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시네마 부문에서 가장 빨리 매진되는 건 칸, 베니스 등에서 이미 인증 받은 거장들의 신작이다. 그러나 거장들의 숨결만이 세계의 영화를 이끌고 가는 건 아니다. 종종 월드 시네마 부문은 우리가 모르는 아시아 바깥 세계의 사회, 정치, 미학적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 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올해 이수원,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전 세계를 돌며 부산으로 가져온 영화들 역시 비상하는 영화적 신대륙의 움직임과 새로운 사회 문제를 들쑤시는 신인들의 힘으로 가득하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올해 특히 주목해야할 대륙은 12편이 소개되는 중남미라고 말한다. “중남미는 아직도 혁명이 살아있는 대륙이다. 다큐멘타리는 물론이고 극영화까지도 현실의 어려움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다. 볼리비아 영화 <로스 비에호스>와 아르헨티나 영화 <야타스토>는 사회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적인 스타일면에서 수준급의 역량을 보여준다.” 또 다른 아르헨티나 영화 <오늘 나는 두렵지 않았다>와 멕시코 영화 <당나귀>역시 프로그래머들이 추천하는 중남미 작품들이다. 전자는 거의 해체주의적이라 할 만한 형식적 실험을, 후자는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품고 있는 수작이다.
주제적인 면에서 올해 월드 시네마의 유럽영화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화두는 불법 이민과 육아 문제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럽 영화들이 다루어 온 불법 이민 문제는 올해 월드 시네마 부문에서 하나의 거대한 경향을 이루고 있다.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특히 이탈리아 영화들을 잘 챙겨보라고 조언한다. “이탈리아 영화들은 전통적으로 사회참여적인 경향이 강한 편이고, 올해 상영작들의 60% 정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불법 이민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계가 불법 이민자를 다루는 방식을 챙겨보고 싶은 관객들은 에르마노 올리의 <판자촌>,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의 <테라페르마>, 플래시 포워드 부문의 <그곳>을 놓쳐선 안된다. 불법이민자와 함께 올해 월드시네마의 화두로 떠오른 육아 문제는 올해 칸영화제 화제작이었던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타는 소년>과 틸다 스윈튼 주연의 <어바웃 케빈> 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화 <럭키> 등 다양한 상영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불법 이민자와 육아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이런 새로운 세계의 문제들은 과거의 틀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재미있게도 서구 영화들이 불법이민을 이야기하는 동안 한국 영화는 탈북자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올해 월드 시네마 부문의 영화들이 던져주는 화두는 머지 않아 한국과 한국영화계가 고민하게 될 화두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영화의 세계 역시 좁아지고 있다. 월드 시네마는 지금 세계를 바라보는 창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