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스캔들>은 ‘벽안도’라는 미술품의 진의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과속스캔들>은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당신들 과속했구먼” 하고 농담할 때의 그 과속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성균관 스캔들>은 성균관의 수많은 유생 중 하나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극적 암시다. 셋 다 제목에는 스캔들이 달려 있지만 말뜻 그대로 꼭 추문은 아니다. 솔직한 인정이 먼저 필요하다. 우리는 스캔들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게 무엇이든 이미 은밀히 즐길 준비를 한다. 특히 그 어떤 스캔들보다도 여파가 큰 것이 정치 스캔들이므로 이게 소재가 되는 정치영화는 흥미로워질 여지가 생긴다. 거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아직 다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 스캔들을 다룬 예를 생각하다 단숨에 떠오른 작품이 <그때 그사람들>이다. 차기작 <돈의 맛>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임상수 감독이 “돈의 맛은 권력의 맛이자 결국 섹스의 맛이다”라고 한 것은 크게 놀랍지 않다. 그 삼원소의 연합이 스캔들의 맛이며 특히 정치 스캔들의 맛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정원>을 제외한다면 이 스캔들의 맛이 임상수의 최근작들에서 중요해 보인다.
예컨대 <하녀>의 인물과 공간들은 의도적으로 더욱더 허황되게 느껴지도록 연출되었는데, 그 허황됨은 영화 속 초상류층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는 이로부터 그들의 실체가 약간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시도된 것 같다. 스캔들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 그대로 이 영화도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고나 할까. 임상수 감독은 돈과 섹스와 권력에 얽힌 사람들에 관한 스캔들의 내용을 말할 때 영화 자체도 스캔들의 형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스캔들의 형식이란, 객관적으로 알려진 사태와 인물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갔을 때 그 실체는 정확히 알기 어려워 과장되고 상상적으로 재현되기에 충분한 재구성의 형식, 같은 것이리라. 그 시작이 <그때 그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되돌아보니 <그때 그사람들>에 출연한 두 인물을 주목하게 된다. 궁정동 연회장에서 묵묵히 일하던 지배인(조상건)과 자기 딸을 팔아 돈과 권력을 쥐고 싶어 했던 어떤 추잡한 중년 여인(윤여정)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이 두 사람이 합작하여 끝내고 있다. 화면에 지배인의 모습이 보이면 그 위로 그 여자의 그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깔린다. “그날 모든 것을 묵묵하게 지켜봤던 저 사내. 그는 지독하게 철저한 조사를 받은 뒤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조사 중 곡괭이 자루로 엄청나게 맞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그 이후에 잠적해 아무 말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도대체 영화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던 이 여인의 역할이 이 거대한 정치적 스캔들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음을 우린 알게 된다.
물론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때 그사람들>의 원래 처음과 끝은 여기가 아니었다. 이것이 또한 이 영화와 관련된 최대의 정치적 스캔들이기도 한데, 영화의 앞과 뒤 3분50초 분량의 기록화면은 법원의 판결로 잘려나갔다. 그럼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정치 스캔들을 다룬 영화는 언제나 그 스캔들의 주인이나 그들의 관계자 혹은 법적 판결자들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의 특수성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도청 대통령 닉슨을 소재로 <닉슨>을 만든 올리버 스톤은 닉슨의 후예들이나 미국 법정에 의해 시달리지 않았는데 독재자 박정희를 소재로 <그때 그사람들>을 만든 임상수는 박정희의 후예들 및 대한민국 법정에 의해 지극히 고달팠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시대에 고달픈 임상수들이 셀 수 없이 더 많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