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윤제균] 사천왕의 눈물을 찾아서 상상력 가동 중
2010-07-29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템플 스테이>의 윤제균 감독

지난해 <씨네21>과의 신작 프로젝트 공개 당시,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의 차기작으로 해저 괴물과 인간의 사투를 그린 SF스릴러 <제7광구>의 연출을 확답했다. 인터뷰 때 그는 <제7광구>를 준비하는 한편 동시에 JK픽쳐스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 <템플 스테이>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했었다. <나 홀로 집에> 같은 어드벤처물을 기획 중인데 그건 다른 감독이 하게 될 거라고. 어느 작품이 먼저 들어갈지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두 작품 모두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몇 개월 사이 상황은 바뀌었다. 애초 자신이 연출하려던 <제7광구>는 김지훈 감독에게 넘기고, 대신 다른 감독을 물색 중이던 <템플 스테이>를 직접 연출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알려왔다. “냉정하게 따져보니 <제7광구>는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감독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템플 스테이>는 내가 잘할 수 있겠더라.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템플 스테이>는 동양 신화와 전설이 가미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다. 미국의 어린 남매가 우연히 한국의 사찰에 와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겪는 가족 어드벤처물. 수호신 사천왕은 1천년 동안 착한 일을 하면 하늘로 갈 수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999년 동안 착한 일을 해 모아온 사천왕의 눈물주머니를 사찰에 온 말썽쟁이 남매가 실수로 마시게 되면서 사천왕의 999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하는 수 없이 실수를 만회하는 가장 빠른 길로 옛날에 마녀에게 뺏긴 눈물병을 되찾기 위해 남매와 사천왕이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판타지 어드벤처물 <해리 포터>나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동양 버전 정도가 떠오른다. “실사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배열한 <쥬만지>가 가장 근접한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서양의 요괴가 나오는 것과 달리 자료는 무궁무진한데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동양의 요소들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해외 진출에 대한 회심의 프로젝트

어느 모로 보나 <템플 스테이>는 윤제균 감독의 ‘무한욕심’에서 출발하는 프로젝트다. 그간 해외 진출을 목표로 했지만 불발됐던 무수한 프로젝트들에 대한 일종의 답안을 제시하겠다는 시도다. 그래서 감독 혼자 혈혈단신 할리우드 제작사와 관계를 맺는 대신, <템플 스테이>는 100% 국내 감독과 기술진이 프로젝트를 만들고 수출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단, 미국 시장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할리우드 한국 합작 투자배급이 전제되어야 하고, 전세계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영어를 쓰는 할리우드 배우의 출연이 필수요소다. “시장을 넓혀보고 싶었다. 정말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 메이저에 가서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을 해 성공한 케이스는 프랑스의 뤽 베송 사단이 대표적이다. 그 전례를 우리도 충분히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

가족 어드벤처 장르야 할리우드에서 한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프로젝트다. 이미 판타지 장르에 일가견이 있는 할리우드 감독들과 똑같은 조건이래서야 아니될 말이다. 윤제균 감독이 생각하는 복안은 이렇다. 서구의 감독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동양사상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내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서구인들에게 트렌디하게 받아들여지는 템플 스테이를 소재로 택한 것도 그래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의 CG 기술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판타지 어드벤처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드라마에 관한 한 한국은 이미 검증된 나라다. 테크놀로지에 집중된 작품을 연출해서 우리나라가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비용대비 효과가 최고인 점을 알리고 싶다.” <해운대>로 직접 한국의 컴퓨터그래픽 수준을 경험했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할리우드 컴퓨터그래픽의 80~90%에 상응하는 수준의 완성도를, 할리우드 제작비의 1/10로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더불어 장르의 특성상 톱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점도 윤제균 감독이 판타지물을 택하게 된 이유다.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선정하되, ‘제2의 다코타 패닝’ 같은 배우를 물색한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1천만이라는 숫자 지우고 다시 시작

현재 <템플 스테이>는 시나리오 완고 상태. 한국어로 쓴 시나리오를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전문 작가를 통해서 정서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자신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코믹한 대사 대신 보편적인 드라마 대사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또 <해리 포터> 시리즈를 연출한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과 제작 파트너 마이클 바네이단이 이끄는 제작사 1492픽처스와의 협업을 약속한 상태다. 곧 할리우드쪽 투자사가 확정되면 연말까지 프리 프로덕션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쯤 크랭크인에 들어간다.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에서 함께했던 스텝들이 이번 프로젝트에도 될 수 있는 한 참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단, 이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1천만 감독 윤제균’의 타이틀은 무의미해진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새로운 모험을 하는 셈이다. “1천만 감독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운 지 오래다. 다시 신인 감독의 자세로 임할 거다.” 완벽하게 직조된 기획안을 내놓고, 윤제균 감독은 마지막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결국 상상력과의 싸움이 될 거다. 새로운 그림을 만들고 싶은 건 감독이라면 늘 꿈꾸는 이상이니 말이다.”

내게 영감을 주는 이미지

<박물관이 살아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늘 아쉬웠다. 우리도 절에 가면 사천왕, 해태 같은 상상력의 산물이 많은데 왜 그 무궁무진한 자료들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동양의 것에 근거한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동양의 것을 궁금해하는 서구인에게 동양 판타지의 세계를 선사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템플 스테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 개발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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