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손영성] 관객 여러분을 배심원으로 모십니다
2010-07-29
글 : 김용언
사진 : 최성열
<의뢰인>의 손영성 감독

시체가 사라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젊은 변호사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용의자를 수임한다. 검찰 역시 이 용의자에게 유죄를 내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확실한 물적 증거는 없다. 정황 증거만 있다. 정황 증거만으로는 무죄 입증을 하기도 어렵고 유죄 입증을 하기도 어렵다. 이제 사건을 파헤칠수록 변호사의 개인적 윤리(마치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의 그것처럼)와 공적인 당위(적법한 절차를 거쳐 올바른 판결을 끌어내야 한다) 사이에 딜레마가 생긴다.

손영성 감독의 신작 <의뢰인>은 한국에선 드문 스타일의 형식과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다. 일단 서스펜스 스릴러에 법정드라마를 배가시킴으로써 법정에서 벌어지는 검찰과 변호사의 치열한 논리공방전에 집중한다. 단지 의뢰인이 악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에 열중하는 게 아니라 좀더 메타적인 성격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변호사에게는 절차적 정의가 중요하다. 하지만 검사에겐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두 스토리텔러의 싸움이고, 이 둘의 스토리 중 어느 게 더 그럴듯한지를 타인에게 판단받아야 하며, 각자의 입장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딜레마 역시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고민이 생겨난다.” 이는 손영성 감독의 데뷔작 <약탈자들>을 보면 확연해진다. 이야기하기에 대한 욕망, 처음 영화가 시작할 때 쉽게 예상하려 드는 관객의 지평선을 훌쩍 건너뛰며 영화를 끌고 가다가 느닷없이 멈춰 세우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야심은 놀라웠다. 손영성 감독은 데뷔작을 통해 영화 구조에 있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싶었고, 영화적으로 담론 자체를 이야기하는 메타 예술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증식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이 되어버리는, 좀더 자유롭고 분방하고 끝없이 무한대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영화가 본질적으로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거리감을 두고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하려 했던” 영화를 세상을 향한 첫 번째 발화로서 내놓은 것이다.

흥미진진한 지적 두뇌게임

<의뢰인>은 물론 상업적인 목표가 뚜렷하고 장르적 성격이 분명한, 좀더 ‘단정하고 매끄러운’ 영화다. 말을 다루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약탈자들>이 공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의뢰인>은 물 자체에 관한 영화다. 인물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좀더 만질 수 있는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이 제시한 예처럼, 고의적으로 유리창을 깼는데 그 덕분에 안에 들어찬 가스가 새어나오며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전자의 행위는 죄인가 아닌가.” 여기에는 2008년 1월부터 한국 법정에서 실시된 배심원 재판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이 변수로 등장한다. 어떤 사건을 둘러싼 서사 싸움을 관전하는 배심원들은 마치 스크린 위 환영에 매혹된 관객처럼, 어느 쪽의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고 옳게 들리는가를 판단하여 판결을 내리게 된다. 판사가 이 판결을 꼭 따를 이유는 없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상식의 궤와 타인의 경험치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욕망이 발동하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의뢰인>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지적 두뇌 게임이 될 것이다. 130페이지가 꽉꽉 채워진 이춘형 작가의 시나리오(“원작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를 2시간짜리 분량에 맞게 100페이지 정도로 손질하면서, 캐릭터의 감정선은 좀더 촘촘하게 세공됐고 호흡은 빨라졌으며 서스펜스는 배가됐다. 현재 손영성 감독은 <어 퓨 굿맨>이나 <프라이멀 피어> <12명의 성난 사람들> 등 할리우드 법정영화를 연구하며 언어적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는 법정드라마의 영화적 전략을 다듬고 그에 더해 정서적 반응의 가능한 조합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중이다. 청년필름에서 제작하고 쇼박스가 투자하는 <의뢰인>은 10월 크랭크인하여 내년 상반기 개봉을 준비 중이다.

내게 영감을 주는 이미지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베르제르 바>. 화면 중앙의 여자처럼, <의뢰인>의 주인공 변호사가 서 있고 그 뒤로 비치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풍경 와중에 고민에 빠진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거울에 비친 그들이 실재일 수도 있고 환영일 수도 있다. 변호사가 처한 입장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이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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