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김새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당찬 소녀
2011-04-25
글 : 김도훈
사진 : 최성열
<여행자> <아저씨>의 김새론

안나 파킨을 <피아노>에서 처음 본 순간. 커스틴 던스트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본 순간. 내털리 포트먼을 <레옹>에서 처음 본 순간. 어린 소녀의 가죽을 뒤집어쓴 성격파 배우를 스크린으로 목도한 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하며 내뱉게 된다. “졌다. 졌어.” 김새론을 <여행자>에서 처음 본 순간도 그랬다. 소녀가 프랑스 땅을 밟으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마음에 사로잡힌 자 모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지금 김새론의 이름은 단순히 인기있는 아역배우의 차원을 슬그머니 넘어섰다. <아저씨>와 <나는 아빠다>는 김새론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어린 ‘스타’로 만들었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다음날 인터넷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뜬다. “김새론 폭풍 오열. 시청자도 울었다.” 그러니까 김새론은, 지금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엘레지의 여왕’이다. 고아원에 버려진 채 입양을 기다리는 소녀. 약에 취한 엄마 때문에 장기밀매단에 팔려가는 소녀. 심장을 구해 올 아빠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소녀. 청각장애인 엄마를 사고로 잃고 바보 아빠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소녀. 겨우 11살난 이 아역배우는 인생의 모든 업보를 등에 업고 걷는 것만 같다.

모두가 궁금했을 거다. 왜 이 소녀는 이토록 비극적인 역할만을 계속해서 선택하는 걸까. 물론 그녀의 선택만은 아닐 거다. 아마도 <여행자>와 <아저씨>에 감화된 영화쟁이들이 이 작은 소녀에게 눈물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김새론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꼭 그런 걸 선택하려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런 역할을 하면 조금이라도 더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은 들어요. 자신의 이미지를 버리면서 하는 연기가 정말 연기라고 생각해요. 예쁘게 보이려고만 하는 연기는 연기가 아니잖아요. 나와는 다른 역할을 하는 게 좋아요. 밝은 역할도 하고 싶기는 하지만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자신을 버려야 하는 거니까….” 잠시 숨을 멈췄다. 이게 11살 아이의 대답이 맞는 걸까.

사실 김새론은 돌이 갓 지나서부터 <뽀뽀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훈련받은 아역 출신이다. 그러나 김새론에게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자신의 이모와 삼촌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듯한 인공적인 애교와 아양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김새론은 스스로 아역학원을 박차고 나갈 만큼 직업적 자각을 지닌 전문배우에 가깝다(믿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 “연기학원에서 배우는 연기는 얼굴만 제 모습이지 연기 선생님의 연기잖아요. 진짜 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른 같은 대답에 심취한 나머지 더 복잡한 질문을 던져봤다. 연기할 땐 직접 캐릭터가 됐다고 생각하나요, 모든 건 어쨌든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나요?(다시 말하자면 “당신 메소드 배우냐”는 소리다) 김새론은 질문보다 더 풍요로운 답변을 끝내 내놓고야 만다. “이제부턴 김새론이 아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찍어요.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그 역할로 살아야 해요. 촬영이 끝나면 또 제 모습으로 빨리 돌아와야죠. 너무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힘들 거예요.”

이쯤되니 그냥 아이다운 대답도 듣고 싶었다. 노래는 뭐가 좋아요? 연기 안 할 땐 뭐해요? “기분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혼자 있을 땐 발라드가 좋고 생일파티할 땐 즐거운 음악이 좋고요. 시간이 있을 땐 오래된 친구들과 있는 게 좋아요. 사진을 찍거나, 타임캡슐 같은 걸 만들거나, 뭔가를 남기는 게 좋아요. 영화도 그래서 하는 거고요.” 아이의 대답으로 시작해 어른의 대답으로 슬그머니 바뀌어간다. 학교 친구들이 질투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또 이렇게 답한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 때 잠시 전학을 갔었는데, 거기서 시샘을 좀 받았어요. 괜찮아요.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을 거예요. 사람이 항상 좋은 말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전 긍정적이에요.” 내가 졌다. 우리가 졌다. 완전히 졌다. 이 소녀는 아역배우가 아니다. 배우다.

<아저씨> 이정범 감독이 본 김새론

“김새론양은 정말 애예요. 잘 웃고, 스탭들에게 장난도 잘 치고, 또 유행하는 농담도 잘하고. 이 녀석이 과연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어요. 촬영 전엔 심정적으로 별 긴장도 안 해서, 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어요. 근데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정말 명민한 거예요. 자기가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을 머릿속 상상만으로 표현해내는 걸 보면 감수성이 기막히게 좋은 것 같아요. 180도 확 변해버리는 건데, 그럴 때는 좀 무서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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