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쌍권총을 쏘아대던 <영웅본색>의 주윤발. 그는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무적자>에서 주윤발이 연기한 소마는 송승헌이 연기하는 리영춘으로 바뀌었다. 송승헌은 주윤발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기대는 캐스팅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흘러 넘쳤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고, <가을동화> <여름향기>로 한류스타가 된 송승헌을 사람들은 ‘배우’가 아닌 ‘스타’로 바라봤으니 말이다. 게다가 원작이 워낙에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보니 송해성 감독도 이렇게 얘기했단다. “우리는 못하면 욕먹고 잘해야 본전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찍는 수밖에. “주윤발이 너무 큰 산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주윤발보다 내가 연기를 더 잘해야지, 주윤발을 뛰어넘어야지 생각한 적은 없다. 내가 연기하면 또 다른 색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기했다.”
<무적자>의 영춘은 그가 드라마 <에덴의 동쪽>과 영화 <숙명>에서 연기한 인물들처럼 “이른바 남자 냄새 나는 조금은 거친 캐릭터”다. “사람들은 나를 자상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많이 기억한다. 내가 꼭 그런 캐릭터만 연기한 건 아닌데 이미지가 강하게 굳은 것 같았다. 나이 서른이 넘어갈 즈음에 의도적으로 남자다운 캐릭터를 선택하기도 했다.” <무적자>에서 송승헌은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나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캐릭터를 피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발 벗어나 맘껏 뛰놀 수 있는 캐릭터인 영춘이 좋았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신나게, 가장 통쾌하게 촬영한 작품 같다.”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무적자>는 신나고 통쾌하게 촬영한 작품이라기보다 가장 공들여서 힘들게 찍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송승헌과 송해성 감독은 11년 전 <카라>에서 만났다. <카라>로 영화 데뷔한 송승헌과 <카라>로 입봉한 송해성 감독은 당시 “쓴맛”을 봐야 했다. “감독님이 그랬다. 우리가 십년 전의 너와 내가 아니니 이번엔 제대로 복수전 한번 해보자고. 그래서인지 좋은 말을 해주기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하셨다.” 그가 <무적자>로 인터뷰를 하며 빼놓지 않고 말했던 일화가 있다. 건달로 잘나가던 영춘은 혁의 복수를 하다 다리를 다친다. 3년 뒤 영춘은 한쪽 다리를 절며 끝없이 추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촬영에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모든 게 마음에 안 든다고 20여일 촬영을 미루자더라. 분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너의 눈빛, 속마음까지 다 바꿔야 한다고. 최민식 선배, 설경구 선배는 구질구질한 역할 맡으면 평소에도 그러고 산다면서 나도 그렇게 살랬다. 씻지도 말고 로션도 바르지 말고 매일 술 마시고 담배 피워서 망가진 너를 만들라고. 솔직히 그동안은 분장을 하고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면서 그런 모습을 표현했다. 처음엔 감독님의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감독님의 마음을 충분히 알겠더라.”
송승헌은 <무적자> 이후 패트릭 스웨이지, 데미 무어 주연의 <사랑과 영혼>을 리메이크한 한·일 합작영화 <사랑과 영혼>을 찍었다. 현재는 김태희와 함께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를 준비 중이다. “하고 싶은 작품을 세번 연달아 했”기에 이번엔 “팬들이 원하는 송승헌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선택이다. <사랑과 영혼> <마이 프린세스> 모두 올해 하반기 상영·방영될 예정이다. 송승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멋지게 나이 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단다. “언제까지나 내가 청춘스타일 수 없다는 걸 안다. 그걸 인정하면서 어떻게 멋있게 나이 들 수 있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만큼 좋은 가정을 꾸리고도 싶다. 지금이 배우로서도, 한 남자로서도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