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망똘망, 영특, 총기, 쾌활, 씩씩. 남지현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이다. 그와 작품을 함께하는 선배나 연출자가 뭐든지 맡겨도 스펀지처럼 흡수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낼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명랑한 표정이랄까. 실제로 남지현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랬다. 사막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능청스럽고 억척스런 어린 덕만(훗날 선덕 여왕)으로 출연해 한손으로 뱀을 잡는 것은 물론 로마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당시 <선덕여왕>이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이 바로 미실 역의 고현정과 더불어 남지현이었다.
남지현은 2004년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윤소이의 아역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무영검>(2005)에서도 윤소이 아역을 맡으며 영화 신고식을 치렀다. 특유의 명랑한 모습을 선보인 작품은 톡톡 튀는 어린 소녀 ‘지민’으로 출연한 영화 <마이캡틴, 김대출>(2006)이었다. 옴니버스영화 <시선 1318>(2008)에서 방은진 감독의 에피소드 <진주는 공부중>에서 전교 1등 진주로 출연해 뮤지컬 연기를 선보일 때도 그랬다. <선덕여왕> 이후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와 <자이언트>에서 각각 한예슬과 박진희의 아역으로 등장할 때도 특유의 당찬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상대배우에게 활기찬 에너지를 전염시키는 배우랄까. 영화나 스크린의 남지현을 보고 있으면 괜히 즐거워진다.
이후 남지현은 성인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단편 <가족계획>(2010)에서는 자살을 기도하다가 혼자 죽기가 억울해 가족 살해 계획을 세우는 무시무시한 소녀로 나왔고, 지난해 단막극 <나야, 할머니>에서는 독거노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손녀인 양 돈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을 하는 중학생으로 나와 나문희와 투톱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다. <선덕여왕>을 시작으로 비슷한 시기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사실 그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낸 여자 연기자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많은 관계자들이 미래의 명단에 남지현이라는 이름을 메모하고 있었다.
현재 남지현은 <집으로…>(2002)를 만든 이정향 감독의 거의 10년 만의 신작 <오늘>의 촬영을 끝냈다. <오늘>에서 다혜(송혜교)는 대학 시절부터 상호, 지석과 함께 삼총사 같은 단짝 친구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함께 어울려 다니며 다혜는 지석의 동생인 지민(남지현)과도 가까워지게 된다. 이후 늘 밝고 행복한 아이로만 알고 있던 지민의 그늘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바로 다혜다. 그렇게 <오늘>은 송혜교와 남지현의 이야기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
영화 속에서 고등학교 조기 졸업에다 미국 명문대학의 어드미션까지 받을 정도로 똑똑하지만, 그 이면에 가정폭력 등 어두운 일상을 짙게 드리운 지민은 이전까지의 ‘아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꽤 힘든 역할이었다. 굉장히 밝고 활달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으며 반항기로 가득한 인물이지만 속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끌어안은 인물이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궁금한 게 있으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화하면서” 이정향 감독, 송혜교 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누고 배웠다. 그렇게 이제 남지현은 ‘아역’이라는 이름을 깔끔하게 떼어놓을 변신을 준비 중이다. ‘모두 깜짝 놀랄 것’이라는 이정향 감독의 얘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다.
<오늘> 이정향 감독이 본 남지현
“시나리오를 건네고 1주일 뒤에 만났을 때 다들 기절했다. 시나리오를 쓴 나보다 더 해석력과 통찰력이 뛰어났다. 아이큐가 궁금했다. (웃음) 촬영하면서는 더 놀랐다. 너무 어리지 않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보통 연기자들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역할을 소화하기는 쉬워도 실제보다 더 나이든 역할을 해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지현이는 정말 자유자재로 해냈다. 어떻게 저런 감정까지 다 담아낼 수 있을까 하고 감탄했다. 보통 성실하거나 천재이거나 두 가지 중 하나만 갖추기도 힘든데 지현이는 두 가지 다 갖춘 노력형 천재다. 너무 귀엽고 똑똑하고 대단해서 오죽하면 어머니한테 어떻게 애를 키우면 저렇게 되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