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틴틴] 땡땡, 틴틴, 스필버그, 피터 잭슨 당신이 환호할 어떤 전설의 연대기
2011-12-05
글 : 김도훈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이 손을 맞잡은 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 12월8일 개봉한다. 웨타 디지털의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스필버그가 만난 3D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한명의 주인공이 있다. 지난 1930년대부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원작 <땡땡의 모험>의 작가 에르제다. 틴틴, 혹은 땡땡은 어떻게 창조되었고, 어떻게 스필버그의 마법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지게 된 것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대체 틴틴, 혹은 땡땡은 누구인가.
(스필버그의 영화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지만 원작 만화는 <땡땡의 모험>으로 출간됐다. 이 기사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원작자 에르제의 모국인 프랑스어권 벨기에의 표기법에 가깝게 표기한다. - 편집자)

땡땡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의 존재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영국 배우 제이미 벨이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땡땡 역으로 캐스팅된 직후의 일화를 먼저 살펴보자. 오랫동안 땡땡의 팬이었던 제이미 벨은 코믹북 가게에 들러 땡땡의 피겨를 구입하는 중이었다. 제이미 벨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점원이 피겨를 포장하면서 말했다. “이걸 영화로 만들고 있대요. 스티븐 스필버그 양반.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혼쭐이 날 겁니다.” 대체 땡땡이 뭐기에 일개 코믹북 점원이 스필버그의 이름 앞에서 호통을 치냐고? 땡땡이 스머프나 스누피, 미키 마우스, 혹은 일본의 아톰 정도는 되는 캐릭터냐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땡땡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땡땡은 위에 열거한 캐릭터만큼 한국에 잘 알려진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전세계 역사상 가장 열정적인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캐릭터 중 하나다.

20세기 초엽, 전설이 시작되다

세상에는 심지어 ‘Tintinologist’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땡땡주의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몇몇 영어사전에도 기재되어 있다. 이들이 그저 땡땡 시리즈를 애호하는 보통의 오덕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땡땡주의자들은 에르제가 생전에 남긴 시리즈의 세계관과 역사, 철학을 심도 깊게 공부한다. 잘 알려진 땡땡주의자 중 한명은 프랑스의 역사적인 대통령 샤를 드 골이다. 그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했던 말을 한번 들어보라. “나의 유일한 라이벌은 땡땡이다. 그는 거인에 맞서는 소인이라는 점에서 나와 닮았다.” 그러니까 땡땡은, 정말이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아이콘이다. 그게 스필버그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땡땡의 전설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20세기 초엽으로 돌아가야 한다. <땡땡의 모험>의 작가 조르주 레미는 1907년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가톨릭계 신문 기자로 일한 조르주 레미는 어린 시절부터 ‘에르제’라는 필명으로 만화를 그렸고, 1929년 청소년용 신문 <르 프티 뱅티엠>(Le Petit Vingtieme)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땡땡의 모험>의 첫 번째 이야기를 직접 연재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작품이 국내에도 출간된 시리즈의 1권 <소비에트에 간 땡땡>이다. <땡땡의 모험>이 연재되는 날이면 신문은 두배로 잘 팔려나갔고, 1930년에 출간된 단행본 역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에르제는 땡땡과 애견 밀루가 세계의 여러 국가를 방문하며 모험을 펼친다는 기본 컨셉의 시리즈를 계속해서 내놓기 시작했다.

땡땡 시리즈가 지금처럼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이 될 토대를 쌓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차대전으로, 벨기에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면서부터다. 당시 연재 중이던 <검은 황금의 나라>의 악당 뮐러가 나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에르제의 신문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결국 <검은 황금의 나라>는 8년 뒤인 1950년에야 완성된다). 그러나 에르제는 펜을 놓기보다는 나치가 인정한 유일한 벨기에 신문 <르 수아르>를 통해 새로운 땡땡의 모험을 연재했고, 그 시기에 완성된 것이 바로 스필버그 영화의 원작이 된 <황금 집게발 달린 게>(1941), <유니콘호의 비밀>(1943), <라캄의 보물>(1944)이다. 에르제는 나치의 검열을 회피하기 위해 직접적인 세계 정세의 한복판으로 땡땡을 보내는 대신 시대 배경에 구속받지 않는 순수한 어드벤처물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땡땡의 모험>을 완전한 컬러판으로 출간하려던 카스테르망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에르제는 한 이야기를 64페이지짜리 한권에 담을 수 있도록 구성하기 시작했다. 보다 현대적인 땡땡 시리즈의 포맷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실 땡땡이라는 캐릭터만으로 시리즈가 이어졌다면 <땡땡의 모험>이 지금처럼 아이콘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서구의 문화평론가들은 주인공 땡땡이 유머감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2차원적 보이스카우트 캐릭터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어쩌겠는가. 에르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들어준 보이스카우트 경험으로부터 땡땡을 창조했고, 또 어린 독자들을 위해서 땡땡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떤 중흥을 갖춘 모범적인 캐릭터가 되어야만 했다. 대신 에르제는 <황금 집게발 달린 게>에서 ‘아독 선장’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땡땡의 부족함을 채워넣는 기지를 발휘했다. 사실 아독 선장은 나치의 정치적 검열을 피해 순수한 해양 어드벤처 에피소드를 만들려는 에르제의 의도에서 태어난 캐릭터다. 그런데 이 술주정뱅이에 욕설을 달고사는 캐릭터는 <땡땡의 모험>에 성인적인 유머감각과 풍자정신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양념이 됐다.

퍼포먼스 캡처 방식으로 영화를 촬영 중인 주연배우 제이미 벨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땡땡의 모험> 저작권을 사들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땡땡의 모험>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특히 1950년 에르제는 ‘에르제 스튜디오’를 설립해 <달 탐험 계획>(1953)과 <달나라에 간 땡땡>(1954)을 내놓았다. 스튜디오의 설립과 함께 더욱 체계적인 자료 조사와 세밀한 작업 공정이 가능해졌고, 이를 토대로 시리즈는 50개 언어로 60여 나라에서 발간되어 총 3억부 이상이 판매되며 역사적인 예술품이자 상품의 지위에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 진정한 <땡땡의 모험>의 극장용 실사영화였다. 실제로 에르제는 끊임없이 땡땡을 스크린에 불러들이고 싶어 했다. 그는 종종 “나는 내 이야기들을 영화로 간주한다. 내레이션 없고, 묘사 없는, 이미지를 강조한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고, 몇편의 실사영화(56쪽 박스 참조) 제작을 허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작의 모험을 그대로 스크린에 불러들이기에는 당대의 영화적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에르제는 지난 1983년 끝내 제대로 된 극장용 영화를 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에르제가 타계하자마자 대서양 건너편에서 <땡땡의 모험>의 저작권을 사들인 남자가 있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다. 스필버그 역시 <땡땡의 모험>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당대의 많은 팬들이 지적했듯이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과 유사점이 많다. 동시에 에르제의 원작에는 스필버그가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받은 다양한 초기 할리우드 어드벤처물, 필름누아르의 요소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그런데 스필버그는 “아직은 에르제의 비전을 제대로 영화화할 기술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금세 판권을 포기했다. 그가 다시 판권을 사들인 건 지난 2002년의 일이었고, 본격적인 제작에 착수한 건 그로부터도 몇년이나 지나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땡땡의 모험>을 영화화할 만한 최적의 기술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퍼포먼스 캡처 영화들을 보고서야 드디어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퍼포먼스 캡처 기술이라면 땡땡을 스크린에 불러들일 가장 효과있는 마술이 되어줄 게 틀림없었다.

물론 기술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결국 이야기다.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이 첫 번째 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원작으로 에르제의 가장 순결한 모험담이자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유니콘 호의 비밀>과 <라캄의 보물> 연작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단 두 책은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의 어드벤처물이라는 점에서 스필버그의 세계와 똑 닮아 있고,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영화로 각색하기도 용이하다. 스필버그는 두권의 책 외에 <황금 집게발 달린 게>를 함께 버무려서 각본을 만들었다. 이는 <황금 집게발 달린 게>가 땡땡과 아독 선장의 첫 만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땡땡(미국 영화라 ‘틴틴’으로 불리는 이 주인공은 제이미 벨이 연기한다)은 유니콘이 박힌 모형배에서 비밀 지도를 발견한다. 지도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괴한들에게 배로 납치된 틴틴(그러니까 ‘땡땡’ 말이다)은 주정뱅이 아독 선장(앤디 서키스)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고, 둘은 바다와 사막에서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동시에 그들은 유니콘 모형배에 들어 있던 지도가 17세기 보물을 싣고 난파한 해적왕 레드 라캄(대니얼 크레이그>의 배 유니콘호의 위치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스필버그, 피터 잭슨, 스필버그+피터 잭슨

세권의 원작을 해체해서 재조립한 듯한 이야기지만 피터 잭슨은 “우리 자신의 뭔가를 지나치게 더 집어넣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재미있지만 에르제의 세계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들은 피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의 만화적인 감수성, 모험에 대한 감각, 풍자정신을 통해서 영화를 이끌어가고 싶었다.” 스필버그 또한 여기에 동의한다. “지나치게 현대적인 유머도 사용하지 않고 싶었다. 나는 에르제의 시대에 적절한 유머를 지키고 싶었고, 그래서 언어적인 풍자나 말장난보다는 무성영화에 가까운 슬랩스틱을 활용했다.” 사실 영화광 출신 감독들인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에게 <땡땡의 모험>은 데자뷰의 연속에 가까웠을 것이다. 원작에는 고전 할리우드영화들의 기념비적인 장면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오마주되어 등장한다. 이를테면 <아메리카에 간 틴틴>에서 틴틴이 빌딩에 매달리는 부분은 해럴드 로이드의 영화를 연상시키고, <검은섬>에서 거대한 고릴라와 결투를 벌이는 부분은 <킹콩>의 인용이나 다름없다. 슬랩스틱을 담당하고 있는 뒤퐁과 뒤뽕 형사는 어떤가. 그들은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에 바치는 오마주에 다름 아니다. 피터 잭슨은 “에르제가 1920~40년대 할리우드영화들을 아주 사랑했음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원작에는 스필버그와 내가 사랑하는 많은 고전영화들의 레퍼런스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에르제가 고전 할리우드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요소들을 통해 원작을 각색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의 새로운 땡땡 영화는 모두 세편으로 기획되어 있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에 이어지는 속편은 피터 잭슨이 연출할 예정이고, 트릴로지의 마지막편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감독할지도 모른다. 스필버그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 자신이 80년대에 만든 영화들과 아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최근 만든 어떤 영화들보다도 나의 80년대적인 감수성과 가까운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운명의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에르제는 1983년 사망 3개월 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만약 땡땡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단 한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젊은 미국 감독이다.” 그 젊은 미국 감독은, 당시 <E.T.>와 <레이더스>를 내놓고 승승장구하던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에르제의 염원을 통해 완성된 ‘틴틴’을 보게 될 것이고, 그로부터 70년 전 에르제의 손끝을 통해 시작된 ‘땡땡’을 재발견하게 될 참이다.

원작과의 영화 비교 컷.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촬영을 위한 콘티가 거의 필요없을 정도였다. 30~40년대 할리우드영화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원작자 에르제는 <땡땡의 모험>의 주요 액션장면들을 대단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구성해두었고, 스필버그는 수십년 전에 완성된 완벽한 콘티를 손에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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