자막을 읽지 않고 액션시퀀스 때문에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걸 갖고 자막을 읽기 시작했다, 아시아영화가 먹히기 시작했다고 판단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아시아영화가 뜨고 있다면, 한국영화는 어떤가. 음모론적 시각인지 몰라도 최근 아시아영화가 각광받고 있는 건 지난 30년 동안의 결실이다. 영화제를 통해 당대의 거장들을 꾸준히 소개해 온 것이다. 아시아영화가 영화제에 구색맞추기로 소개되면서, 중국권영화에서 이란영화로, 이젠 한국영화로 볼이 넘어온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엔 골인이 된 건 아니고, 지금은 미들필드에서 볼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 미국영화계의 아시아 붐은 다른 요인도 있다. 미국 영화인과 관객 사이에 홍콩영화의 매혹에 대한 기억이 암암리에 있었고, 이걸 토양으로 할리우드가 아시아 감독을 영입해 내셔널하고 개인적인 창조성을 상품화한 것이다. 이건 스튜디오의 오랜 전략이다. 한때 호주, 프랑스감독들이 그 대상이었던 것처럼. 한국영화는 어떤가. 그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를 가져가는 건 당연하다. 영화제가 예술영화의 게토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홍콩, 중국, 이런, 한국, 이젠 타이로 넘어갈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엔 양상이 약간 다른 면이 있다. 보통의 경우엔 특정 국가의 한두명의 거장이 집중조명되고, 그 나라 인지도가 높아진 다음, 그 나라 영화에 대한 관심을 받게 된다. 한국은 거장이 먼저 길을 닦은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 자체가 하나의 분류항목이 돼버렸다. 하나하나 작품으로 보면 허술한데,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상업영화가 같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한 거다. 어쨌거나 한국영화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던 것이고 이제 순위가 된 거다. 너무 흥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와호장룡> <유레카> <화양연화> <하나 그리고 둘>은 이런 흐름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들이다. 모두 제작조건과 산업적 위치가 주변이지 중심은 아니었다. 심지어 왕가위조차도. 그걸 보면 산업의 주변에서 영화의 힘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주변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수용해 주는 바탕이 있나. 주변부는 70∼80년대보다 축소되고 왜소화된 느낌이다.

정 | 8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두 영화가 자기 유행을 만들려고 싸웠다. 중국부터 이란에 이르는 아시아영화와 퀴어영화다. 퀴어는 더이상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할리우드 주류영화가 퀴어 담론을 안아버렸기 때문에 전복적이지도 대안적이도 않고, 그 자체로 상품화돼버렸다. 반면 아시아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감독들이 끈질기게 등장했다. 첸카이거와 장이모,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왕가위 그리고 키아로스타미와 이란감독들, 또 최근엔 아오야마 신지 같은 젊은 일본감독들까지. 내가 묻고 싶은 건 아시아영화 속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아니다. 과연 한국영화는 아시아영화들과 연대할 준비가 됐는지, 자기 목소리가 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국제평단에서 주목받은 아시아영화의 공통점은 근본주의적 질문을 안고 싸운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얘기한다는 것이다. 키아로스타미도 마흐말바프도 근본주의 속에서 삶을 이야기했다. 중국영화는 ‘살아라’ 하고 이야기한다. 첸카이거 세대는 문화혁명 시대를 통과해, 그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들은 가자, 가자, 가자, 지아장케도 <플랫폼>에서 말했다. 왕샤오슈아이가 <천국보다 가까이>에서 ‘살아라’했고, 지아장케와 정반대 지점에서 로우예도, ‘치사하지만 살아라’했다. 차이밍량은 <구멍>에서 황당한 결론을 내렸지만, 다음 세대에게 ‘하지만 살아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한다. <유레카>도 ‘죽지말라’고 기다려주는 어른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안노 히데야키는 <에반게리온> 카피에 1몽땅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해 가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령공주>에서 ‘살아라’했다. 공동의 문제의식으로, 알게 모르게 연대하고 있었던 거다. 아시아가 근대를 통과하면서, 부서지고 자본화되고, 끔찍한 후기자본주의에 IMF라는 난리를 겪었지만, 예술가들이 ‘살아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중국은 새로 시작하는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살아라’했고, 일본은 포스트모던사회 속에서 ‘살아라’하며, 시대와 맞대면하고 있다. <화양연화>에서 왕가위도 마지막 순간, 왕코르와트 사원에 기억을 봉인하고,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한다. 에드워드 양이 위대한 것은 그 모든 목소릴 한 작품 속에서 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반칙하고 있다는 건, 문법도 살아가는 방식도 그렇다는 게 아닐까. 한국 자본주의가 반칙하고 있다는 걸 개념적으로 알레고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고민에 눈감고 있는 것인지, 그 정도로 상업화돼 있는 것인지, 대중의 욕망이 그러해서 이끌린 것인지, 모르겠다.

김 | 나는 냉정하게 판단할 세대를 지났다. 젊은 시각으로 사회의 가려진 부분을 포착할 더듬이가 둔해져 버렸다. 영화광 시대로부터 출발했지만, 지금 세대가 끔찍해 보일 때가 있다. 이율배반적인 것이 영화의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는데 주도해나갈 사람들이 기회주의나 제도와의 타협에서 더 앞서간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서워질 때가 있다. 나 자신, 복고적인 인간이 돼간다. 최근 한국영화를 안 보는데 가끔 60년대 영화를 한편씩 보는 것만으로 모든 갈증이 풀린다. 내 문제인지도 모르고, 최근 한국영화가 뭔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형적인 성장과 대외적인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영화작가들과 연대할 의지와 우리 몫 할 수 있는 내용이 빈곤하구나, 싶다. 해결책은 뭘까. 산업적 방향으로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지금의 추세가 둔화되길 바란다. 안정화도 좋지만 더 큰 이윤을 추구하는 타협으로 흐르지 않길 바란다. 만드는 이들의 책임이 크다. 지금 한국영화산업은 주변부에 숨통을 내주지 않는다. 70∼80년대는 정책의 모순 때문에 질곡의 세월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흥행 목표가 앞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우에 따라선 좋은 작품이 나왔다. 60년대 열악한 시스템도 다작이 받아들여진 구조였고, 작가영화와 흥행영화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잘 만든 영화가 흥행한다는 걸 제작자가 믿었다. 그 시대 한국영화의 힘과 기에서 그 교훈을 발견한다. 복고와 훈고는 다르다. 아카이브적 차원이 아니라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해답을 바라는 것이다. 아시아영화 속에서의 연대도, 우리 영화 전통 속에서 제대로 찾아볼 때 이룰 수 있을 거다.

정 | <화양연화>나 <와호장룡>이 서구에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을, 시장논리로 얘기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거다. 분명한 건 영화제에서 그 중심을 이뤘다는 거다. 영화도 괜찮았지만 아시아영화 속에서 서방세계를 설득할 스타가 나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공리 이후에도 주윤발, 장만옥, 장쯔이 같은 스타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건 제3세계 영화라 일컬어진 라틴영화가 거두지 못한 성과다. 오리엔탈리즘의 성과라기보다는 서방 대중 관객에게 먹히는 스타가 나왔다는 사실. 장만옥의 차기작이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라고 하는데, 그건 장만옥을 끌어안아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노력이다. 첸카이거와 장이모가 실망스럽게 변하고 있지만 중국은 새로운 감독들을 내놓고 있고 그 작은 이란에서도 끊임없이 새 감독이 나온다. 사미르 마흐말바프 영화를 보면서, 이란영화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만하임에서 새로운 이란 여성감독의 영화를 봤다. 게이 레즈비언 영화인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비슷한 구조지만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쪽으로 가버린다. 굉장히 창의적인 영화였다. 감독이 66년생이라는데, 서방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가 영화에 눈떠 유럽에 갔고, 베르톨루치를 만났다 한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녀에게 베르톨루치가, 여기서 찍으면 여성감독에 머물겠지만, 돌아가면 이란 여성감독으로서 평생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거라 했단다. 새로운 감독의 끝없는 발견, 이게 아시아영화의 힘이다. 서로 각기 다른 지점에서 예술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거다. 한국감독은 산업 안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있지만, 예술적 싸움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거짓말>의 경우, 사회를 등지고 작은 여관방을 전전한다. 사회의 어떤 곳도 그 공간에 압축돼 있지 않다. 세상과 싸우는 <반칙왕>도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었고, 세상의 끔찍함은 <섬>의 작은 낚시터에서 참혹한 사도마조히즘으로 반복될 뿐이다. 왜 세상을 보지 않는가. 허우샤오시엔은 <비정성시> 이후에 역사에 대한 고민으로 눈을 돌렸다. 도식화된 고민이 아니라 삶 안에 들어가, 지금 대만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국영화의 근심은 어떤 건가. 근심이 없다는 건 자아가 없다는 거다. 있더라도 자아의 근심의 폭이 좁은 것 아닌가. 작은 의문 한 가지도 함께 떠오른다. 김홍준 감독이 <장미빛 인생>을 찍은 해에, 차이밍량은 <애정만세>를 찍었다. <장미빛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 아이를 보는 것이 희망을 얘기하는 거라고 나는 판단했다. <애정만세>는 한없는 통곡으로 끝난다. 대만과 남한은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거의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감독은 희망을 얘기하고, 또 한 감독은 눈물을 참으며 이상한 인간관계의 소외 속에서 퀴어 코드를 수용하고, 절망으로 끝낸다. 김홍준 감독 영화의 또다른 특징이 바로 주인공이 고아라는 점이다. 고아들이 모여 가족을 만든다. 차이밍량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나와 가족을 이룰 수 없는 불구성을 이야기한다. 한국영화의 공통적인 문제 틀은 고아 의식이다. 90년대 후반 영화들은 가족에 대한 의식이 없다. 공동체 의식도 없고 가족도 없고 사회도 없으니 연대할 이유를 못 찾는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가족 가치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영화 속에선 왜 그럴까, 종종 이상하게 여겨진다.

김 | 80년대라는 시대의 흔적 때문 아닐까. 문학에서 더 일찍 다룬 것이긴 하지만, 아버지를 부정하고 전 세대와 단절되고 싶어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 세대는 자기가 이 세상에 등장한 최초의 인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속성을 부정하고 싶었던 거다. 와 <반칙왕>에 아버지가 등장하긴 하지만, 중요 역할로 나오는 예도 드물고, 늘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는 게, 바로 그 단절이라는 화두 속에 포함되는 얘기 아닐까. 그럼 우리도 단절과 청산의 대상인 건 아닐까.

정 | 김경현 교수가 지적했지만,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 제목이 <칠수와 만수>라는 게 이상하다. 이름은 아버지가 주는 것인데, 영화의 제목부터 아버지의 호명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망령은 <그 섬에 가고 싶다> <베를린 리포트>에 다시 나온다. <전태일> <이재수의 난>도 제목에서 누군가를 호명하고 있다. 이름을 부여받은 것에 대한 질문이, 이상한 방식으로 복원되고 있다. 올 초 개봉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번지점프를 하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가족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나도 아내가…>에서 왜 ‘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있었으면 좋겠다’일까. 말장난일지 모르겠지만, 그 제목이 어떤 진실을 안고 있다면, 후일담은 둘이 헤어졌다는 걸까. 예술가의 말을 믿지 말고 그 영화의 이야기를 믿으라고 했지만 한국영화는 아시아영화 속에서 UFO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고아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 가족이 부서져도 고민의 수준이 다르다. <고하토>가 쇼크였던 게, 가족없는 집단의 가족주의가 만들어내는 힘과 자력의 관계 속에서 욕망을 이야기했다는 거다. 일본 영화감독에서 아시아감독으로 점핑한 것이다. 허우샤오시엔도 지아장케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한국감독은 아시아영화와 연대할 길이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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