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방통위 제재라는 이름의 행운
2011-11-24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지금 우리학교는> 주동근

매주 수요일이 되면 포털 사이트 검색어 랭킹 상위권에서 이 웹툰의 이름을 언제나 찾아볼 수 있다. 주동근 작가의 좀비호러 웹툰 <지금 우리학교는>이다. 장르의 특성상 등장인물들의 신체가 손상되고 피가 사방에 흩뿌려지는 잔인한 장면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이 웹툰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가 배경인데다 매회 ‘떡밥’을 던지는 흥미진진한 줄거리 덕분에 <지금 우리학교는>을 보고 싶은 학생 네티즌은 주동근 작가의 만화를 스크랩하는 블로거들을 찾아나선다. 새 에피소드가 올라올 때마다 ‘지금 우리학교는’이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다. 결국 잔인한 장면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가감없이 볼 청소년들을 우려해 주동근 작가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지금 우리학교는>의 모자이크판을 연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우리학교는>의 ‘19금 수위’는 결정적으로 주동근 작가의 작품을 더 많은 독자들이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주동근 작가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도전만화’ 코너 출신이다. 누구나 자신이 그린 만화를 올릴 수 있는 이 코너에서 네티즌의 별점과 댓글 평가가 우수한 작품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도전만화에 <지금 우리학교는>을 연재하던 시절, 주동근 작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한 그는 게임회사에 취직해 원화가로 활동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경주에서 상경했지만 취업은 어려웠고 6개월 만에 생활비도 바닥났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는 ‘왜 한국에는 좀비 만화가 없을까’라는 생각에 한 학교 학생들이 좀비로 돌변해가는 <지금 우리학교는>을 구상하게 됐다. 도전만화 코너에 초반부 에피소드를 연재하던 어느 날, 주동근 작가는 네이버 담당자에게 두번의 연락을 받았다. 첫 번째 연락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금 우리학교는>처럼 잔인한 웹툰이 아무런 제재없이 도전만화 코너에 연재되고 있다. 작가에게 당장 만화를 내려달라고 전해달라”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 연락은 “당신의 만화를 네이버 웹툰에 연재해도 되겠나”는 원고 청탁이 요지였다. “방통위의 제재가 없었다면 과연 네이버 담당자가 내 웹툰을 눈여겨봤을까?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는 방통위가 고맙다.” 주동근 작가의 이름은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지금 우리학교는>은 주동근 작가가 “언젠가는 영화화되기를 꿈꾸며” 야심차게 만든 웹툰이다. 과학실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여학생이 교실로 뛰어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문도 모른 채 친구를 부축하던 학급 동료들은 친구에게 물려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가 되어간다.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학생들이 구조원을 물고, 사고를 수습하러 학교에 온 경찰관들이 좀비가 되어가며 ‘좀비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나라에서 ‘비상 계엄령’을 발동하는 사태까지 일어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28일후…> <새벽의 저주>와 같은 대부분의 좀비영화들이 그렇듯 “‘좀비 바이러스’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 변해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루는 데 있다고 주동근 작가는 말한다. 격투 과정에서 부상당해 피흘리는 학급 친구를 감염자로 의심하고, 좀비가 된 선생님을 흉기로 찔러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2년여 동안 연재된 <지금 우리학교는>은 지난 11월2일 130화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연재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극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자주 마감이 늦어 수요일마다 연재를 기다리던 독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주동근 작가는 그러나 “숲속으로 사라진 궁수들, 마지막회에 바닷속에서 발견된 ‘좀비 바이러스’의 숙주 등 외전과 속편의 여지를 남겼다”며 여운을 남겼다. “B급영화를 좋아해 틈나는 대로 찾아보고, 감상한 영화에서 만화의 영감을 얻는다”는 그의 차기작은 코미디, 그 다음 작품은 새로운 형식의 호러물이 될 거라고 한다. “<지금 우리학교는>을 보고 다섯개 영화사가 연락해왔다”고 하니 어쩌면 후속작에 앞서 좀비영화로 다시 그의 이름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동근 작가의 ‘가상 캐스팅’

주동근 작가의 블로그를 보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실제 배우들에 <지금 우리학교는>의 등장인물을 대입한 작가의 ‘가상 캐스팅 놀이’다.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그인 만큼 가상 캐스팅 목록을 보면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더 깊이 알 수 있을 듯하다. 주동근 작가가 <지금 우리학교는>의 주인공 ‘온조’의 모습을 구상할 때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배우는 임수정이다. 온조의 평범하고도 활발한 성격과 임수정의 이미지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는 평이다. 학생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현실적이고 침착한 이미지의 박선화 영어선생님에는 배우 도지원을 추천했다. 한편 바이러스를 학교에 퍼뜨린 냉철한 과학 선생 이병찬에는 천호진이, 바이러스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형사 송재익 역할에는 손현주가 가상 캐스팅됐다. 감염자로 의심받는 남라 역할에는 김옥빈이, 온조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착한 남자’ 청산이는 이승기가 어울릴 것 같단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뤄낸 가상 캐스팅이지만 이들이 모두 출연하는 좀비영화라면 ‘닥치고 관람’할 의향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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