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조성희] 영화적 울림 이전의 진실
2010-01-14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짐승들의 끝> 감독 조성희

2008년 9월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들이 모여 졸업작품 품평회를 열었다. 조성희(31) 감독의 <남매의 집>도 졸업작품 중 한편이었다. 시사가 끝난 뒤 누군가는 “망했네”라고 말했다. 다른 동기들은 “형도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고 위로했다. 반 농담이었지만, 조성희 감독은 수긍했다. “연기는 딱딱하고, 사운드도 거칠고, 편집도 서툴렀고, 미술도 부족했고, A부터 Z까지 허점투성이였어요.” 하지만 바깥 온도는 달랐다. <남매의 집>은 2009년 단편에 주어지는 영예를 싹쓸이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칸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까지 수상했다.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를 만하다. 혹독한 내부 시선도 누그러들지 않았을까. “음, 요즘은 너무 과대평가받았다고들 하세요. (웃음)”

영화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영화의 ‘영’ 자도 몰랐다”지만, 이야기를 비주얼로 묶어내는 훈련만큼은 혹독하게 치렀다.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4년 동안 그는 연극에 몰두했다. 졸업하고 나선 ‘재미삼아’ 인디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구멍가게’ 규모의 CG회사를 차려 광고회사에 납품하기도 했고, 한 제작사에서 준비 중이던 괴수영화의 크리처 디자인 작업도 했다. 올리브스튜디오에서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따개비 루>는 현재 방영 중이다. “케이블 방송사에서 드라마 연출 제의를 받은 적도 있어요. ‘감독님’ 소리 듣는 건 좋았죠. 그런데 파일럿 영상 모니터 때 회사 이사님이 한숨 쉬고 나가시던데요. (웃음)” ‘창피해서’ 한번도 공개하지 않은 단편 <트로피칼리아>를 영화아카데미에 입학 포트폴리오로 제출한 건 그 직후. 알고 보니, 행복한 도피처였다.

현재 촬영 중인 장편 <짐승의 끝>에서도 관객은 <남매의 집>처럼 ‘한계상황’에 던져진 주인공의 반응을 지켜봐야 한다. 무모하고 위험한 실험이지만,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와해시켜보고 싶은” 그에게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흔히 캐나다의 연쇄살인범은 신기한 놈이고, 한국의 연쇄살인범은 천하에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 윤리적 행동은 없고 도덕적 해석만이 있는 거죠. 도덕과 윤리는 포장이에요. 얄팍하고 비겁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태도만은 바뀌었다. “전엔 재밌으면 됐는데, 장편을 찍다 보니 극을 만든다는 것이 신성한 일이구나. 울림을 만들려면 먼저 진실해야겠구나 싶어요.” 도덕의 가면을 벗겨내려면 또 다른 윤리가 필요하다는 걸 체감한 걸까. 그의 입가엔 자그마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추천사 ★ 박기용 <낙타(들)> 감독, 시네마디지털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입학 때 포트폴리오를 봤는데 흥미롭긴 했으나 조악했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있었다. <남매의 집>이 보여주듯이 독창적인 영화를 만든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사람 자체가 유니크한 면도 있다. 혹시 <짐승의 끝> 시나리오를 봤나. 보면 안다. 썩 좋은 여건은 아니지만 <남매의 집>보다는 제작비, 촬영기간 등이 늘었기 때문에 장편에 또 다른 기대를 걸고 있다. 질문을 하면 원하는 대답을 얻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선생으로선 괴로웠지만 대단한 재능을 지닌 창작자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