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9]
2001-12-14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제 8장 접신의 경지

엑스트라도 똑같은 세상의 중심! 2001년 11월1일 날씨 맑음.

다시 양수리 세트장으로 들어왔다. 이날은 낮에 준비를 거쳐서 밤 촬영이 이어졌다.

장면 #123 기생집 일지춘

(김옥균, 개화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장승업과 인사를 한다)

김병문 (나가면서) “아니, 오원 아닌가?” (김옥균을 돌아보며) 오원 장승업이라는 화가입니다. (승업에게) 인사드리게, 수구파들이 이름 석자만 들어도 오금을 못 펴는 고균 김옥균 선생일세.”

김옥균 “정신없이 살다보니 오원 그림 하나 감상할 여가가 없었구먼. 마음 편한 세상이 오면 그림 한점 부탁드리겠소.”

이 장면은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그리고 안성기 선배의 세션을 보는 것 같았다. 우선 이 일지춘이라는 기생집의 맨 왼편에 있는 정원에 김옥균을 둘러싸고 대화가 벌어지고, 그 옆의 기생집은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방문을 통해 세개의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방문 프레임은 세개로 쪼개져 있지만, 공간은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의 이동과 인물의 이동은 하나의 흐름을 가져야만 했다. 김옥균과 그의 일행은 기생집 맨 왼편 정원에 서서 담소를 하고 있고, 장승업은 여기에 들렀다가 오른편에서 인사를 하기 위해 가로질러 온다. 임권택 감독은 먼저 공간을 설정한 다음에 숏을 쪼갰다. 그 다음에 카메라의 움직임을 정하고, 그것과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 상태에서 연기자들에게 연기동선을 지도하였다. 임권택 감독 영화의 원칙. 구석에 서 있는 엑스트라일지라도 그의 연기 동선은 그를 주인공으로 세상의 중심에 놓고 움직여라. 그들은 주인공을 보조하기 위해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 세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은 엑스트라들에게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가르쳐주고, 자세한 연기동선은 그 인물에 맞게 알아서 움직여보라고 했다. 인물들은 대사 연습을 한 이후 자기 느낌대로 동선을 설정해보았다. 그때 안성기 선배가 일일이 그 인물들의 그룹 안에서의 연기 동선의 자세한 디테일을 설명해주었다(심지어 혹시나 할지도 모르는 실수에 대한 대비책까지 일러주었다). 이 장면에서 김옥균 역을 하는 연기자가 <취화선> 연출부 중 한명이었는데, 긴장한 나머지 오후 내내 사람들과 말도 안 하고 대사만 열심히 외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 그대로 대사를 외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걸 풀어주는 사람은 안성기 선배였다. 그는 일일이 엑스트라들에게 언제 웃어야 할지, 말하는 동안 언제 움직이기 시작해야 하는지를 대답해주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김옥균이지만, 실제로 이들의 연기 동선을 끌고 가는 것은 김병문 역의 안성기 선배이다. 그의 대부분의 액션은 이들의 연기 동선의 사인이다. 임권택 감독은 그 신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 원하는 미장센의 중심 동선을 움직이는 배우에게만 설명해주었다. 나머지는 그 동선에 따라서 알아서 움직이라고 했다. 그러고나면 정일성 촬영감독의 차례이다. 세부 디테일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일일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에야 비로소 임권택 감독은 비디오 모니터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오케이 여부만을 내리고 있었다.

“비디오 모니터가 들어와서 내 영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단지 카메라 이동이나 앵글이며, 그런 것들은 촬영감독과 의논해서 하는 것인데, 픽스 카메라야 그 안에서 그냥 보면 되는 것이고, 그러나 팬이나 이동을 하면 그 미세한 차이를 볼 수 있으니, 그런 경우는 필요하지요.”

그러면 <취화선>은 감독님 영화 중에서 첫 번째로 아비드 편집을 하고 있는 중인데, 아비드의 선택은 어떤 이유인지요.

“나야말로 수많은 시행착오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아비드는 그런 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이를테면 꽃에서 꽃으로 오버랩을 하는 경우 두자가 좋으냐, 세자가 좋으냐 하는 건 알 수 있죠. 그러나 그 대상에 대한 미세한 편차랄까, 그 오차의 폭을 줄여줄 수 있는 역할이 있죠. 아마도 그 영향은 내가 편하다기보다는 젊은 스탭들이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웃음)(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여러 명이 움직이면 항상 동작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긴다. 엑스트라들은 인형이 아니다! 그런 경우에 항상 임권택 감독은 사운드를 사인으로 삼았다. 대사 중의 단어나 아니면 웃음소리이거나(그것도 시작할 때일지 아니면 그것이 끝날 때일지를 미세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아니면 주변에서 그런 있음직한 소리를 만들어서 그걸 신호로 삼았다. 대부분 인물을 흐트려놓은 상태에서 서운드를 기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방법을 취했다. 모두 다섯숏으로 찍었는데, 당연히 홀수로 몰아서 찍은 다음 짝수 촬영을 했다. 일찍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이제까지 찍은 전체를 사운드까지 넣은 상태에서 시사가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러시 시사, “정말 아름다운 영화구나” 2001년 11월2일 흐리다 갬

오전에는 대체로 흐렸지만, 오후에 햇빛이 남. 아침 8시에 예정대로 시사가 있었다. 박순덕 편집기사와 컴퓨터그래픽 팀도 도착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도 시사실에 왔다. 도올 선생은 이 영화의 대사와 자막을 고치는 중이다. 김선두 선생의 지인들인 화가들도 여러 분이 왔다. 가편집된 상태의 영화는 모두 1시간46분 분량이었다. 아직도 30%를 더 찍어야 하기 때문에(감독님 말로는 이 영화는 가능하면 2시간 내에 끝내려고 하는데 어쩌면 조금 넘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아마도 오늘 내가 본 중에는 최종판에서 잘려나가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평을 쓰면 안 된다(우선 이 영화가 최종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업중인 영화는 언제든지 편집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천기누설을 해서 여러분들이 즐겨야 할 기쁨을 가로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두 가지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영화관 화면만큼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시사실에서 보았는데, 유랑길을 떠나는 장승업이 그 풍경 안에서 걸어가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내가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넣은 산수화 안으로 걸어들어간 것이 아닐까, 라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나는 <타이타닉>을 보면서도 컴퓨터그래픽이 너무 보인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사람이다). 이 장면들은 정말 한국의 풍경 속에서 얻어낸 창조의 순간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장승업에 대한 기존 해석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으로써 <취화선>은 거기서 자기의 정체성을 얻어내려는 것 같았다. 감독님 말로는 아직 “진짜를 찍지 않았지요. 그걸 기다리는 중이오. 눈이 내리고 겨울이 오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요. 동학혁명이 벌어지고, 거기에 휘말리면서 장승업이 깨치는 대목에 이르면 이 영화는 진짜가 될 거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오후에는 모브신을 찍었는데, 나는 이미 촬영한 대목들과 내가 기록한 부분들을 텅 빈 진홍의 집에서 다시 비교해서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몇 가지 내가 잘못 그린 것을 발견했다(어쩌면 보충촬영한 것을 내가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착오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 임권택 감독은 수시로 보충촬영을 한다). 편집실은 마법사의 방이다. 이번에 돌아가면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도미니크 빌랭의 <영화에서의 몽타주>를 읽어볼 생각이다. 에이젠슈테인이 거의 생의 말년에 한 충고. “몽타주는 붙이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어떻게 떼내느냐는 결정에 있다. 그 사이에 창조하는 상상이 있다.”

임 감독이 현장에 일찍 오는 까닭 2001년 11월4일. 날씨 맑음.

이제는 아침 공기가 코끝이 시릴 만큼 차다. 초가지붕에는 서리가 내려앉았다. 마치 눈처럼 하얗게 내린 초가지붕 위의 서리가 잠시 뒤 햇빛을 맞고 녹으면서 수증기처럼 세트장의 지붕들이 일제히 김을 내뿜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 특히 초가지붕을 타고 오르는 서리의 김들은 참으로 정겹다. 감독님은 언제나처럼 이미 세트장에 올라오셔서 이리저리 걷고 계셨다. 날씨도 차고 해서 감독님 뒤를 그냥 무심코 따라 걸었다. 그러자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현장에 일찍 오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아요? 우선 현장에서는 내가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오늘 찍을 장면의 장소와 내가 친해져야 하기 때문이오. 내가 이 장소가 어색하면 이야기가 다 어색한 거요. 그리고 거기서 시나리오를 다시 생각해보는 거요. 그래서 자꾸만 고쳐보는 거요. 영화는 어떻게 해도 시나리오처럼 찍을 수는 없는 거요. 그게 어차피 뻔한 거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고, 처음에는 머리로 컷을 나눠보는 거요. 그런 다음에 장소에 와서 콘티를 짜보고 통하겠구나, 아니면 이건 안 통하겠구나, 를 생각해보는 거요. 그리고 촬영하는 날 다시 보는 거요. 거기서 만일 나눈 컷을 다시 어떻게 하면 합칠까를 고민하는 거요. 자꾸 나눠봐야 합칠 수 있으면 뭐 하러 나누겠소.”(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참, 이건 설명이 안 되지"2001년 11월5일. 비

내내 비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하루종일 반복함.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비가 오면 현장은 참 힘들다. 게다가 그게 초겨울 날씨면 더욱 그렇다. 오늘은 장승업이 이응헌의 집에서 나와 주막에서 술에 취한 채 춘화첩을 베끼면서 망가진 채 살아가던 시절의 모습이다.

장면 # 39∼40 주막

오천선, 품 안에서 춘화첩을 꺼내 장승업에게 들이민다. 혜원, 단원 등의 춘화를 거친 솜씨로 모사한 춘화첩. 다양한 체위로 춘사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이 빼곡하다.

오천석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같은 당대 일류의 화사들도 다 이런 걸 그렸다네.”

승업 (한장 보다가 탁 덮으며) “나도 일류 화사가 되면 그때나 그리겠소.”

오천석 “무슨 소린가? 없어서 못 파는 그림들인데, 돈 되는 걸 안 그리겠다면 이 주막집서 밥 먹고 술 퍼마시고 지낸 건 언제 다 갚으려고? 이제 이 따위 중국그림 모사한 거는 한물갔다고.”

승업 “….”

오천석 (방문을 열며) “요년아, 얼른 들어오너라.”

여자, 하나 들어온다.

오천석 “허우대만 멀쩡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방충이여, 뭘 알아야 맛을 내지. 이년아 요번에 그림 잘 나오고 말고는 다 너한테 달렸다. 확실하게 모셔라.”

(오천석, 잽싸게 방을 나선다. 어리벙벙한 승업에게 교태를 부리며 다가오는 여자)

여자 “처음인가봐.… 왜 이렇게 떨어요?”

이 장면에서 장승업이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은 밤에 따로 찍었다. 이 정사장면을 제외하고 신 39와 신 40을 하나로 만들어서 찍었다. 신 39는 여자를 소개하는 장면이고, 신 40은 주막집 딸인 여섯살 초랑이가 그 장면을 엿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비가 내리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비가 오는 기분을 내기 위해서 비가 오고 있는데도 인공비를 뿌렸다. 신 39와 신 40이 시간 경과가 있기는 하지만 장소의 경제성으로 한번에 모두 찍었다. 이 장면은 카메라의 위치를 15번 바꾸면서 나눠 찍었다. 방 안에서 춘화첩을 펼쳐보이는 장면은 아직 춘화첩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뒤로 미루고 숏 4부터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은 별도로 마스터숏을 찍지 않지만, 그러나 항상 그 신의 앞부분에서 마스터숏 기능을 하는 숏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는 항상 그 숏을 앞부분에 포함시킨다. 그 다음에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람의 위치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카메라의 위치이다. 그래서 그 화면 안에서 사람이 위치를 바꾸면 카메라가 멈춰 서서 마스터숏의 기능을 하면서 그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이 장면에서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를 지낸 감독들이 신의 경지(!)라고 부르던 대목이 펼쳐진다. 사람이 여러 명인데 상상선을 틀 수 없는 숏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 생겨난다. 이 순간 결국 어기든지 아니면 아무리 화면이 빈곤해도 그냥 가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장 르누아르의 이야기. “카메라의 각도를 바꿀 수 없으면 파르테논신전의 법칙을 이용하라.”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는 대신 앉아 있는 사람의 방향을 틀어서 이미 이전 숏 안에서 결정된 인물의 각도를 마치 옆으로 틀어서 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만들어냈다. 카메라를 옮기는 데 한계가 있으면, 그 대신 사람을 틀어버리는 것이다. 영화는 건축이 아니라 어느 각도에서 보는 프레임인 것이다. 그 프레임의 시선 위치를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따라 입방체라는 착각을 주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장승업과 오천석, 그리고 불러온 여자의 대목은 (설명하면 다소 복잡해지기는 한데, 간단하게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영화적으로는 한 방에서 벌어지는 숏이지만, 실제로는 두개의 방에서 보기 좋은 각도로 다시 설정하여 연출하였다. (정일성 촬영감독에게 이런 장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나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참, 이건 설명이 안 되지. 자기가 해보지 않으면. 젊은 감독들은 이런 장면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봐야지요. 왜냐하면 머리로는 될 것 같은데 실제로 편집실에 가서 붙여보면 안 붙는 거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더 찍어야 하는 장면과 건너가는 장면을 뭘로 정하냐는 거예요. 이럴 때는 눈앞에 보이는 실제 공간을 빨리 잊어버리고, 그냥 몰입해서 이미 완성된 영화의 가상 공간으로 들어와서 나눠가기 시작해야 해요. 그래서 방향을 바꿀 때에도 내가 실제로 서 있는 장소가 아니라 영화 안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의 관객의 위치에 가서 서서 그 자리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게 되면 아, 이제는 영화라는 장르를 내가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다룰 수 있게 되었구나, 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단순하다. 쿨레쇼프 효과이다. 그러나 모든 방을 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옮기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거리와 각도, 그리고 소도구, 여기에 인물의 위치가 문제를 만든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신에는 카메라의 불가능한 위치가 존재한다(영화를 보고 있으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방에서 도대체 어떻게 저 위치에서 촬영이 가능한 것일까?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처럼 영화는 불편한 예술이다). 장승업이 머무는 주막 방의 세트 한쪽 벽을 뜯어내고 촬영한 것이다(이 오픈 세트의 모든 방은 한쪽 벽을 뜯어낼 수 있게 처음부터 지어졌다. 그건 대부분의 세트가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의 세트는 박스형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니까 이 신은 실재적인 위치에서 찍은 숏과 불가능한 위치에서 찍은 숏(벽을 뜯어내고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자리)과 다른 방에서 그 방이라고 가정하고 찍은 상상적인 위치의 숏이 한 신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공간은 카메라의 프레임이 안에 있는냐와 바깥에서 방문을 걸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턱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세 가지 위치의 카메라와 서로 다른 두개의 프레임이 있는 셈이다. 그 사이에서 영화의 화면은 장승업을 중심에 놓고 계속해서 180도 선을 그어서 넘기고 넘겨받는 방법으로 찍었다(오즈의 360도 공간이나, 브레송의 45도 위치나, 브뉘엘의 아래로부터 75cm 규칙만큼이나 이것은 내게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이중 숏 9와 숏 10만을 45도 나눠 찍기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180도를 기준선으로 잡아서 이동하였다. 상상적인 공간에서는 기준선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초랑이 역을 하기 위해 온 실제 나이 여섯살의 다빈이는 참 영리한 아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영리해도 여섯살 아이가 영화 메커니즘을 이해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오늘 다빈이는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촬영해야 한다. 임권택 감독은 비오는 날 도착해서 분장을 하고 벌벌 떨고 있는 아이를 먼저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고나서 동시녹음 마이크를 치웠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요구만을 하기 위해서인 배려 같았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테스트촬영을 하면서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빈이에게 “꼬마야, 카메라랑 눈 마주치면 눈 나빠지니까 조심해요”라고 일러주었다(물론 어린 다빈이가 일순간 혹시라도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지 않게끔 하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다빈이가 그 말을 정말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임권택 감독은 다빈이 옆에 앉아서 장면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모두 지시해주었다. 그리고는 다빈이의 장면은 모두 숏으로 쪼개면서 거의 정지동작에 가까운 연기만을 시켰다. 엔지가 나도 엔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 이거 다시 한번 더 해보자”라고 말씀하셨다. 다빈이는 공주였다! 다빈이는 대부분의 장면을 엔지없이 끝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다빈이는 엔지를 낼 만한 장면 자체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빈이는 그냥 화면을 가로질러 가거나(그런 경우는 풀숏으로 다빈이를 카메라와의 거리를 멀리 떨어트려서 디테일이 보이지 않게 수평으로 지나가게 해서 단번에 찍었다), 아니면 그냥 표정을 지어보이는 클로즈업을 찍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빈이의 숏들은 대부분 움직이는 사진들이다.

사족. 이날 밤에 장승업과 화상 오천석이 부른 여자 사이에서의 정사장면을 찍었다. 이 장면은 숏을 10개로 찍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찍어버렸다. 카메라 위치가 매번 바뀌는데도 그랬다. 신이 감정의 흐름을 요구할 때 임권택 감독은 절대로 시간을 끄는 법이 없다. 그는 정말로 연기자들이 그걸 타고 흘러갈 정도로 단숨에 해치워버렸다(이 표현이 정말 딱 어울린다). 나는 이런 장면의 순간들이 항상 놀랍게 보인다. 영화는 현실의 공간 안에서 더할나위 없이 불편하고, 제한적인 예술이다. 수많은 스탭들이 움직여야 하며, 한번 카메라가 위치를 바꿀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장비들이 이동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임권택 감독은 마치 교향악단을 이끄는 마에스트로처럼 일사불란하게 그들을 움직여서 장면을 연출한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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