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박대희] 한국영화 제작의 구심점 찾기
2010-01-14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방자전> 프로듀서 박대희

박대희(38) 프로듀서에게 2009년은 기로였다. 2007년에 시오필름에서 프로듀서 직함을 얻었지만, 준비하던 프로젝트들이 제작 연기되거나 무산됐다. 2007년 말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을 만났으나 근 2년 동안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일주일도 쉬어본 적 없는 복 많은 영화인”이었다는 박대희 프로듀서는 제작부원 꼬리표를 떼자마자 “시련이 찾아들었다”고 말한다. “이참에 아내와 아이 데리고 외국에 다시 나갈까 고민을 여러 번 했죠.” <방자전>이 촬영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 남자는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10년 전 그에게 충무로는 그저 ‘견학코스’였다. 영국에서 저널리즘과 영화이론을 공부한 그는 박사 과정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왔다. <광복절특사> 제작부 일을 하게 됐다. “이론만 파고들다 보니 현장이 궁금하잖아요. 사돈에 팔촌까지 다 뒤져봐도 주변에 영화인이 없어 막막했는데, 알고보니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약국 손님 중 한분이 강우석 감독님 형수님이었어요. (웃음)” 견학은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던” <올드보이>로 이어졌고, <올드보이> 멤버들이 주축이 된 시오필름에 입사까지 했다. “배신이죠. 배반이고. (웃음)”

동료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다. 예산 작성부터 정산까지 제작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해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마존을 들락거리며 관련 서적들을 사모았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잖아요. 누구한테 조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고. 크레딧만 해도 회사마다 혼재되어 사용되는 터라 새 직원 뽑을 때마다 불편이 많았어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제작부의 권한과 역할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자 싶었죠.”

2010년에 그는 곱절로 뛰어야 한다. 1월10일까지 <방자전> 촬영을 끝낸 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일도 거들어야 한다. PGK 3기 조직위원장을 맡아 “200명이 넘는 프로듀서들을 모으는” 임무도 주어졌다. “사업 속도만 보면 아쉬움이 많지만 프로듀서들이 한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의미있어요. 회의가 끝나면 누구는 회사로 돌아가고, 누구는 보험을 팔러 가지만, 영화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는 다들 열심이니까.”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고 믿는 그의 바람이 충무로 빙하시대를 녹여낼 수 있을까.

추천사 ★ 임승용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 시오필름 대표

<휴머니스트> 때 프로듀서와 제작부원으로 처음 만났다. 그때는 내가 직접 뽑은 친구가 아니라서 잘 몰랐다. 그러다 <올드보이> 때 다시 만났는데 해외에서의 경험도 있어서 뉴질랜드 촬영 때 라인 프로듀서 일을 시켜봤다. 내 입장에선 테스트를 해본 셈인데, 만족스러웠고, 그 뒤로 쭉 같이 하게 됐다. 프로듀서마다 특기들이 하나씩 있는데 친화력이 무엇보다 뛰어나다.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좋고. 내가 성격이 좀 나쁜데 <방자전>은 감독과 제작자 사이에서 조율을 해줄 거라 믿고 맡겼다. (웃음)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까지 갖춘다면 유능한 프로듀서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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