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는 수정주의 서부극을 SF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수정주의 서부극이 인디언들을 우매하고 잔인한 약탈자로 규정한 기존 백인 중심 서부극의 영웅 서사를 해체했다면, <아바타>는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언어와 세계를 받아들였던 더스틴 호프먼의 <작은 거인>(1970)이나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1990)을 떠올리게 한다. 아바타로 거듭난 제이크(샘 워딩턴)가 네이티리(조 살다나)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늑대와 춤을>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주먹 쥐고 일어서’와 결혼하는 것과 닮았고, 제이크가 실제 자신의 육체와 아바타를 번갈아 오가는 설정은 <작은 거인>에서 인디언과 백인 사이를 여러 번 오가며 살 수밖에 없었던 더스틴 호프먼의 기구한 일생과도 겹친다. 또한 귀상어와 코뿔소를 합쳐놓은 것 같은 해머헤드떼의 질주를 보면서 <늑대와 춤을>의 버팔로떼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행성 판도라에서 살아가는 나비(Na’vi)족은 나바호(Navaho) 인디언들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오우삼의 <윈드토커>(2002)에서 사이판 전쟁에 투입된 인디언들이 바로 나바호족인데, 당시 새로운 암호체계를 만들고자 했던 미국이 선택한 것이 바로 나바호 인디언의 복잡한 언어였다. 게다가 나비족이 신성시하는 거대 나무가 자라는 그들의 터전은 마치 나바호 인디언들의 숭고한 성지 ‘모뉴먼트 밸리’를 연상시킨다. 공중에 뜬 채 끊임없이 이동하는 할렐루야 산은 영락없이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의 진기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모뉴먼트 밸리의 변형이다. 지금은 나바호 자치구역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에서 강제 이주 위협에 놓인 나비족의 운명과 닮아 있다.
구체적으로 제이크 설리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인물이 바로 키트 카슨이다. 미국 서부개척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그는 우연히 만난 ‘노래하는 풀’이라는 인디언 처녀에게 반해 그들의 언어도 배우고 결혼까지 하고 아이도 낳은 사람이다. 하지만 인디언들과 친하고 그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그는, 영화 속 제이크처럼 지형을 꿰뚫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서부 정복의 주역이었던 프리몬트 원정대의 안내인으로 일했다. 그렇게 그는 이율배반적으로 인디언 최대 부족인 나바호족을 초토화하는 작전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던 것이다.
결국 <아바타>는 인간과 나비족의 전쟁의 기록이며 그것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서부 개척사와 일맥상통한다. 단지 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침략을 일삼는 인간들의 모습은, 미합중국 기병대가 인디언들에게 자행했던 야만 행위를 그대로 보여준 랠프 넬슨의 <솔저 블루>(1970)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로서는 그런 광경을 보여준 것 자체가 상당한 반성과 참회의 서사였다. 역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라스트 전투신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야심은 더 멀리 가 있었다. 그간 서부극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야만적인 인디언들의 백인 집단학살로 알려져 있던) 1876년 벌어진 ‘리틀 빅혼’ 전투를 화려한 3D로 재연해낸 것이다. 몇몇 순간은 마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탈출한 울자나 일당이 백인들을 습격해 내장을 꺼내고 거꾸로 매다는 등 백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하고 다녔던 로버트 알드리치의 <울자나의 습격>(1972) 같은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비족이 군인들을 습격할 때 더욱 흥분되는 거다.
이마저도 역사적 사실과 너무 비슷하다. 영화에서 나비족의 보금자리 아래 숨쉬는 자원 언옵타늄을 채굴하기 위해 그들을 강제 이주시키려 하는 것처럼 당시 미국 정부는 수우족 보호구역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그들을 쫓아내려 했다. 그러자 수우족의 위대한 추장 ‘앉아 있는 황소’의 지도 아래 ‘크레이지 호스’가 이끄는 정예군은 샤이엔족과 힘을 합쳤다. 결국 남북전쟁의 영웅인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제7기병연대는 무모한 진격을 감행했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포위당했고, 인디언 연합군은 기병대를 협곡으로 몰아넣어 전멸시켰다. 영화처럼 그들은 기병대보다 수적으로 우위였지만 주무기는 그저 활뿐이었고 제이크는 바로 그 위대한 크레이지 호스의 재림이다. <작은 거인>이 그 리틀 빅혼 전투가 끝난 처참한 광경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작은 거인>의 프리퀄을 이제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