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통했지, 서로가 가진 모든 요소들이
2010-09-02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윤성호 감독 vs ‘9와 숫자들’의 송재경
왼쪽부터 송재경, 윤성호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말해주세요. 그대도 저를 좋아하신다고~.” 신스팝과 복고가 가미된 그룹 ‘9와 숫자들’의 음악은 시트콤의 분위기를 규정해줄 엔딩 타이틀곡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예상외의 화학작용에 대해 윤성호 감독과 ‘9와 숫자들’의 리더이자 보컬 송재경이 진단했다.

윤성호 공연할 때 찾아뵈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됐다.

송재경 난 트위터로 감독님을 팔로우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감독님의 생활은 접하고 있었다. (웃음)

윤성호 나도 노래로는 애틋하다. 여자친구 처음 사귈 때 ‘9와 숫자들’의 노래 <이것이 사랑이라면>을 불러주곤 했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난 숨이 멎어버렸죠~.’

송재경 사실 처음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 우리 노래 <말해주세요>를 사용한다고 했을 때 그러려니 했다. 인디밴드한테 워낙 영화 공부하는 사람이나 뮤직비디오 만드는 사람들이 ‘곡 좀 쓰자’는 제안을 많이 해온다. 내가 직접 음악 작업을 하는 노동이 투여된다면 면밀하게 보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깊이 관여하지 않게 된다.

윤성호 티어라이너와 친분이 있는데 마침 어느 날 ‘9와 숫자들’ 음반을 선물해줬다. 사람 심리가 그렇지 않나. 괜히 선물로 받은 건 더 안 듣게 된다. 그러다 우리 시트콤 편집하고 음악도 선곡해주는 친구가 <말해주세요>를 흥얼거리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 뭐냐 했더니, ‘9와 숫자들’ 음악이라고. 그래서 바로 음악을 입혀보니 시트콤이 갑자기 80, 90년대 최수종, 하희라 나오는 드라마 분위기를 띠더라. 영화의 말초적인 개그와 저렴한 화면이 왠지 싱그럽고 애틋한 느낌을 얻은 기분이었다.

송재경 우리 밴드 중 한명이 윤성호 감독 광팬이다. 그 친구가 감독님을 ‘인디신의 스타’라며 설명해주더라. 알고 보니 나만 감독님을 모르고 있더라. 에피소드 1편이 터지는 걸 보면서, 하길 잘했다. 안 하겠다고 튕겼으면 무지 후회했겠다 싶었다. 이번 앨범 만들 때, 아까 말씀한 최수종, 하희라 시절의 감성에, 지금의 발전된 음향기술을 조합한 21세기 하이퀄리티 음악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결과는 20세기 초반에 그친 기분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영상을 만나니까 그런 부족한 부분이 상쇄되는 효과가 생기더라.

윤성호 이번엔 <9와 숫자들>에 신세를 졌지만, 이전에도 난 인디음악에 굉장히 빚을 많이 진 사람이다. 영상원에서 작업하거나 단편 만들 때부터 아마추어 증폭기나 뇌태풍, 캐비넷 싱얼롱즈 등 밴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전엔 음악하는 사람들은 따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음악이 모든 예술 매체의 정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로는 두 시간 할 것도 음악으로는 몇분 안에 표현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난 음악하는 사람에 대한 묘한 외경이 있다. 고맙게도 내가 로파이한 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로파이 음악하는 분과 교류가 생겼다.

송재경 이번 앨범은 내 20대의 농축액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때 이걸 영상으로 남겨보자는 생각도 했었다. 모든 노래를 모아 한편의 시나리오로 구성하는 거다. 노래마다 계속 연인이 바뀌는 연애 이야기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나긴 했다.

윤성호 나도 써놓고 완결을 맺지 못한 트리트먼트가 있는데 이 음반과 분위기가 잘 맞는다. 곁들여 다른 인디밴드의 음악과 재경씨가 또 따로 활동 중인 그룹 ‘그림자 궁전’의 60, 70년대풍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섞어서 공유한다면 지금 시대의 평범한 사랑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로파이하면서도 2000년대 대한민국을 산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내겐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홀>에서 재즈와 서사의 만남이라든가, <500일의 썸머>의 벨 앤드 세바스천류의 말랑말랑한 음악이 아기자기한 연애감정을 표현한 것이 모범적인 답안이다.

송재경 일전에 <회오리 바람> 연출한 장건재 감독 작품의 음악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인디 무브먼트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인디음악도 힘들지만, 인디영화는 더 힘들다 싶었다. 같은 독립예술 장르지만 영화와 음악은 생리부터 달랐다. 음악은 개인적이고 사소할 수 있지만, 영화는 훨씬 조직적인 일이더라.

윤성호 난 예전엔 인디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디밴드와 모여서 어울리기만 했지. 그런데 영화하면 할수록 음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싶더라. 홍상수 감독 영화의 건조한 유머는 정용진 음악감독과 파트너십을 이루면서 더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은하해방전선> 개봉하고 나서 블로그나 미니 홈페이지의 리뷰를 많이 봤는데 공교롭게도 다들 배경음악을 토이의 <뜨거운 안녕>으로 설정해놨더라. 그렇게 하나의 음악으로 이 영화가 수렴되는 게 신기했다.

송재경 난 보톰업(bottom-up) 방식의 작업을 추구하는 편인데 이번의 만남 역시 그렇게 발전할 여지가 생긴 것 같다. 대규모의 작품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위에서 내려오는 톱다운 방식과 정반대다. 서로가 가진 모든 요소가 뚫려 있어서 통하는 느낌. 최종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관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형태가 중요하다. 이런 방식을 통해 하다보면 옹골진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윤성호 다행이다. 처음엔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특히 인디밴드 음악은 무상으로 쓸 수 있다는 개념이 싫어서 연출비, 개런티, 식비, 음악비용 모두 지불했는데, <말해주세요>를 제작 예산 다 쓴 상황에서 발견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신세를 지게 됐다. 공짜로 쓴 거다.

송재경 인디란 이름이 붙어 있으면 보통 ‘그냥 쓰라’고 한다. 어차피 받아도 경제적 혜택은 미미하다. 그 작은 부분에 대해서 굳이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지 않다. 물론 대기업에서 제작하는 무언가에 내 음악을 쓴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윤성호 마침 상업영화쪽에서 작업을 제안받았는데, 그때도 음악을 부탁드리고 싶다. 나랑 감수성이 잘 통한다 싶다. 그땐 제대로 사용료 지불하겠다.

송재경 언제든 좋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데 그걸 함께 먹으면서 논의하는 것도 보톰업 방식이 될 것 같다.

윤성호 나도 냉면 무척 좋아한다. 관련해서 시나리오가 있는데 먹으면서 그럼 내 이야기 한번 들어봐달라.

<대표작>

윤성호
<은하해방전선>(2007)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

송재경
<<그림자 궁전>>(2007) <<9와 숫자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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