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1세기 인터넷 영웅의 탄생기 [2]
2010-11-1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

모든 영웅 탄생에는 신화가 있다. 대개 그것은 승리자를 중심으로 한 신화다. 다만 그 승리의 마지막까지 동참하지 못했거나 그 주변에 머무른 자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야기는 종종 달라진다. 여기엔 피하지 못한 갈등과 의문스러운 배신 혹은 주장하기에 따라서는 정당치 못한 약탈이 자리할 것이다. 말을 바꾸어야겠다. 모든 영웅 탄생에는 신화가 있다. 불미스러운 일 없이 완성된 영웅 탄생의 신화가 적을 뿐이다. 승리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패배했거나 뒤처진 자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가 지금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모았을 때 하나같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더 관건이다. 어떤 영웅 탄생의 신화는 그것에 온전하고 완벽한 찬미를 보낼 수 없을 만큼 불미스럽고 불명료한 경우여서 더 흥미로울 수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가장 젊은 억만장자의 실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의 창업에 얽힌 이야기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을 때 이것이 인터넷 시대의 그러한 영웅담으로 보인다(만약 당신에게 페이스북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다면 그냥 요즘 식으로 말해 인터넷에 그 철자를 두드리기만 해도 된다). 기껏해야 이제 26살 젊은이를 두고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공부 좀 잘하는 하버드생에서 서른이 되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들의 서열에 별안간 이름을 올리고 전세계 5억명의 페이스북 가입자를 거느리면서 인터넷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창업 뒷이야기는 흥미롭다. 영화는 마크 저커버그와 관련된 실제 일화들을 상당수 그대로 쓰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영화가 영화 자체로 전개될 수 있도록 허구적 이야기들을 첨부하고 있다. 오프닝신부터 아주 인상적이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와 그의 여자 친구 에리카(루니 마라)가 잡담을 나누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잡담처럼 보였는데 조금 의견 차이가 보이다가 그 정도가 아니라 말다툼으로 번지더니 마크가 에리카에게 주워담을 수 없는 감정의 상처까지 입히는 지경에 이른다. 그 결과 마크는 에리카에게 그 자리에서 차인다.

오프닝신의 대화를 근거로 보자면 영화는 적어도 주인공 마크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이 장면에서 알려준다. 그는 천재인 것 같고 동시에 철부지다. 그런 그가 여자친구에게 차인 다음 무슨 짓을 하게 될 것인가. 그는 여자친구의 사소한 신상을 블로그에 떠벌리고 그것도 모자라 홧김에 하버드 여학생의 모든 자료를 해킹한 다음 ‘페이스 매시’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미모 대항전을 펼친다. 누가 누구보다 더 섹시한가, (한국의 ‘이상형 월드컵’과 비슷한) 프로그램이다. 이 철없는 천재 짓으로 그는 학교에서 벌칙을 받지만 한편 주목도 받게 된다. 하버드에서도 상위층에 속하는 윙클보스 형제가 그에게 일명 하버드 커넥션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마크는 동참할 것처럼 하더니 거절한다. 그러고는 친구인 에두아르도(앤드루 가필드)의 종잣돈으로 그가 제안받은 아이디어와 유사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확장한 페이스북을 만든다. 영화는 여기서 갑자기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다.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 그는 냅스터의 창립자다. 마크와 숀이 만나 제대로 된 사업을 번창시키자 에두아르도는 내쳐진다. 분노한 그가 마크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때마침 윙클보스 형제도 마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영화의 초반이 페이스북의 시작에 할애된다면 이후는 이 세 부류의 진실 공방전을 플래시백의 교차로 보여준다.

여자친구 때문에 만든 페이스북?

우선 천재 마크에 관한 한, 주연배우 제시 아이젠버그가 기존의 그의 전작에서 보여준 인상이 이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반대로 그 덕분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드벤쳐 랜드>와 <좀비랜드>(두편 다 국내 개봉하지 않고 DVD로 직행했으나 두 영화 중 <어드벤쳐 랜드>는 최근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청춘물 중 가장 엉뚱한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에 속한다)에서 제시 아이젠버그는 3일 내내 마운틴 듀를 옆에 끼고 컴퓨터 게임에 매진하는 녀석이거나(<좀비랜드>), 첫 장면에서부터 여자친구에게 차이는 별 볼일없는 녀석(<어드벤처 랜드>)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냥 컴퓨터 얼간이(Computer nerd)가 아니라 하버드의 컴퓨터 천재가 되어 돌아왔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그에게서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세대를 대표할 만한 인상을 본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방이 아니라 인상이어야 했다”는 데이비드 핀처의 말은 이 점에서 경청할 만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상할 정도로 이 영화에 파티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또한 공들여 찍었다는 데 있다. 이 파티 장면은 계층과 계열을 나누고 묶는 사회적 망을 가리킨다. 영화는 마크와 그 친구들의 파티를 한편으로는 얼간이들의 파티처럼, 그러니까 꼭 주드 애파토우 사단의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파티처럼 그리지만 한편으론 마치 20세기 초의 보헤미안 혹은 자유주의자의 활기찬 난장처럼 보이게도 그렸다. 제작진이 마크와 그의 동료들을 향해 “무정부주의자”(각본가 아론 소킨), “아웃사이더 그래피티 아티스트”(데이비드 핀처)라고 지칭한 것을 감안하면, 기존의 상위층 패거리주의에 반항하는 의미로서 페이스북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쪽에 힘을 싣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서 물랭루주에 모여 노는 보헤미안의 인상이나 자유로운 창작자의 인상을 전달받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이 파티에는 반전이 찾아온다.

어느 철부지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 그의 성장담이 영화의 정서적 동력으로 꾸준하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페이스북이 막 인기를 끌어 대학생 사이에서 유행할 무렵에도 그의 전 여자친구 에리카가 페이스북을 무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마크는 더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에리카와 얽힌 철부지 마크의 성장담 그리고 애송이식 사랑은 중요하게는 오프닝신과 라스트신을 이어준다. 숀을 만났을 때 마크가 그에게 한눈에 반한 것에도 이유는 있다. 숀은 나도 여자 때문에 냅스터를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어느 모로 보나 숀은 마크에게 하나의 역할 모델이 된다. 실제로 감독 데이비드 핀처와 각본가 아론 소킨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이 아이들”이라고 자주 지칭하는데, 그들은 때에 따라 마치 이 영화를 청소년의 성장영화로 만든 것처럼 말하고 있으며 영화도 그런 경향이 짙다.

진실공방에 치중한 법정드라마

여기에서 <소셜 네트워크>의 획기적인 발상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 장치가 더해졌을 때다. 소재는 영웅담에서 출발하고 정서는 성장담으로 가져간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영화가 선택한 건 매력적이게도 법정드라마다. “모든 훌륭한 법정드라마에는 몇 가지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것은 가능할 때마다 프리즘을 돌려서 스토리의 다른 면을 보여주려 하는 영화다.”(아론 소킨) 한쪽이 그가 주장하는 사실을 풀어놓으면 또 한쪽에서는 그에 반박하는 사실을 되받아치고 그걸 플래시백으로 교차 전개한다. 실화에 연루된 사람들의 말이 하나같이 달랐기 때문이지만 영화는 그걸 역이용해 영화의 역동적인 구동축으로 삼은 뒤 관객의 판단번복을 노리며 빠르게 전개해간다. 그게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공방전이 어떻게 펼쳐지는가 하는 데 영화는 관심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의 진실 공방전에서 방점은 ‘진실’이 아니라 ‘공방전’에 있다.

의외로 <소셜 네트워크>를 볼 때 영화의 소재가 된 페이스북과 그 사용법과 쓰임새 혹은 그와 관련된 전문 프로그램 용어 등을 모른다 해도, 그건 영화보기를 어렵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페이스북 자체의 성질을 내장하기를 바라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며 보는 것은 훨씬 흥미로운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가능한 리얼리티라는 개념이 즉각적으로 페이스북 자체와 엄청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에 대한 것 중 나를 잡아끄는 하나는 그것이 굉장히 주관적으로 개인의 ‘진실’을 꾸며내 한 개인을 완전히 재창조할 수 있는 끝없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이었다.”(아론 소킨)

예컨대 진실 공방전 사이에서 어떤 점들이 드러날 것인가. 드러날 공통의 진실은 아예 없다. 공방전은 네트워킹이 깨진 사람들끼리의 결과론적인 다툼이다. 그러니 우리가 영화에서 보게 되는 건 얼마간의 사실과 그 위에 지은 자기주장, 거기까지 가는 이유로서의 성공하거나 실패해버린 네트워킹의 과정이다. 누가 누구와 맺어지는가 혹은 결렬되는가. 누가 누구에게 호감을 갖는가 혹은 무관심해지는가. 누가 누구와 취향과 정보를 공유하여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이런 것이 페이스북의 일종의 논리 중 하나라면, <소셜 네트워크>는 영화의 이야기에 그 점을 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설명해주는 문구가 다름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의 미국 개봉 포스터에 적혀 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몇몇의 적을 만들지 않고서는 5억의 친구를 얻을 수 없다." 몇몇의 소수의 적을 만들거나 5억의 가입자를 친구로 만들거나! <소셜 네트워크>는 그렇게 두개의 관계를 만드는 이야기다. 적의 관계 또는 친구의 관계를 만드는 이야기. 차이가 있다면 적은 소수이지만 물리적으로 가까웠던 사람이고 친구는 멀리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다.

네티즌 저크의 탄생

누군가가 이런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페이스북 가입자 수를 한 국가의 국민 수로 가정할 때 “미국보다 1.5배 많은 인구를 가진 큰 나라가 될 것”이라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페이스북 가입자들이 국가를 이루진 않았어도 그에 버금가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공동체로 인식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므로 이건 훗날 기록되기를 인터넷 원시시대의 한 거대부족국가의 탄생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고 <소셜 네트워크>는 그 중심에 선 영웅의 이야기로 회자될지도 모른다. 인터넷 시대의 상상적 공동체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그럴지도 모른다.

한편의 영화가 생각난다. 그 영화는 20세기 초 거대 신문사 대표의 이야기를 다뤘고 그의 성공과 몰락에 초점을 맞췄다. 하나의 대표 시민의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그 영화의 제목은 <시민 케인> 이라고 붙여졌다. 말하자면 시티즌 케인. 신문이 근대의 상상적 공동체의 기반이었다면 페이스북은 인터넷 시대의 상상적 공동체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 같다. 그 진위를 왈가왈부하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니고, <시민 케인>과 <소셜 네트워크>를 비교하려는 시도도 물론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우린 <소셜 네트워크>가 <시민 케인>처럼 미스터리를 포함한 한 영웅의 이야기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 <시민 케인>에 시티즌 케인(Citizen Kane)의 탄생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네티즌 저크(Netizen Zuck)의 탄생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다. 이것이 지금 시대의 불미스럽고 불명료해 더 매력적인 영웅 탄생의 신화다. <소셜 네트워크>는, 네티즌 저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