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강형철 감독의 차기작은 이미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던 첫 작품의 험난한 경로는 과거사가 됐다. 800만 스코어는 신인 감독의 저력을 입증해주기에 충분했다. 왜 아니겠나.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제작사들로부터 각종 시나리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0만 들었을 때와 300만 들었을 때, 또 스코어가 더 올라갔을 때마다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이 달라지더라.” 선택의 순간, 그는 제안을 수락하는 대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고집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가 쓴 이야기가 아니면 도통 그림이 그려지질 않더라.”
<써니>는 강형철 감독이 직접 머릿속에 그린 7명 여자의 이야기다. 지금은 남편 뒷바라지하며 우아하게 살아가는 40대 전업주부. 병문안 간 곳에서 우연히 암투병 중인 옛 친구를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고교 시절과 조우한다는 내용. 문제아집단 칠공주파, ‘써니’의 일원이었던 주인공이 과거를 상기시켜줄 일곱 친구를 찾아 나서면서 이야기의 결이 살아난다. 대개 현재의 자기 삶에 급급한 채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유치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는 전제 아래 출발하는 일종의 성장드라마다. “인생의 아이러니를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과속스캔들>이 코믹으로 규정되지만, 유머 속에 강한 드라마가 존재하길 바랐던 것처럼 그런 주제의식을 이어가고 싶었다. 드라마가 주를 이루되 유머를 포진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부러 감정을 종용하거나 감동을 주려하는 대신, 과거와 현재가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서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관건은 칠공주파의 캐스팅
2010년 현재가 절반, 그 나머지는 40대 중반 주부들의 10대 시절인 1980년대 중·후반이 교차편집되는 방식이다. 80년대의 낭만을 표현한다는 점이 기대점이지만, 이미 몇년 전부터 영화 속에서 무수히 사용된 80년대 시대극이란 점에선 다소 매력이 저하되는 염려도 없지 않다. “단지 그 시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는 모두 배제하려고 한다. 플롯에 꼭 필요한 요소, 인물 동선에 꼭 필요한 시대적 장소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목표다.”
배우의 발견이 돋보였던 <과속스캔들>과 마찬가지로, 일곱 캐릭터의 차별화가 필요한 <써니> 역시 배우들의 역량이 절대적인 드라마다. 이미 <써니>의 핵심 인물인 주인공 역엔 유호정이, 고교 시절 역할로는 심은경이 캐스팅됐다. 여전히 주요 배우들을 비롯한 캐스팅 작업이 남아 있다. “현재를 연기할 일곱 배우와 더불어 그들 각자의 과거를 보여줄 10대 연기자도 필요하다. 외모의 싱크로율까지 셈해야 하니 캐스팅 작업이 만만치 않다.” 걱정 사이로, 이번에도 역시 발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배우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는 귀띔도 잊지 않는다.
전작의 스탭들이 대부분 다시 뭉친다. 깔끔한 스코어를 선보였던 김준석 음악감독도 과거 부분인 80년대를 수식할 팝송 선곡에 한창이다. 9월 크랭크인을 앞둔 지금, 강형철 감독은 “‘영화 한편 하는 게 사법 고시를 치르는 기분이다’라는 최동훈 감독의 말을 실감하는 중”이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써니>가 <과속스캔들>보다 족히 준비기간이 1년은 ‘절약’되었다는 점에 감사한다. “여자들의 드라마, 흥행에 대한 염려가 많은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고수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영화만 잘 만들면 다른 건 다 된다는 것이다. 800만 감독이라 부담되는 게 아니라, 800만 했으니 두 번째는 좀 부담을 덜어도 되지 않을까. (웃음) 지금은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다.”
내게 영감을 주는 이미지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그냥 자식 둔 평범한 여성으로 살고 있지만, 어머니 역시 한때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하며 살아갔던 시절이 있었겠지 싶었다. <써니>는 그 소박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