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걸작은 두번 태어난다
2011-09-01
글 : 김도훈
<대부2>부터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까지 할리우드 프리퀄 베스트10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훌륭한(혹은 가장 훌륭한 꼼수를 부린) 프리퀄 10편을 뽑았다. 현대적인 프리퀄의 시대가 개막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다. 아직도 <석양의 무법자>와 <대부2>를 프리퀄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만 이 리스트에서 빼버리는 건 걸작과 프리퀄의 기원에 대한 모독 아니겠는가.

1. <대부2>(1974)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속편이자 전편을 능가하는 드문 속편인 동시에, 아마도 가장 훌륭한 프리퀄이다. 사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대부2>를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프리퀄이라고 할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편의 과거로 회귀한 뒤 오히려 전편의 텍스트를 더욱 풍요롭게 일구어낸 코폴라의 솜씨는 지금 프리퀄을 만드는 모든 감독들이 모범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2.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시리즈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방법은? 역시 프리퀄이다. 하지만 J. J. 에이브럼스는 단순한 프리퀄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평행우주’ 이론을 이용해 아예 오리지널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새롭게 열어젖혔다. 오리지널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완벽하게 새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천재적인 ‘꼼수’다.

3. <석양의 무법자>(1966)

<황야의 무법자>(1964)와 속편 <석양의 건맨>(1965)에 이어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 트릴로지 최종편. 그런데 이게 프리퀄이라고? 놀랍게도 그렇다. 전편들이 남북전쟁 이후를 다루는 것과 달리 <석양의 무법자>는 남북전쟁이 무대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편들에서 입고 나온 (그 유명한!) 판초를 손에 넣는다.

4.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오리지널의 시간대를 일종의 편법으로 뛰어넘는다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아예 오리지널의 기원을 새롭게 쌓아 올린다. 조금 허술하긴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료제라는 꼼수를 집어넣은 건 꽤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 영화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 역사를 쓰는 것이야말로 좋은 프리퀄을 만드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증명서에 가깝다.

5. <배트맨 비긴즈>(2005)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략은 간단했다.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의 시리즈를 완전히 잊어버린 듯 처음부터 아예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놀란의 손끝에서 배트맨은 태초로 돌아간 뒤 영웅설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중화권 무협영화의 클리셰를 도입한 티베트 시퀀스가 전체적인 영화와 물과 기름처럼 안 섞이긴 하지만 시도할 만한 불협화음이었다.

6. <카지노 로얄>(2006)

제임스 본드의 유효 기간은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적 프랜차이즈를 포기할 수 없다면? 제작자 바버라 브로콜리는 “원작에 충실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슬로건으로 본드의 창조신화를 재건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시리즈의 캠피적인 분위기를 제거하자 ‘본 시리즈’로 시작된 현실주의적 액션영화의 유행을 덧붙이는 것도 수월해졌다.

7.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

브라이언 싱어는 시리즈에서 하차하고, 브렛 래트너의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망작에 가까웠고, 프리퀄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였고, 그런데 또 프리퀄을 만든다고? 다행히도 <킥애스: 영웅의 탄생>의 매튜 본은 저물어가던 시리즈의 빛을 과거로부터 다시 건져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복고와 캠피의 미학을 덧입히면서.

8.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1984)

블록버스터 시대가 개막한 80년대 이후 가장 처음 만들어진 프리퀄. 당시에는 만드는 사람들도 관객도 이 영화가 프리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1935년이 무대인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은 1936년이 무대인 <레이더스>보다 1년 앞선다. 왜?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는 또다시 나치를 악역으로 내세우지 않길 원했기 때문이란다.

9. <레드 드래곤> (2002)

<양들의 침묵> 시리즈는 끝없이 과거로만 회귀하는 드문 시리즈다. <레드 드래곤>은 <양들의 침묵>의 프리퀄이었고, 이후 만들어진 <한니발 라이징>은 <레드 드래곤>의 프리퀄이었다. <레드 드래곤>을 조너선 드미의 전작에 비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브렛 래트너는 한니발 렉터의 팬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오락영화를 만들어냈다.

10. <파라노말 액티비티2>(2010)

전편인 <파라노말 액티비티>보다 두달 앞선 이야기인 동시에 전편을 넘어서는 (혹은, 적어도 전편에 누를 끼치지 않는) 호러영화 중 하나. 이 프리퀄은 1편 여주인공의 언니 가족이 겪는 악몽을 전편보다 앞선 테크닉으로 빚어내는 동시에 초자연적인 공포의 기원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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