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쁜 프리퀄의 몇 가지 법칙을 정리해보자.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좋은 프리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엑스맨 탄생: 울버린>), 관객이 이미 모든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프리퀄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스타워즈> 프리퀄), 무엇보다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악당 캐릭터의 과거는 아예 건드리지도 말지어다(<한니발 라이징>과 롭 좀비의 <할로윈>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프리퀄일수록 더 훌륭한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법칙도 있을 것이다. <스타워즈> <엑스맨 탄생: 울버린> <한니발 라이징>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의 감독과 오리지널 시리즈의 감독을 생각해보라. <스타워즈> 프리퀄은 예외가 아니냐고? 이 경우에는 ‘더 좋은 각본가를 영입하라’라는 또 다른 법칙을 만들 수 있다. 오리지널 시리즈와 달리 <스타워즈> 프리퀄의 시나리오는 모두 조지 루카스가 썼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프리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올해 개봉한 두편의 훌륭한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좋은 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제작자로 참여한 브라이언 싱어는 코믹스의 소스를 무시하고 성공을 거둔 <엑스맨> 1편의 전략을 그대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도입한다. 오리지널 코믹스에서 자비에 교수는 루시퍼라는 악당이 던진 돌에 맞아 척추를 다친다. 그것도 티베트에서 말이다. 브라이언 싱어가 이 코믹스다운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엑스맨> 1편을 만들면서 자비에와 매그니토가 젊은 시절 친구였다가 투쟁의 노선 차이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설정했으며, 영화만을 위한 가상의 설정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그대로 다시 이용됐다. 다시 말하자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오리지널 코믹스와 결별하고 자신만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겠다는 어떤 슈퍼히어로물의 결의에 가깝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또 다른 훌륭한 점은 이전 <엑스맨> 영화들의 캐릭터들로부터 새로운 매력을 추출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프리퀄 <엑스맨 탄생: 울버린>과 비교해보면 이는 더욱 명백하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에서 새로운 매력을 전혀 재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일종의 실험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영화가 그의 숨겨진 과거를 구구절절 설명해도 모든 건 동어반복일 뿐이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다르다. 자비에 교수와 매그니토는 이전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젊은이들이다. 감정적이고 다소 거들먹거리는 젊은 자비에를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는 “만약 패트릭 스튜어트가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해야 했다면 이 역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를 매료시킨 건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프리퀄의 가능성이었다.”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다. 최고의 프리퀄은 언제나 원작의 거대한 무게와 그림자를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성공한다. 지난 10년간 가장 훌륭한 프리퀄이라 할 만한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보면 그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평행우주 이론을 이용해서 원작의 그림자를 기막히게 벗어 던졌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스타트렉: 더 비기닝>처럼 영리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알츠하이머 치료제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원작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역사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면에서 두 영화는 전형적인 의미에서의 프리퀄은 아니다. 역사를 살짝 뒤트는 방식으로 두 영화는 오리지널의 무거운 역사를 가차없이 벗어 던지고 새출발한다. 이게 뭘 의미하냐고? 가장 좋은 프리퀄은 가짜 프리퀄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 숨겨진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만으로 좋은 프리퀄을 만들 순 없다. 프리퀄이 태생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서스펜스와 흥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담하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노라는 의지가 필요하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꼼수? 새로운 장난감!
프리퀄의 시대가 개막하면서 모두가 의심했다. 혹시 이 모든 프리퀄 광풍은 속편을 만들 새로운 꼼수를 발견한 할리우드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니냐고.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지난 30여년간 계속되어온 프랜차이즈 속편들에 질릴 대로 질렸다. 대체 누가 ‘트랜스포머4: 돌아온 로봇들의 집단 난교’나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대 존 맥클레인’ 같은 영화들을 보고 싶어하겠는가(그런 바보 같은 속편을 누가 만드냐고? 당신은 지금 할리우드의 속물적 대범함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처럼 예술적 비전이 분명한 신인감독들에게 메가폰을 쥐어주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이상 할리우드의 속편은 이제 유효기간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물론 프리퀄 역시 점점 더 과거의 속편처럼 구태의연해질지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의 프리퀄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악몽 같은 소식은 무시무시하다. <섹스 앤 더 시티>의 프리퀄을 만든다는 소식은 또 어떤가. 설마 우리는 사라 제시카 파커가 퍼포먼스 캡처 기술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걸 보게 되는 걸까?
물론 벌써 프리퀄의 미래를 재단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프리퀄은 썩 괜찮은 가능성들을 지니고 있다. 프리퀄이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할리우드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볼 수 없었을 것이며, <스타트렉>과 <혹성탈출> 같은 고전들이 근사하게 귀환하는 순간을 맛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프리퀄은 지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할리우드는 또 다른 속편 제조 옵션을 하나 더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