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 라르손은 누구인가?
1954년 8월15일에 태어난 스티그 라르손은 반나치 공산주의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 일찍부터 정치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극우주의에 대한 그의 저항심은 1977년 그가 스웨덴의 대형 통신사에서 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1980년대의 스웨덴은 특히 인종주의적 살인이 빈번했던 시기여서 기자들 사이에서 스티그의 극우파에 대한 정보력은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그는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위를 주지 않자 1999년, 스티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1995년에 자신이 창간한 ‘엑스포’에 헌신하기로 한다. 엑스포는 그가 1982년부터 통신원으로 있었던 영국의 반파시즘 월간지 <서치라이트>를 사례로 삼아 설립한 신문사였다. 앞서 1991년에도 안나레나 로데니우스와 함께 <극우파>라는 책도 냈던 그는 평생 극우파들의 테러 협박에 시달렸다.
스티그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밀레니엄> 연작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다. 하지만 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2003년 3월에야 얄마르손 앤드 회글룬드 출판사로부터 대대적인 수정을 거친다면 <밀레니엄>을 출간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스티그는 거절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출판하겠다는 노르스테드트스를 택했다. 그러나 그는 책이 출간되기도 전인 2004년 11월9일 엑스포 사무실이 있는 7층 계단을 오르다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소설보다 소설 같은 삶을 살다간 그였다.
<밀레니엄>에 대한 평가는?
숫자로만 따진다면 현재 서구권에서 <밀레니엄>의 파급력은 여느 베스트셀러와의 비교를 불사한다. 에드워드 닥스라는 소설가가 영국 <옵서버>에 자신이 탔던 열차의 승객 모두가 <밀레니엄>을 읽고 있었다고 썼을 정도니. <밀레니엄> 3부작은 스웨덴에서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초판이 나온 2005년 7월 이후 지금까지 46개국에서 65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미국에서 2초에 1권씩, 매일 5만부씩 팔려나가는 책이란 홍보문구는 과장이 아니다. 그 결과 스티그는 <포브스> 선정 유명인사 사후소득 순위 6위에 오르기도 했다.
평단도 호평 일색이었다. 그중에는 스티그의 정치의식에 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독일의 <슈피겔>은 “위대한 사회소설이다!”라고 극찬했고, 영국의 <가디언>은 “사회의식이 뛰어나고, 도덕적 타락을 깊이 조망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일부는 그의 문학적 성과를 높이 사기도 했다. 스페인의 <엘 문도>는 “위대한 앨런 포가 보여준 수수께끼, 셜록 홈스에 준하는 주인공, 애거사 크리스티의 문체”를 종합한 점을 높이 샀고, 벨기에의 <르 수아르> 역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문학적 ‘사건’”이라고 격찬했다. <뉴욕타임스>는 1부에 비해 2, 3부는 실망스럽다는 논평을 싣기도 했으나 대체로 호의적인 리뷰를 내놓았다. 물론 최고의 상찬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헌사일 것이다. 그는 서평에 이렇게 썼다. “일말의 부끄럼없이 말할 수 있다. 환상적이다.”
어쩌다 저작권 상속 분쟁까지?
스티그 라르손이 사망하자 <밀레니엄>의 저작권은 30년 동안 그의 반려자로 살았던 에바 가브리엘손이 아니라 그와 거의 의절 상태였던 아버지 엘란드와 동생 요아힘 라르손의 손에 넘어갔다. 그와 에바는 테러 협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는데, 스웨덴 법률에 따르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게는 상속권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여 스티그는 노르스테드트스 출판사의 도움 아래 회사를 설립해 에바를 공동 대표를 두는 방식으로 유산을 분배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회사는 설립되지 못했고, 유언장도 없었다. 에바에게 남겨진 것은 스티그와 살았던 아파트의 반과 130유로 상당의 가구뿐이었다. 스티그의 모든 저술과 출판 계약금, 영화화 판권은 모두 라르손 부자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에바는 스티그가 그들이 일으킨 ‘밀레니엄 산업’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여러 차례 수입은 가져도 좋으니 저작권 관리 권한만 양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라르손 부자는 오히려 아파트 반과 4부 원고를 교환하길 원했다. 경악할 만한 사실은 요아힘이 갈등을 해결하려면 에바가 엘란드와 결혼하면 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는 것. 이후 영화화 판권이 할리우드에까지 팔리며 상속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자 그들은 에바에게 <밀레니엄>의 판매 수입을 관리할 수 있는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에바는 허수아비 직책 대신 <밀레니엄>을 제외한 나머지 저작물에 관한 권한만이라도 달라며 타협안을 제시했고 라르손 부자는 더이상의 협상을 거부했다. 법정 공방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밀레니엄> 4부의 운명이 달려 있는 상황이다.
4부 나올까?
지난해 초 에바 가브리엘손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라르손 부자와의 법정 공방이 해결되는 대로 자신이 <밀레니엄> 4부 <신의 복수>(가제)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녀의 회고록에 따르면 스티그 라르손은 죽기 전 200페이지 정도를 써두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우리는 공통의 언어를 갖고 있었고, 공동 집필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자신이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바는 그러나 4부의 내용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회고록에 다음 정도로만 썼다. “4부에서는 리스베트가 자신을 괴롭히던 망령들과 적들에게서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리적 혹은 정신적 해를 가한 사람에게 복수할 때마다 그 사람을 상징하는 문신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그외에는 스티그가 죽기 1달 전쯤 친구 존 헨리 홀름베르그에게 보낸 이메일로 귀띔한 정도가 다다. 이메일에서 스티그는 4부 배경이 캐나다 노스웨스트주의 삭스 하버라는,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인구가 150명도 되지 않는 마을이라고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책이 4부가 아닌 5부일 수도 있다. 요하임이 미국 <CBS>와 인터뷰에서 스티그가 재미를 위해 5부(스티그는 <밀레니엄>을 10부작으로 쓸 계획이었다)부터 쓰고 있다는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원고의 소재는 오리무중이라 팬들은 한동안 속을 태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2편도?
과연 핀처가 2편, 3편까지 감독을 계속할까?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인디와이어>와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핀처는 이렇게 말했다. “속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냐고? 아니. 마지막 장면이 여지를 남기긴 하지만 그 자체로도 완결성있는 이야기다.” 그러고는 또 이런 힌트를 주었다. “2, 3부는 하나의 이야기를 나누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찍어야 합리적일 것 같다. 1년 스웨덴 가서 찍고 1년 미국 와서 찍어서 한편 완성한 뒤 또 1년 스웨덴 가서 찍고 1년 미국 와서 찍는 건 너무….” 이에 옆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루니 마라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안돼요, 제발”이라며 그를 말렸다고 한다. 루니 마라와 대니얼 크레이그는 3편까지 계약을 마친 상태로 알려져 있다. 물론 데이비드 핀처의 행로는 1편의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될 확률이 높다. 그의 또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우선 3500만명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한다. 쉬운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1편이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그도 계속 남아 있게 한다면 2, 3편은 좀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그의 작업 스타일대로라면 제작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디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도 수년씩 소비했던 그다. 이번에는 제작사의 요구에 따라 <소셜 네트워크>를 마무리지은 뒤 25일 만에 촬영에 들어가 1년 안에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미 2, 3편을 쓰고 있는 스티븐 자일리언 역시 “이렇게 서둘러 작업해본 적은 처음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데이비드 핀처와 자일리언의 내공이 제대로 발휘된 속편이 나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