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모의 눈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구석이 있다. 최근 그와 함께했던 감독들이 하나같이 그를 비극의 중심에 놓은 것도 그런 눈이 작용한 결과다. <사랑>(2007)의 곽경택 감독은 “우직하지만 열성적인 느낌의 눈이 순애보에 어울린다”고 말했고, <쌍화점>(2008)의 유하 감독은 “주진모의 눈이 고려 왕이 가졌을 법한 눈과 비슷해서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덕분에(?) 그는 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가슴을 졸이고, 상처를 받고, 죽음을 선택하거나(<사랑>) 죽임을 당해야 했다(<쌍화점>). <무적자>의 송해성 감독 역시 ‘주진모의 눈이라면 동생을 향한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계획했던 배우 대신 그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꿀꿀하고 어두운 친구다.” <무적자>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든 김혁에 대한 주진모의 첫인상이다. 북에 동생 김철(김강우)과 어머니를 두고 탈북한 김혁은 북 특수부대 동료였던 영춘(송승헌)과 함께 부산 마약밀매조직에서 활동한다. 어느 날 동생이 탈북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가지만 형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동생의 깊은 분노만 확인한다. 이후 부하 태민(조한선)에게 배신당하면서 이국 땅에서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3년 뒤 부산으로 돌아온 김혁은 형사가 된 동생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대리운전기사로 새 출발한다. 원작인 <영웅본색>과 비교하자면 적룡이 맡은 역할이다. “(원작의) 영향을 받을까봐 일부러 <영웅본색>을 찾아보지 않았다. <영웅본색> 하면 형 적룡과 동생 장국영이 싸우는 장면과 바바리코트를 입은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모습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팬들의 시선은 원작, 적룡과의 비교에 쏠려 있을 것이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는 게 리메이크작의 숙명이다. 그런 부담감조차 느끼지 못하면 앞으로 영화를 어떻게 하겠는가. <무적자>는 욕먹을 각오하고 도전한 작품이다.”
김혁은 친동생인 김철, “친형제나 마찬가지”인 영춘, 한때 부하였던 태민 모두에게 형이자 극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기도 했다. 대사 한마디 없더라도 김혁은 인물들 사이에서 항상 존재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단순한 감정이었지만 현장에서 주진모의 머리는 제법 복잡했다. 평범한 사무실 장면에서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서 있는 게 맞는지’, ‘시선은 누구를 향해 있어야 하는지’ 등 온통 고민투성이였다. 그러면서 주진모는 연출자의 마음을 알아갔다. “<무적자> 전에는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사나 행동만 숙지했고, 현장에서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했다. 이번에는 현장 분위기와 인물의 감정선에 따라 수시로 감독님과 함께 고쳐나갔다. 배우로서 또 하나 배웠다.”
늘 그랬듯이 배우로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지만 늘어가는 나이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했다. “절친인 장동건이라는 배우가 올해 결혼하면서 정말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총각 배우끼리 자주 어울렸는데 한명씩 제 짝을 찾아가면서 나도 이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말 외롭다.” 오랜 낚시 생활로 갈고닦은 요리 실력(초창기에는 라면 수프로 간을 냈지만 이제는 천연 재료만 쓴다), 웬만한 주부 저리 가라 하는 손빨래 실력, 매일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청소 실력 등 가정주부 삼박자를 전부 갖춘 일등 신랑감인데 그는 오랫동안 혼자다. “그러게.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 보면 나도 모르게 외로움을 즐기고 있는지도…. 혼자 있으면서 했던 고민이 연기할 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더라고. (웃음)” 외로운 남자 주진모의 다음 선택은 혹시… 멜…? “인기가 없는 배우인가보다. 시나리오가 많이 안 들어온다. 다만 차기작은 따뜻한 멜로를 하고 싶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