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는 강한 ‘떨림’을 지닌 배우다. 연기하는 그녀는 조용히 신들린다. 떨림은 요동과 달라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도 옆 사람한테는 전이된다. 그녀의 강직한 감정과 집중력은, 본인의 연기로 직접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은연중에 상대 배우를 자극하고 움직여 스르륵 장면을 끌어간다. 게다가 정유미의 연기는 감정에 악센트와 악상기호를 넣어 유려하게 표현하는 유형이 아니라, 담백한 직선으로 속엣것을 표출해버리고 거기 형상을 부여하는 뒷일은 동료배우와 연출자에게 맡기는 쪽에 가깝다. 이는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는 확실히 불리한 특징이지만, 동시에 정유미와 짝이 된 많은 남자배우들이 이완된 상태로 본인의 최상급 연기를 보여주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돌아보면 2010년 정유미는 작품 안에서 줄곧 연애 중이었다. 타이틀 롤을 맡은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와 TV단막극 <위대한 계춘빈>, 박중훈과 커플을 이룬 <내 깡패 같은 애인>, 윤계상과 호흡을 맞춘 <조금만 더 가까이>는 모두 연애담이었고 정유미가 상대 남자배우와 주고받는 감정 연기가 영화의 본론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만족스런 연기적 화학반응을 만들어냈다. 정유미에게는 어린애 같은 사랑스러움과 아무렇지 않게 금기를 밟아버리는 ‘엽기성’이 공존하며 그 둘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 올해는 그녀의 그러한 자질이 진부하지 않은 멜로드라마를 만날 때 발하는 빛을 보여준 한해였다. 스며들 듯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옆집 여자 세진, <옥희의 영화>의 관찰자적 연인 은희, <위대한 계춘빈>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스토커’ 춘빈, <조금만 더 가까이>의 헤어진 애인에게 집착하는 은희에 이르기까지 정유미의 인물들은 연애에 불가피하게 포함되는 병적인 측면을 드러내며, 사랑 또한 자신을 지키려는 이기적 몸부림의 일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지 않는다.
작품 밖의 정유미는 젊은 여배우로서는 깜짝 놀랄 만큼 자기 연출에 무심하다. 특정한 인상이나 스타일을 정립하려는 궁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기가 아니라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조차 어색해한다. 달리 말해 정유미는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라기보다 연기를 해야만 비로소 접힌 데가 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희귀한 인간이다. 12월30일 <카페 느와르> 개봉 뒤 정유미가 가질 휴지기가 3년 동안 12편의 영화를 찍고서 마침내 얻은 귀한 휴식인데도 벌써 조바심이 나는 건 그 때문이다.
올해의 장면
<조금만 더 가까이>
갈라선 애인 현오(윤계상)를 불쑥 찾아와 네 탓에 연애불구가 됐으니 책임지라고 강짜를 놓던 은희, 배가 고프다며 카페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시킨다. 유리창 너머 왼쪽 프로필만 잡히는 이 신에서 정유미가 표현하는 감정은 모순덩어리다. 은희는 현오에게 여전히 섹시하고 예뻐 보이길 원하는 동시에 얼마나 그를 증오하는지 전하려고 안달한다. 정의를 주장하는가 하면 돌연 연민을 호소하고 다시 날선 극언으로 윽박지른다. 연신 빵을 씹는 입술은 “씩씩하게 살 거야”라는 메시지를 시위하지만 간혹 감정을 못 이겨 일그러진다. <위대한 계춘빈>의 춘빈은 말했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요. 물총 쏘면서 우는 거, 껌 씹으면서 노래하는 거,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미워하는 거.” 춘빈의 기준으로 볼 때 <조금만 더 가까이>의 정유미는 거의 신기(神技)를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