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체험이란 아껴두었다가 이럴 때 쓰라고 나온 말이다. 스크롤을 내리며 재빨리 속독하는 웹툰의 세계, 웹툰작가 무적핑크는 그 단순한 손놀림에 제동을 건다. 동화를 향한 역설과 개그, 패러디로 점철된 <실질객관동화>(이하 <실객동>)는 단순히 보는 만화가 아닌, 체험하는 웹툰. 웹툰계의 3D블록버스터다. 못 믿겠다면 실제 바느질해서 만든 천으로 입체감을 살린 <마법의 양탄자>편을 보거나, 프로젝터로 쏜 그림을 다시 찍어 평평한 평면의 벽에서 귀신이 튀어나오는 효과를 준 <장화홍련전>편을 찾아보라. 깎아내린 사과 껍질이 컴퓨터 화면을 줄기차게 따라 내려오는 <백설공주>편이나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콩나무를 거꾸로 거슬러가는 <잭과 콩나무>편의 시도 정도는 <실객동>의 형식적 실험 단계로 보자면 초보 수준에 불과하다. 경찰의 날 관련 내용이라면 현상수배벽보 형식이 활용되며, EBS <지식채널 e>의 형식도 깔끔하게 빌려 활용된다. <실객동>에서 이처럼 만화의 내용과 그걸 담는 형식은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유기적 관계. 독자에게 전해지는 결론은 당연히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오는 어떤 충격이다. “우연히 ‘디지털 웨이브’ 세대에 관해 알게 됐다. 웹페이지를 보는 데 익숙한 세대들을 뜻한다. 웹툰을 처음 그릴 땐 단순히 웹에서 그리는 만화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그런데 이젠 웹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같은 것들이 적용될 수 있는 거다.”
이렇게 한 단계 앞선 형식이 담고 있는 건 <실객동>의 기치이기도 한 동화의 재해석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동화의 교훈담이 주 소재. 때로 신화, 영화, TV프로그램, 소설이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걸 비틀어도 보고 찔러도 보고, 뒤집어도 보다가 거기서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색적인 결론을 도출해낸다. 예를 들자면, <백설공주>의 교훈은 깎아 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깨우쳐주는 지침서이며,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손오공에게 준 금강권은 깨달음의 도구가 아닌, 원숭이요리를 먹기 위한 마크라는 식이다. <실객동>의 99%가 동화로 구성된다면, 뒤통수를 내리치는 이 깨달음은 고작 1%에 불과하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은 심플하고 견고한 소재와 스토리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커다란 나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전동화를 재해석했지만, 틈새를 공략한다면 한 군데쯤은 나도 찍을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칙은 단순하다. 일단 누구나 다 아는 소재를 선정해야 뒤집었을 때 효과도 크다는 것, 두 번째로 착한 사람이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었다는 식의 너무 뻔한 뒤집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풍자와 해학, 쓴소리가 난무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직언’은 피하자는 게 무적핑크의 입장이다. “<실객동>의 조회수가 한회 96만번 정도다. 웹툰 중에서도 6~8위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독자다. 그러니 리얼타임의 문제를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으로 전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봐도 똑같은 느낌을 주는 게 필요하다.”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시선으로 그녀가 <실객동>을 연재한 건 2009년 6월부터다. 무적핑크 이전, 변지민은 직접 제작한 UCC로 화제를 모으며 서울대 시각디자인과 특차에 합격해 화제를 모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웹툰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배운 것들을 활용한 실험의 장으로, 어느새 웹툰작가라는 말을 책임져야 할 인기작가로 자리했다. 웹툰으로 수익을 올리는 동안 그린 만큼,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황금개념도 갖게 됐다. 벌써 내년 5월 <실객동>의 연재가 끝나는 대로 중편만화 연재의 계획을 마쳤다는 그녀. “정작 문제가 되는 건 호응을 얻은 내 처녀작 <실객동>이 끝나고 나서다. 지금껏 그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건 거리낌없이 풀어왔다면, 이젠 다른 복안이 필요하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상위에 그치지 않는 진짜 작가의 역량을 위한, 지금 무적핑크의 고민이다.
무적핑크가 고수하는 웃음의 철학
<실객동>의 말미에 항상 등장하는 두 남자가 있다. 한쪽이 “…그랬다고 합니다”라는 똑같은 대사로 에피소드를 맺음하면, 다른 한쪽은 대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혹은 ‘교훈적인 이야기로군’ 하고 응수하는 식이다. 주인공 캐릭터가 없는 <실객동>에서 두 남자가 일으키는 화학작용은 묘하다. 한껏 비틀어놓은 동화의 충격을 완화시켜준다거나, 혹은 고조시켜주는 뭔가 극적인 장치이자, 151화의 에피소드에 이젠 빠지면 섭섭해서 찾게 되는 캐릭터로 자리하게 된 거다. 무적핑크가 두 남자를 연재에 등장시킨 건 일본의 개그커플 ‘라멘즈’를 오마주하기 위해서다. 과장된 개그, 야한 소재로 인기를 구가하던 일본 개그프로그램의 간판스타였던 둘은 불현듯 TV 대신 소극장 무대를 택했고, 변변한 무대조명도 소도구도 없이 박스 두개를 활용한 소박한 자신들만의 개그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박스에 있는 소재 거리를 다 쓰면, 뒤돌아보지 않고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무적핑크. 라멘즈가 설파하는 소박한 웃음의 가치는 바로 무적핑크가 지향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상. 이 두 남자 캐릭터에 관한 에피소드였습니다. …그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