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바타> 내러티브를 업시킨 입체의 힘
2009-12-29
글 : 최익환 (영화감독)
최익환 감독이 말하는 3D 입체영화로서의 <아바타>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입체를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입체에 방점을 찍는 입체영화(<블러디 발렌타인>), 또 다른 하나는 영화에 방점을 찍은 입체영화(<업>). <아바타>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이는 입체 효과가 적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입체가 내러티브를 도와주는 데 사용되었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입체라는 목표를 위해 다른 영화의 구성 요소들이 배치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반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 정도만 입체를 사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아바타>의 입체는 ‘판도라’라는 판타지 세계에 대한 묘사와 그곳에서의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곳은 신화적 공간이며 로맨스와 교감, 자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리고 주인공 제이크가 자신을 버리고 아바타가 되어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다. 감독은 이런 세계를 묘사하는 데서 주인공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낯설고 위험하지만 신나는 3D적 체험이 관객에게 효과적이란 생각을 한 것 같다.

재미있는 지점은 사운드와의 결합이다. 사운드는 아주 잘 만들어졌다. 2D 대작영화, 판타지를 그린 영화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대가들의 꼼꼼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선보인다. 보통 이런 사운드는 이미지를 도와 이미지의 비현실성을 현실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기여한다. 그런데 아바타에서는 입체가 사운드의 현실성을 더욱 증가시킨다. 이미 공간을 다뤘던 사운드가 입체라는 영상적 공간 안에 위치하니 그 힘을 더욱 크게 발휘한 것이다. 3m가 넘는 아바타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무 위를 말을 타고 다니는 장면에서 내 앞에 실재하는 풍경을 진짜처럼 만드는 사운드와 입체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아바타> 역시 많은 입체 요소들을 시나리오 때부터 가져왔다. 판도라에서는 입체적으로 유용한 ‘공중을 유영하는 물질들’이 판도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재미있는 점은 비행장면이다. 제이크가 비행생물 이크란을 타고 나는 장면에서 자주 컷이 바뀐다. 로버트 저메키스라면 이렇게 컷을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입체 효과를 위해 가장 유용한 표현은 시점으로 공간을 훑는 숏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메키스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입체 효과를 위해 유영하는 카메라워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사용한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컷을 나눠서 적절한 시점숏과 객관적인 인물의 심리묘사 컷을 오간다. 입체영화를 만들면서도 적절하게 입체를 거부하게 만들어 내러티브에 더욱 포커스를 맞추려는 원칙이다. 카메론에게 입체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 제이크와 네이티리 사이의 교감이었다고 할까.

입체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기본이고 그것을 드라마적으로 잘 썼다고 느끼게 만든 다른 입체 연출이 있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에서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세계를 밋밋한 입체로, 또 다른 세계를 공간감이 더욱 강조된 강한 입체로 표현하는 방법이 <아바타>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나비족이 사는 숲의 공간을 와이드 렌즈와 함께 편안하고 서정적인 입체 공간으로 묘사한 데 비해 인간이 사는 공간 특히 실내는 입체감을 더욱 세게 만들어 강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입체를 이용해 시점을 유지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연출법은 나를 흥분시켰다. 카메라 앞쪽에 인물이 있고 뒤에서 다른 인물이 걸어오며 이야기하는 와이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일반 2D영화라면 말을 하는 사람이 뒤에서 앞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운드도 점점 다가오는 듯 표현한다. 그런데 동일한 <아바타> 장면에서는 사운드가 일정하다. 그 이유는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위치를 스크린 면으로 계속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는 컨버전스 포인트, 0점을 뒤에서 앞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컨버전스 포인트의 이동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겠지만 이를 드라마의 시점으로 녹여놓은 이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아바타>에는 이 밖에도 입체를 잘 구현하기 위한 배려들, 효과적으로 사용된 예들이 나처럼 3D영화 만들기에 갓 입문한 초보자 눈에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바타>에는 정말 이야기에 매몰되어 입체임을 잊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는 이야기, 배우, VFX, 미술, 음악, 사운드, 입체 거의 모든 요소가 하나를 향해서 완벽히 클릭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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