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별일아닌 별일을 찾아서
2011-11-24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어쿠스틱 라이프> 난다

<에반게리온>의 작가 안노 히데아키의 부인 안노 모요코는 오타쿠 남편과의 삶을 한권의 만화로 정리했다. 매 순간 함께 지내다보니 어느새 중증 오타쿠 남편의 삶에 동화되고 말았던 한 신혼부부의 비운의 스토리!(물론 그녀 역시 초보 오타쿠) 웹툰작가 난다의 <어쿠스틱 라이프>엔 오타쿠 남편을 샅샅이 고발한 안노 모요코의 문제적 옴니버스 만화 <감독 부적격>의 희한한 라이프 스타일이 살포시 배어나온다. 결혼 4년차,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웹툰작가 난다는 게임 개발자이자 게임 오덕인 남편 한군을 가차없이 해부한다. 게임이 곧 삶인 남편이 일으키는 해괴한 증상. 예를 들면 데이트하면서 <파이널 판타지>의 역사를 읊느라 바쁘다거나, 사랑을 담보로 ‘10분만 함께 플레이하자’고 구걸한다거나, 스페셜 한정판 게임 예약 구매에 혼신의 힘을 쏟는 자가 그녀의 남편이다. 그러니까 <어쿠스틱 라이프> 소재의 절반은 이렇게도 시시콜콜하고 잡다하며 하릴없는 남편의 행태보고이자 부부의 일상이다. 그림 그리고, 뜨개질하고 화초 가꾸는 걸 좋아하는 난다가 남편 출근 뒤 하루 종일 게임 완판에 열을 올리는 날이 오기까지. 하릴없는 일상은 깨알 같은 웃음이 되고, 명불허전의 에피소드로 저장되며, 하나의 스토리이자 삶으로 정립된다. 동글동글한 몸, 아무렇게나 쭉 찢어진 눈, 펜으로 뚝딱 그려 채색한 듯한 난다의 ‘손쉬운’ 일상은 다음 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지난해 8월 이후 높은 평점을 유지하며 연일 인기 웹툰으로 회자됐다. <어쿠스틱 라이프>의 독자에게 난다가 들려주는 부부의 일상은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자꾸 엿보고 싶은 내 이웃의 티격태격이다.

“만화 소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뭔가를 도모한다거나 내 생활을 바꾸는 건 하지 않는다. 그건 내 철칙에 어긋나기도 하고.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으면 그걸 적고 콘티로 만드는 게 내 작업 방식이다.” 작가의 레이더망에 걸린 소재란 국물 흘리지 않고 쓰레기를 잽싸게 버리는 액션극부터, 재활용 플라스틱을 버릴 때의 분류법에 관한 꽤 디테일한 철학적 고찰, 원목이 좋은 걸 알면서도 싼 가격에 MDF로 타협해야 하는 자본주의 생활의 비애까지 다종다양한 범주다. “사실 뭘 그려야 할지가 큰 고민은 아니다. 에피소드들을 포착하는 게 작은 시작이라면 정작 문제는 그걸 어떻게 분류하고, 여러 개의 만화로 엮어내는가다. 그게 작품을 만들 때 가장 까다로운 작업이다.” 물론 생활웹툰의 카테고리 안에서, 가상의 캐릭터가 아닌 자신과 가족을 만화의 먹잇감으로 내놓는다는 건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자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어디까지가 캐릭터고, 어디까지를 소재로 내어놓아도 좋을지 기준을 정하는 문제 역시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작가가 고뇌할 핵심 영역이다. “개인마다 부끄러워하는 부분은 다른데, 난 만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내 경우 섣불리 조절하려고 하기보다는 ‘움찔’ 하는 느낌이 올 때를 조심한다. (웃음) ‘나’가 아닌 ‘캐릭터’로 따로 분리하고 본다면 소재를 밀어붙이기는 더 수월해진다.”

<어쿠스틱 라이프>는 지난 10월 시즌4를 마감하고 잠깐 휴지기에 들어간 상태다. 부산 출신의 작가에게 만화는 중학 시절부터 꿈꿔온 꿈이었고, 한때 원고를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거절당한 아픈 경험을 준 존재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수익을 위해 꼭 필요한 그녀의 생활이기도 하다. “웹툰을 하면서 점점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게 됐다.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는 건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고료는 적지만 배부른 느낌이랄까. 초반엔 독자 반응에 신경 쓰느라 고전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 안에서 그걸 거를 정도의 판단이 생긴 것 같다.” 1년여의 연재 끝, 그녀는 <어쿠스틱 라이프>의 다음 시즌을, 다른 작가들과 하는 창작집을,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다음 시즌에서도 역시 난다의 활약상이 계속될 것이고, 한뼘 성장한 캐릭터의 모습이 포함될 예정이다. 연재에 앞선 그녀의 철칙은 이렇다. “내 생활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한다. 나한테 별일이라고 과장하는 것들이, 독자들에겐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감을 얻기 힘들어지는 거다. 나를 계속 돌아보면서 자학하는 일, 치밀하게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과정이 앞으로도 쭉 계속될 거다.”

난다의 작업실 방문기

청소 사절, 요리 사절, 설거지 사절.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 이불 안에 누워 있기 일쑤인 불량주부 캐릭터 ‘난다’. 인터뷰 장소로 작업실 겸 집으로 초대를 받고, 내심 만화 속 풍경을 떠올려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화에 속아서는 절대! 안된다. 일단 감정이입이 확실한 빈둥빈둥, 후덕한 난다 대신, 슬림한 체구, 뽀샤시한 피부가 작가의 배반형 실체다. “만화랑은 사뭇 다르군요”라는 기자. “다들 실제랑 너무 다르다고 하는데…. 이런 그림체를 좋아해서 언뜻 보면 못 그린 것처럼 그려요”라는 난다. 그릇 모으기와 화초 가꾸기에 매진 중이라는 작가의 작업실은 고스란히 홍대 카페로 개업해도 될 최상급 청결 상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손님을 부르는 집이군요”라는 기자. “제가 음식을 안 해서요. 그게 참…”이라는 난다(베란다를 보니 고가의 빈티지 프라이팬을 화분 받침으로 활용하는 대범한 주부적 센스가 빛나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던 중. 문득 휴일이라 집에 있다는 한군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인터뷰 때문에 혹 불편하신 건 아닌지…?”라는 기자. “괜찮아요. 간식 넣어줬어요.”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문득 떠올랐다. 두 시간 전, 기자를 마중 나온 작가가 잠깐만 기다려달라며 슈퍼마켓으로 뛰어가 달랑달랑 사들고 들어갔던 포테이토칩 한 봉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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