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먼저 던질 만한 질문이 있다. 지금 할리우드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프리퀄 시대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2>를 (아마도 우리가 인식하는) 최초의 프리퀄로 역사 속에서 끌어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폴라는 젊은 비토 콜레오네가 마피아로 성장하는 과거와 마이클 콜레오네의 현재를 교차 편집하며 <대부2>를 이끌어간다. 전편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이 걸작은 속편인 동시에 프리퀄이다. 블록버스터 시대가 개막한 80년대 가장 주목할 만한 프리퀄은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인디아나 존스2>)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작자 조지 루카스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배경을 피하기 위해 전편으로부터 1년 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인디아나 존스2>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2>와 <인디아나 존스2>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프리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프리퀄이라는 단어는 아직 발명되지 않은 상태였다.
모든 건 조지 루카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시작됐다. 루카스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루크와 레이어 공주의 아버지인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로 변모해가는 공포의 역사를 그리겠다는 목표였다. 그리스 비극의 정조를 지닌 3편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제외한 나머지 두편은 (이 표현이 수많은 새로운 <스타워즈>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라도) 졸렬했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팬들이 당시 루카스에게 쏟아냈던 분노를 모두 모아서 에너지로 환원한다면 우리는 행성 서너개를 거뜬히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스타워즈> 프리퀄들이 어쨌거나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돈이 되면 뛰어든다. 그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세계의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할리우드가 <스타워즈>를 통해 프리퀄이라는 금광을 발견하자 새로운 주자들이 프리퀄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작은 <배트맨 비긴즈>(2005)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조엘 슈마허의 캠피한 쓰레기들은 물론, 팀 버튼의 고고한 걸작들마저 완벽하게 지워버린 채 새롭게 영웅의 탄생신화를 썼다. 사실상 회생 가능성이 없었던 프랜차이즈를 되살린 <배트맨 비긴즈>의 성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작자 바버라 브로콜리는 프리퀄이라는 새로운 장난감에 ‘본 시리즈’로 촉발된 새로운 액션 장르의 유행을 더해 <007 카지노 로얄>(2006)을 만들었고, 모두의 놀림거리로 전락해버린 영국산 스파이영화는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프리퀄의 진정한 원년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2009년이 왔다. 세편의 블록버스터 <스타트렉: 더 비기닝> <엑스맨 탄생: 울버린>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 개봉했고, 모두가 프리퀄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프리퀄 열풍이 ‘리부트’ 열풍과 겹친다는 것은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리부트는 과거의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새롭게 정비해서 다시 시작하는 걸 의미하는 단어다. 리부트를 위해서 꼭 필요한 영화적 형식이 바로 프리퀄이다. 만약 당신이 과거 속에 묻혀버린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면 어떤 방식을 사용할 것인가. 이 경우 전형적인 속편을 제작하는 건 거의 쓸모가 없다. 이전 시리즈의 과거로 돌아간 뒤 다시 역사를 빚어 올리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대부2>의 과거로의 회귀는 오히려 현재의 텍스트를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형식적 모험이었다. 코폴라는 과감한 몽타주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함으로써 캐릭터와 이야기의 결을 다층적으로 쌓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할리우드는 오로지 시리즈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시리즈의 과거로 돌아간다. 그래서 불필요한 전사(前史)가 억지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울버린의 과거를 알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이미 우리는 브라이언 싱어가 만든 두 편의 영화에서 간간이 등장한 플래시백을 통해 울버린이 어떻게 강철 칼날의 사나이가 됐는지를 알고 있지 않은가.
프리퀄이 가장 끔찍할 땐 역사적인 아이콘이 되어버린 악마들의 과거를 굳이 캐내겠다고 발악할 때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는 인육을 즐겨먹는 악마가 된 이유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무시무시했다. 브렛 래트너의 프리퀄 <레드 드래곤>조차 그 이유를 캐낼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는 <한니발 라이징>(2007)을 통해 한니발 렉터가 인육먹는 악마가 된 과거를 우리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야 만다. 왜 그가 악마가 됐냐고? <한니발 라이징>에 따르면 2차 대전 중 여동생이 군인들에게 잡아 먹히는 걸 본 트라우마 때문이란다. 지금쯤 <한니발 라이징>의 작가는 싸구려 홀로코스트 정신분석학으로 한니발 렉터의 아우라를 망친 대죄를 우리에게 사죄해야 마땅하다. 롭 좀비의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과 속편 <H2: 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는 어떤가. 존 카펜터의 오리지널 <할로윈>은 살인마의 마음을 구멍으로 남겨놓았다. 덕분에 마이크 마이어스는 진정한 공포를 지닌 호러영화의 아이콘이 됐다. 롭 좀비는 야바위 정신분석의라도 된 양 마이크 마이어스가 가족과 친구도 없이 방치된 채 동물을 학대하며 성장하다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된 희생자라고 프로이트적으로 구질구질하게 늘어놓는다.
게다가 프리퀄은 태생적으로 장르영화의 서스펜스를 갉아먹는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프리퀄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다스 베이더가 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그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도 알고 있다. 아무리 조지 루카스가 캐릭터의 다층적 내면묘사에 능하다고 할지라도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운명은 정해진 길로만 향하게 되어 있다(심지어 조지 루카스가 가장 못하는 게 캐릭터의 내면묘사 아니던가). 그렇다면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건 어떠냐고? 우리는 요다, 오비완 등 모든 캐릭터들이 하나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도 같은 함정에 빠진 프리퀄이다. 울버린, 사이클롭스, 세이버투스, 데스풀이 아무리 난동을 부리고 서로의 몸을 찢어대더라도 결국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