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수연] 그럼에도… 참 맑은 그 얼굴
2010-01-14
글 : 김용언
사진 : 최성열
<너와 나의 21세기> <러브홀릭> 배우 한수연

“그냥, 어려운 사람들 좀 도와주는 거야.” 이제 막 친해진 카드깡업자에게, 수영이 희미하게 웃으며 응수한다. “그래? 나도 어려운데. 나도 좀 도와주라.” <너와 나의 21세기>의 그 부분, 한수연이 연기하던 수영의 그 표정과 말투에서 마음이 내려앉았던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억누르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버려 이제는 지쳤다는 것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할 만큼, 바스라지기 직전의 가장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수영의 현실이 그 순간 가장 사무쳤다. “<너와 나의 21세기>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이건 나잖아, 내가 해야만 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한수연은 꽤 오랫동안,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개씩 한 적이 있었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삶을 지속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에 수영에게 깊숙이 감정이입할 수가 있었다.

<너와 나의 21세기> 이후 곧바로 들어간 권칠인 감독의 <러브홀릭>도 쉽지만은 않았다. 2008년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았던 이 멜로드라마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30대 초반의 유부녀 경린, 부족할 게 없는 삶에서 빠져나와 치명적인 불륜에 빠지는, 알 수 없는 여자다. “자기 안에서 많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인데 그걸 계속 가둬놓고 있다보니 불행했던 여자다. 그러다가 30대를 넘기면서 스스로를 찾아가게 된다. 솔직하다는 게 정말 좋았다. 불편하더라도 솔직한 게 맞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용감한 여자들에 대한 끌림은 천성인 것일까. 되짚어보니 어린 시절을 헝가리에서 보냈던 남다른 기억이 있는 한수연에게, 영화는 유일한 도피처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낯설기만 한 이국 땅에서 그녀는 하교 뒤 곧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말을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었다. 영화가 유일한 친구였고 그녀에게 안정감을 줬던 유일한 대상이었다. 그때부터 배우를 꿈꿨던 그녀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영화들은 <로제타> <로나의 침묵> <페이지 터너> 등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만큼 진중하게 영화와 삶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20대 배우는 처음 만난 것 같다.

추천사 ★ 권칠인 <러브홀릭> <싱글즈> 감독

<러브홀릭> 오디션장에 혼자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더라. 요즘은 생초보 연기자들도 매니저와 대동하는데, 한수연은 어떤 조언이나 도움없이 당당하게 평가받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기라는 게 어차피 혼자 카메라 앞에 서는 건데, 그 씩씩함이 좋았다. 의욕과 투지가 있었고, 촬영에 들어가서도 좋은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얼굴이 참 맑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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